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아르바이트 도전
존과의 식사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주제가 영국 양로원으로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들어가 버렸다. 사실은 이번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해안도시 본머스'에 대해서 써볼까 했는데 생각이 나는 대로 글을 쓰다 보니 아무런 제어도 걸리지 않고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다. 내가 영국의 양로원(Nursing Centre 또는 Care Home)에서 일하게 된 것은 자의 반 타의 반이라고나 해둘까. 이 일은 본머스에서 있었던 일은 아니고 그곳에서 남편의 일 년간의 유학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일단 한국으로 돌아와 일 년 반쯤 지나서 다시 우리의 2차 영국 거주를 시도해서 정착한 곳이 뉴몰든이란 곳인데 그곳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남편이 한국에서 머리 터지게 일만 하다가 공부만 하기에 심심했던지 남는 시간에 아르바이트라도 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냥 하라는 영어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어디 알아본 데라도 있어?"라고 아무 생각이 없는 듯 대응했다. 로컬신문의 구인란을 훑고 있던 그도 무심한 듯 "응, 여기서 멀지 않은 L Care Home이라는 곳에서 사람을 구한다네. 제법 규모가 큰 곳이야."라고 하였지만 정말로 무심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곧 이력서 작성을 시작했고 인터뷰에서 질문을 받았을 때 그에 대답해야 할 말들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 아냐? 저러다가 떨어지면 어쩌려고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나는 내심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가 근 일 년간 본머스의 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아직 현지인들과 모든 주제를 놓고 대화하기는 역부족이었고 까마귀 고기를 드셨는지, 아니면 한국에 돌아와서는 외국의 장비회사에 이메일을 보내거나 가끔 회사에 필요한 기기들을 설치 또는 점검하러 온 미국이나 유럽의 엔지니어들과 잠깐씩 대화하는 것이 영어 실력 함양에 별 도움이 안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직도 그의 영어 울렁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가 보다. 이런 것을 보면 그가 아직도 영어 사용국에서 살다 보면 세월이 흐르면 영어가 절로 될 것이라는 절대로 해서는 안될 착각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했을 거라는 내 짐작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어쨌든 신문에 나온 전화번호로 문의를 해 보았더니 내일 바로 인터뷰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남편도 그 회사에 대한 정보를 여기저기서 찾아보고 내일 입을 옷을 준비하는 등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걸어서 출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인 데다 더구나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니 출퇴근에 시간을 낭비할 일도 없겠다며 좋아하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이렇게 다소 설레는 마음을 안고 남편은 그날따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올빼미인 내게 오늘은 절대 부스럭거리지 말라는 경고까지 했다..
인터뷰 약속이 잡힌 다음날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일찌감치 이력서를 가방에 챙겨 넣고 남편과 둘이 부지런히 걸어서 신문에서 본 그 케어홈에 도착했다. 일단 사람도 첫인상이 중요하듯 건물의 외양을 보고 우리는 합격점을 주었다. 하, 그런데 우리만 합격점을 주면 뭐 하냐. 인터뷰에서 남편이 합격을 받아야지. 하여튼 사전에 시간 약속을 하였기에 일단 매니저의 사무실이 어디인지 물어서 문 앞에서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었다가 뱉은 다음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는 소리 대신에 문이 삐걱하고 열렸다. 한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약간 마른 듯한 느낌의 키가 훌쩍한 여자가 문고리를 잡고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나는 그녀를 보는 첫 순간에 이 영국 여자가 케어홈의 총매니저인가 싶었다. 여윈 몸과는 달리 인상은 의외로 서글서글해 보였다. 서로 인사가 오고 간 후에 자기 이름은 J.K.라고 우리에게 말해주고는 그녀는 바로 본격적인 인터뷰에 돌입했다. 다행히 옆에 서있는 나에게 나가 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채용공고를 어디에서 어떻게 알았느냐, 왜 이일을 하려고 하느냐는 등의 질문들은 기본이고 생각보다 어려울 수도 있는 일이 이 일이다. 잘할 수 있겠느냐. 다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몇 가지 질문들을 남편에게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긴장했는지 쭈뼛대면서 말이 자꾸 끊어지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그녀가 남편이 좀 생각할 여유를 가지고 말할 수 있게 질문을 좀 천천히 했으면 싶은데, 보기보다는 성격이 좀 급한 사람이었는지 시간이 갈수록 말이 점점 빨라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상대편이 외국인이라 배려를 해서 천천히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제속도가 나온 것이다.
- 해진의 영국 생활기 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