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양로원에서 일해보기 3

해진의 영국 생활기 6 / N. I. Number card

by 해진

영국에서 일을 하려면 N.I. 넘버(National Insurance Number)라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참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나 정말 이말 싫어하는데 지금 나의 이 상황에 딱 맞는 말이다. 그러니 꼼꼼한 듯해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면도 있는 나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사실 나의 비자는 남편으로 인해 받은 동반자비자였기 때문에 취업이 불가능한 비자였다. 그것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채 매니저가 작성해준 서류를 들고 쭐래쭐래 그 카드를 발급해 주는 기관으로 찿아가 창구에 접수를 하려 했더니 그 창구 직원이 나의 여권을 보고서는 당신의 여권으로는 영국에서의 취업이 불가능하니 서류접수가 안된다는 것이다. 이제 나도 영국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세금을 낼 수 있게 되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서류 접수를 시도 했건만 돌아오는 창구 직원의 대답이라니..., 하긴 내 비자가 동반자 비자이고 이 비자로는 취업 같은 건 일절 할 수 없다는 것을 사전에 아주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의 뇌는 때로는 편리하게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는거 모두 알고 있잖아.


영국에서 일하려면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누구나 엔 아이 넘버를 발급 받아야 하며 그 것에 의해 국민연금이나 세금 관리를 받고 피고용인 들의 최저임금도 보장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영국에서 합법적으로 취업을 하려면 누구나 예외없이 이 번호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본적인 취업 요건도 갖추지 못한 내가 서류접수를 하겠다니 그곳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해질 수 밖에.


그런데 웃기는 일은 이럴 때 나는 평소의 나와는 다르게 용감해지는 이상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침착하게 마음을 가누고 창구 직원과 30분 쯤의 긴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예상치 않게 그 직원은 나에게 아주 친절했고 일단 서류 접수는 해주겠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안된다면서 서류를 받아주는 건 뭐지 하고 의문을 가졌지만 뭐 예외적으로 그럴 수도 있나보다 라는 생각을 했고 상담이 끝난 후 그 직원에게 서류라도 받아 주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빼먹지 않고 한 뒤에 그곳을 나왔다. 여기에서 굳이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그 직원은 여자였다는 것. 어떤 이에게 나의 이런 경험을 얘기해 주었더니 혹시 그 직원이 남자가 아니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기에 한번 해본 말이다.

그 때만해도 옛날이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겠지만 전화나 인터넷으로 서류를 신청하고 우편으로 그것을 받은 후에 그 레터에 필요로 하는 사항들을 직접 써서 보내면 다시 우편으로 번호를 발급 받을 수 있는 그런 제도였는데 지금은 컴퓨터와 손가락만 있으면 인터넷으로 다 된다. 나는 직접 관련 관청으로 서류를 들고 갔으니 말해 무엇하랴.


영국에 와서 바로 일을 구하지 않더라도 미리 엔 아이 넘버를 받아 놓을 수도 있는데 나중에 직장을 구한 뒤에 하려면 넘버를 발급 받는데 요즈음에도 최소 한달에서 몇달이 걸릴 수도 있다 하니 그런 난감한 일을 피하려면 시간이 있을 때 받아두는 게 좋을 것 같다.


https://www.gov.uk/apply-national-insurance-number/how-to-apply 이 주소에서 apply 버튼을 눌러서 시작하여 입력하라는 정보를 입력하면 끝!


그런데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영국 사람들은 일을 속 터질 정도로 느리게 처리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내 경우는 며칠 안지나 바로 엔 아이 넘버 카드를 메일로 받게 되었다. 불법이라더니 어떻게 해서 그 번호를 받게 되었는지 지금까지 미스테리로 남았다. 그래서 그 때의 일이 너무 고맙게 느껴져 이제는 별 의미도 없는 그 카드를 아직도 소중하게 내 책상서랍에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엔 아이 넘버 카드도 생각과 달리 순조롭게 발급 받았겠다, 생각지도 않았던 나의 영국에서의 직장 생활은 시작되었다. 다소 슬림한 내 체격에 맞는 유니폼이 없어서 시간을 들여 세심하게 줄인 새 유니폼을 착용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반짝반짝하게 광을 낸 구두를 신고 마음 가볍게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내가 유난히 튀어보인다는 거다. 그래도 나름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매니저는 나의 그런 점을 오히려 좋게 본 것이다.


- 해진의 영국 생활기 7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