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해양국가여서 당연히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이다. 한국어로 말할 때는 그냥 영국이지만 영국의 정식 이름(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은 기억력이 나쁜 사람은 말하다가 잊어버릴 정도로 길다. 본머스(Bounemouth)는 서안해양성 기후 지역이어서 여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편이다. 8월 평균 기온이 섭씨 20도 정도이고 1월 평균 기온도 10도를 웃돈다. 대체로 이런 패턴을 유지한다는 것이지 요즈음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유럽 전체 8월의 기온이 섭씨 40도를 넘었다는 것은 뉴스를 통해서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영국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같다. 런던도 이미 8월 최고 기온이 40도를 넘어서서 사람들이 참기 어려울 정도의 기온을 연일 갱신하는 바람에 이제 그곳에서도 더 이상 선선한 여름을 맛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그래도 이것은 아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에 있다가 영국을 방문하게 되면 항상 느끼는 것이 그래도 영국의 날씨는 한국의 그것보다는 훨씬 온화하다는 것이다.
서두부터 영국의 날씨에 대해 길게 늘어놓은 것은 영국에 대한 얘기를 할 때면 날씨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영국인들조차도 하루에 한 번 이상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언제, 어디에서나 날씨에 대한 화제는 꼭 등장한다고 해야 할까. 그만큼 영국의 날씨는 하루 중에도 변화무쌍해서 쨍하고 해가 났다가 어느새 비가 오곤 하니까 믿을 수 없는 게 이 날씨라는 것이라서 늘 화제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본머스는 좀 다르다. 내가 말하는 좀 다르다는 말은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는 뜻이다. 유럽에서 가장 해변이 깨끗하게 잘 보존되어 있고 아름답기로 이름난 본머스는 비교적 영국답지 않은 화창한 날씨를 자랑하는 여름 휴양지여서 영국인들이 은퇴해서 살고 싶어 하는 도시 1위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곳 해변에 산책을 나갔다가 저녁이 가까워 인적이 드문 시간이 되면 무슨 탐지기 같은 것으로 그 넓은 해변을 샅샅이 훑으며 혹시 사람들이 다치기라도 할까 봐 모래 속에 행여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이물질 같은 것들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장면이어서 한참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만큼 환경보호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고려를 한다는 뜻이다.
영국에 지금도 딸이 살고 있긴 하지만 내 나라도 아닌데 본머스에 대한 자랑은 이 정도에서 멈추고 이제 우리가 그곳에서 실제로 1년 간의 삶을 어떻게 살다 왔는지 얘기를 시작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가족 단위로 영국에 한 번도 살아 본 적이 없는 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본머스에서 살게 된 그 사실 자체 하나만으로도 아무런 로맨틱한 일이 없더라도 로맨틱한 일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살았다. 우리가 정착한 곳은 브라세이 로드(Brassey Road)라는 곳이었는데 큰 도로에서 떨어진 곳이어서 꽤 조용한 주택가였다. 거기에다 3,40분 정도만 걸어가면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으니 내가 생각하기로는 영국에서 1년 살아보기에 완벽한 입지 조건이었다.
영국에 오기 전에 나는 남편에게 일종의 다짐 같은 것을 받았다. 본머스에 사는 동안에는 절대로 일 할 생각 따위는 하지 말고 학교 생활에만 충실하고 이곳에서의 삶을 한번 순수하게 즐겨 보자고. 정말 정착 초기의 우리의 삶은 환희 그리고 감탄 그 자체였다.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해는 어느 다른 곳에서 보는 해보다 장대했고 노을 지는 해변은 꿈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시시각각 변하는 색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 색감은 내 무딘 필력으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될 뿐더러 만약에 표현한다 해도 이미 다른 사람들이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너덜너덜하게 느껴질 것이므로 그냥 평범하게 너무나 아름다워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정도로 해둘까. 그럼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은 자신들만의 상상의 나래를 펴서 그 장면을 그들만의 감성으로 채색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해진의 영국 생활기 9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