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나를 특별 채용을 해준 사람이라 그랬던지 그녀가 도드라지게 뭔가 내게 해준 것은 없었지만 내게 관용을 베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니폼을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첫 출근을 하고서야 알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케어홈에서 원피스 유니폼을 입은 직원은 나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바지보다 원피스 유니폼이 더 예쁠 것 같아서 그걸 선택했다. 그래서 출근하기 며칠 전 N.I. 넘버를 받자마자 유니폼을 수선해 두었다가 그날 처음 입고 나타난 것이다. 매니저는 바지를 입는 것이 작업 효율성이나 편리성이 더 좋을 것이라는 권고 따위는 내게 하지도 않았고 모든 케어 어시스턴트들이 유니폼으로 같은 색의 상의와 바지를 입고 일한다는 말은 전혀 내비치지도 않았다.
그러니 첫 출근이라고 했는데 그 많은 다른 직원들은 모두 바지 차림의 복장이었는데 나만 무릎에서 2~3센티 정도 올라 간 원피스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으니 그 얼마나 눈에 띄었겠는가. 하지만 매니저는 신선하고 예쁘다는 칭찬까지 해주며 나를 격려해 주는 게 아닌가. 넌 우리 케어홈의 모델이야라는 말도 안 되는 칭찬까지 곁들였다. 와, 겉으로 티를 안 내려고 애를 썼지만 속으로는 적지 않이 당황을 했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유니폼도 자기 개성이란 말을 할 수도 있으므로 나는 퇴사할 때까지 그 유니폼으로 버텨 나갔다. 아니, 입다 보니 자연스러워졌고 처음에는 일하기 불편하지 않냐고 은근히 물어보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그들도 나의 유니폼을 입은 모습에 익숙해져 갔다.
영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노인 복지 강국이었던 만큼 내 눈에는 입주자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것 같았고 그들의 인권 보장에 대해서도 복지 선진국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특히 아침에 입주자들이 그날 입을 옷과 스타킹, 신발 등을 고르는 데 시간이 얼마가 소요되었든 그들의 시중을 드는 사람들이 조용히 옆에서 기다렸다가 도와주는 일은 약간의 인내가 필요해 보였지만 내 눈에는 좋아 보였다. 입주자 레스토랑에서는 우리가 비교적 고급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메뉴로 선택되었고 안전을 핑계로 플라스틱이나 나무로 된 식기를 사용하지 않고 도자기로 된 식기만 사용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일은 없었다. 날이 갈수록 그 일은 내 손에 익숙해져 갔고 입주자들을 돌보는 일도 쉬워졌다. 아침 7시경에 일찍 출근하는 만큼 퇴근 시간도 이른 시간인 오후 3시여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잘 관리만 한다면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도 충분했다. 또 내가 그곳에서 6개월을 일한 뒤 매니저를 통해 재계약을 할 때에 그만 둘 각오로 수요일은 쉬고 월화목금만 일하면 안 되겠느냐고 요청했더니 그녀가 기분 좋게 수락을 해주어서 나의 여가 시간은 더욱 느슨해졌다. 일을 잘 못한다고 가끔 해고당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런 부탁을 웃으면서 들어주었던 그녀를 생각하며 지금도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예전보다 여유로워진 여가 시간을 이용해 집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정원 가꾸기도 할 수 있었고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을 이용해서 가끔 런던에 들르기도 했지만 난 온 세계 사람들이 북적대는 런던보다 뉴몰든에서 도보로도 갈 수 있었던 킹스턴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더 자주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테임즈 강변에 있는 조용한 레스토랑에서 새로 사귄 영국인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식사 후에는 테임즈 강변을 같이 거닐면서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가족들과도 마찬 가지였다. 남편과 나는 원래 타고난 집돌이, 집순이어서 후원으로 이어지는, 영국에서는 콘서버토리(conservatory)라고 불리는 썬룸의 커다란 테이블 앞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며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지냈던 시간이 행복했다. 그런데 나중에야 안 일이 지만 그 당시 겨우 열다섯 살의 사춘기 소녀였던 우리 딸은 좀 더 여행도 다니고 그랬으면 영국에서의 생활이 더 풍성하게 기억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워낙 말이 없는 아이라서 우리는 딸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마 우리는 딸아이가 영국에서의 학교 생활에도 잘 적응했고 교우관계도 무난했던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같은 반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숙제도 같이하고 놀기도 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리고 사실이 그랬다. 아무튼 별일 없이 평안한 하루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으면 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서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호기심과 손톱 끝만큼의 봉사정신으로 시작한 일치고는 오래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핑계였을 뿐 그 당시에 케어홈에서 근무하던 중 내가 돌보던 입주자 중에 더글라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정말 나에게 서글서글하게 잘 대해주었고 말 한마디를 건너더라도 교양이 넘쳐흐르는 인정 많은 분이셨는데 갑자기 심장 쇼크로 병원에 옮길 틈도 없이 케어홈 침대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전날 내가 그의 방에 들렀을 때만 해도 나는 그에게 "더그,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어요?"라고 그에게 다소 생뚱맞은 질문을 했더니 "지금 네가 하는 일을 해 보고 싶어."라는 주저 없는 대답이 내게 돌아왔다.
내가 그 케어홈에서 그를 처음 본 게 한 11 개월쯤 되었나? 그래도 그 세월 동안 일주일에 최소한 네댓 번씩은 그를 보아왔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내 질문에도 답해주고 했던 그가 그렇게 갑자기 이 세상을 버리고 떠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나를 포함한 케어홈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심폐 소생술을 실시하고 있는 동안 그곳에 상주하는 의사가 도착하기도 전에 더그의 숨은 멈춰 버렸다.
사람의 죽음을 직접 목도한다는 것은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가 내 아버지도 아니고 나에게는 이국인이었지만 그날 난 정말 슬펐다.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렸고 옆에 서 있던 나이 지긋한 수간호사가 이런 나를 달래려고 꼭 안아 주며 등을 두들기면서 하는 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산다는 게 이런 거야. 너무 슬퍼하지 마. 더그는 착한 사람이었으니까 분명히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우리 그를 위해 기도하자."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나는 점점 출근하기가 싫어졌다. 손톱 끝만 한 봉사정신이나 어쭙잖은 사명감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것이 이 직업이구나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정말 몇십 년 동안 이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단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게 아니구나 라는 마음이 들면서 그러한 분들에게는 존경심 마저 들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한 일주일 쯤 지났나? 매니저에게 나의 이런 마음을 밝히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그녀 역시 나를 가만히 안아주며 내 등을 두드려 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직서를 접수하여 주었다. 그녀는 이미 내가 여기 처음 발을 들였을 때부터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어떤 인연이란 것이 나를 그곳으로 잡아당겼는지는 모르지만 그 케어홈과 그곳의 매니저였던 J.k는 아마 내가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또 한 가지 그곳에서 있었던 잊지 못할 일은 크리스마스이브에 그럴만한 실력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감히 그곳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입주자들과 그날 그곳을 방문했던 보호자들을 위해 작은 음악회를 열었던 일이다. 음악회가 별 거냐 하는 마음으로 하하. 우리 딸은 키보드 연주를 하고 나는 노래를 했다. 그곳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시간이나마 즐겁게 한마음으로 성탄을 축하하며 함께 노래를 불렀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비록 서툴렀지만 정말 그날 그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매니저는 나에게 근무하는 날도 아닌데 이렇게 입주자들을 위해 즐거운 시간을 마련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P.S.
나의 "영국의 양로원에서 일해 보기"는 여기에서 이렇게 끝을 맺는다. 사실 특별한 이야기는 없다. 다만 영국의 관광지나 명승지에 관한 책들이나 스토리 들은 서점이나 인터넷에 넘쳐나므로 나는 그저 영국에서 살면서 내가 겪었던 일을 짧게나마 담담하게 풀어 나갔을 뿐이다. 다음 회에는 우리가 뉴몰던에 오기 전에 약 일 년간 살았던 본머스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영국의 양로원에서 일해 보기를 읽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 From Hae 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