백조와 물오리가
한 물에서
사이좋게 헤엄치며
놀고 있다.
백조는
그 본연의
우아함을 드러내며
유영하고 있고
물오리들은
귀여운 모습으로
동동거리며
떠다닌다.
그러나
그들 사이엔
아무런 비교도
갈등도 없다.
그저
백조는
백조이고
물오리는
물오리인 것이다.
영국의 호수나 강에 가면 백조나 물오리들이 함께 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서정적인 풍경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시상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아이들끼리 영역다툼을 하지 않고 함께 잘 지내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별게 다 신기하다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만약에 이들이 인간이라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무언가 특별할 것 같은 백조들이 평범한 오리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왠지 잘 안 어울리는 조합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더구나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모든 강과 호수에서 서식하는 백조들은 영국 여왕의 소유라고 하니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농담이 아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12세기 이후에 영국에서 법률로 그렇게 정한 것이다. 그 유래까지 다 설명하자면 또 말이 많아져야 하니 대충 여기까지만 말한다. 영국인들의 발상이 재미있기는 하나 그런 종류의 법률도 존재한다 하니 처음에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약간 어리둥절 했다. 그리고 그런 것까지 법으로 정했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백조가 왕실을 상징하는 새이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백조들은 한눈에 봐도 그 모습이 우아할 뿐 아니라 그 유영하는 모습도 아름답다. 그런 자태를 유지하기 위해 물속에 있는 그들의 발은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하므로 실제 백조들의 삶은 피곤할 거라는 그럴듯한 말도 있지만 만약에 새들을 분류해서 인간의 눈으로 계급을 매긴다면 이들은 틀림없이 왕족에 속할 것이다. 왕족이라고 해서 다 우아한 행동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겉모습만큼은 그렇다는 얘기다.
영국인들은 아직도 왕실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들의 왕족에 대한 존경심이 날이 갈수록 옅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인 크리스틴이란 이십 대 중반의 청년에게 "만약 네가 우연한 기회에 혹시 엘리자베스 여왕을 직접 만난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겠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무릎을 꿇고 여왕에게 경의를 표하겠다"라고 했다. 처음에는 농담인가 했는데 그가 진심이라고 했다. 그때와 지금은 상당한 세월이 흐른지라 사람들의 왕실에 대한 존경심도 많이 사라졌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왕족은 일반인들과는 다른 고귀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왕실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영국 사람들이 이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사실 나와는 별 상관이 없다. 그저 백조의 우아한 모습에 대해 언급하며 비교할 대상을 찾다 보니 갑자기 왕실이 연상되어 그에 대해 몇 마디 한 것이다.
그런데 물오리들은 어떠한가. 그들에게는 백조들처럼 귀한 맛은 없지만 물 위를 동동 떠다닐 때는 어여쁘고 뭍에 나와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테임즈 강변에 서식하고 있는 물오리들은 사람만 보면 따라다니면서 먹을 것을 달라고 꽥꽥 거리며 다가온다. 이점에서는 백조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아무리 고결해 보여도 먹고살아야 하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물오리들은 무엇이든 잘 먹는다. 하루는 강가로 소풍을 나갔다가 우리 가족이 먹으려고 가지고 갔던 빵을 모두 그 주위를 서성이던 물오리 떼에게 뺏기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래도 억울한 마음이 없었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녀석들에게 우리 역시 친근감이 들어서였다. 어쨌든 그들은 친근한 맛은 있어도 그리 귀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나조차도 백조는 어떻고 물오리는 어떻고 하면서 외양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계급을 나눈다.
그날 우리가 본 백조들과 물오리들 사이에는 아마 우리 인간들처럼 계급의식 같은 것은 없었으리라. 그저 강이 있고 물이 있으니 아무 생각 없이 같이 떠다니면서 즐겁게 노는 것이 었겠지. 물론 자연의 모습이라고 늘 이렇게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고 그들 사이에도 내가 모르는 알력 따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날만큼은 그들의 함께 노는 어여쁜 모습을 눈에 가득 담았으므로 집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 걸음마다 즐거움이 묻어났다. 적어도 영국에 사는 동안만큼은 테임즈 강변의 황톳길을 자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기도 하다. 강변을 걷다 보면 조정(rowing, boat racing)을 즐기는 사람들이 팀을 이루어 물살을 가르며 지나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그들이 환성을 지르며 우리 곁을 빠르게 지나가면 우리도 같이 손을 흔들며 화답해 준다. 오늘 이 평범하지만 이름다운 테임즈 강변에서의 여러 장면들이 먼 훗날 영국이 그리울 때에 불현듯 영상이 재생되듯, 파노라마처럼 내 눈앞에 선하게 펼쳐질 때가 있겠지. 그때는 그랬었지 하면서 그 날들을 그리워하겠지.
- 해진의 영국 생활기 13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