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진의 영국 생활기 10
남편은 내가 사 오는 꽃의 양을 보고 가끔 놀랄 때가 있다. 겉과 속을 달리 할 수 없는 사람이라 좋아도, 싫어도 티를 잘 안 내고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나한테는 항상 그 속을 들킨다. 그래서 나는 그의 얼굴에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표정을 될 수 있으면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어쨌든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참 무던하고 너그러운 편이다. 나도 이런 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나의 브런치 첫 번째 글인 고모의 정원 편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어느 화창한 봄날 의왕의 꽃단지에서 내게 지름신이 왕림해 1톤 트럭 가득히 꽃을 싣고 집에 온 적이 있은 적도 있었지만 남편은 아무 말 않고 그 많은 꽃들을 불평 한마디 없이 같이 심어준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인 그가 지금은 몸이 아프다. 어떨 때에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지만 그래도 움직이는데 지장이 없고 식사도 잘해서 그나마 나를 안도하게 한다.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단 하루라도 그와의 동네 뒷산을 산책하는 일을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잠시 본머스에 있었던 얘기를 하려다 옆길로 살짝 샜다. 그러나 사실 아주 관계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의 꽃을 사는 약간은 평범하지 않은 버릇에 대해 말하려다 보니 그때의 기억이 오버랩된 것뿐이니까. 그러다가 너무나 건강해서 모든 일에 의욕이 넘쳤던 그 젊었던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며 약간 우울해진 것 뿐이다. 사실 그 생각을 하면서 눈물 두어 방울 떨어뜨렸다. 암튼 꽃가게에 만 가면 예쁜 꽃들의 모습에 혹하여 대량 구입하는 습관은 아직도 나에게 남아있다. 며칠 전 밸런타인 데이에도 꽃집에 들렀다가 어떤 남자분이 아내에게 선물로 준다고 꽃을 한 아름 사가지고 가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시샘이 났던지 아니면 갑자기 로맨틱해진 건지는 잘 분간이 가지는 않지만 내 팔이 감당하기에 넘치게 꽃을 사 온 적도 있으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표정을 보고 아, 내가 또 꽃을 대량 구입했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남편은 이런 모습의 나를 보고 크게 놀라지는 않는다. 그냥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려니 하는 거다.
다시 본머스로 돌아가서, 이제 사온 꽃들을 뜰에다 심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한국에서 영국까지 그 긴 시간을 날아와 히드로 찍고, 런던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 찍고, 이제 본머스에 도착한 지 만 하루도 안 지났는데 내게 무슨 큰 힘이 남아있겠는가. 거기에다 세인즈버리에다 꽃가게까지 다녀온 데다 전날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했으니 아무리 에너지의 여왕이라 한들 피곤하지 않겠는가. 여기로 오는 일정을 너무 빠듯하게 잡아 한국에서도 쉴 틈이 없었던 건 또 어쩌고. 그래도 할 일은 한다, 아니하고 싶은 일은 한다. 사온 꽃을 담은 모종 화분들을 모조리 다 비워내고 빨강, 하양, 노랑, 분홍, 보라의 팬지들부터 간격을 잘 맞추어 동그랗게 심은 다음 앵초과에 속하는 프림로즈들도 그 원 안에 들어가게 해서 역시 빨강, 하양, 노랑. 분홍, 보라의 색을 맞추어 심었다. 샛노란 수선화들은 중간의 빈 원에 채워서 심었다.
와, 예술이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조그마한 개울들이 한데 모여 결국에는 모두 바다에서 만나 듯 살아가면서 이런 사소한 기쁨들이 모여서 내 인생은 행복했노라고 훗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작지만 예쁜 기억들은 나의 뇌리에 꼭꼭 박아 넣고 나쁜 기억들도 어쩔 수 없이 내 머릿속 한편에 저장은 되겠지만 슬그머니 느슨히 풀어서 희미하게 기억되게 만들어 종내에는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리게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가당치 않은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큰 불행이 우리의 인생을 덮칠 때라도,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향한 희망이 하나의 실오라기만큼 밖에 남아있지 않게 될지라도 이런 연약한 것들이 우리의 삶에 유의미하게 작용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그러하니 가능할 때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 놓는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 가는 데 있어서 유리한 것이 틀림없다. 더구나 그런 기억을 같이 나눌 수 있는 나 외의 다른 사람이 아직도 내 곁에 있다는 것은 행운임에 틀림없다.
본머스 피어(pier)는 내가 자주 들렀던 장소 중의 하나이다. 사실 나는 지리에 매우 약하다. 하지만 워낙 자주 들른 곳을 잊어버릴 정도는 아니다. 다니다 보니 익숙해진 곳이 그곳이다. 그러나 이곳도 꽤 알려진 곳이라 인파가 몰릴 때가 있으므로 그럴 가능성이 있을 때는 가지 않는 곳이 그곳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낯선 곳을 여행할 때 입소문이 난 유명한 곳보다 그 주위와 이어지는 공원이나 근처의 골목길의 정취에 더 빠져드는 편이다. 그런 곳을 이리저리 생각 없이 다니다 보면 낯선 길에서 길을 잃기 딱 좋다. 그러다가 주위는 점점 어두워져 그 어둠이 짙어져 가면 얼마나 두려운지 모른다. 한번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조심을 할 것 같지만 호기심이 발동하면 또 길 끝까지 가보려다 길을 잃는다. 그냥 길치들의 공통적인 난관이라고 해둘까.
본머스 피어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 시설들이 많다. 그런데 본머스에 사는 사람들은 그곳을 그냥 패스하고 일상적인 해변 산책을 하는 게 보통이다. 해변을 거닐다 보면 이른 봄이나 심지어 겨울에도 스킨 스쿠버나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스포츠를 하는 것은 꿈도 꾸어보지 못한 일이지만 먼 곳에서 부러워하면서 구경은 한다. 원래 큰 흥미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면 부러워하는 정도의 수준인 부러움인 것이다. 피어 주위의 해변은 여름에는 피서객으로 붐비고 비치 발리볼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서서 보게 된다. 특히 수영복 차림으로 발랄하게 움직이는 틴에이져들의 모습은 여자인 내가 봐도 매력적이어서 계속 몇십 분을 서서 경기를 관람한 적도 있다. 어쨌든 해안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구경거리이므로 그냥 무심하게 지나간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본머스 피어로 들어가려면 입장료가 있다. 4월에서 10월까지만 받고 나머지 달에는 무료인 것으로 안다. 내가 본머스에 살았을 때는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돈을 내고 들어간 기억이 없다.
이제 본머스에서의 지리에도 익숙해져 가자 관광객들이 많은 이곳에서 내가 현지인처럼 보였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길을 묻는 경우도 많아졌다. 길을 잘 몰라서 대답을 제대로 못해준 적도 많지만 내가 잘 알고 있는 길에 대해 물으면 상세하게 가르쳐 줄 수 있었을 때는 별것 아닌 일인데도 어깨가 약간 올라가며 뿌듯해지는 때도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그런 느낌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 해진의 영국 생활기 11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