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양로원에서 일해보기 2

by 해진

남편이 머뭇거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내편을 바라보며 약간 씩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네가 이 사람이 말하려는 것을 좀 도와주면 어떻겠냐는 일종의 신호를 내게 눈으로 보낸 셈이다. 몇가지 질문들이 더 오고 간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남편의 말이 끊기거나 약간 머뭇거릴 때마다 내가 끼어들어 통역 아닌 통역을 했다. 소통이 원활해지자 그녀의 말이 더 빨라졌다. 주인공인 남편은 간 곳 없고 자연스럽게 그녀와 나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매니저라는 사람이 남편 말고 내가 여기서 일하면 어떻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킹스턴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Lee도 이 케어 홈에서 아르바이트를 좀 해보겠다고 인터뷰를 했는데 "영어 공부 좀 더한 다음에 지원 하라"는 까칠한 말을 매니저로 부터 들었다고 하니 남편도 그런 말까지 듣지는 않았지만 그런 말을 들은 것이나 다름없는 꼴을 당한 것이다. 순간 꼴난 케어홈에서 일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이렇게 무안을 주나 싶은 생긱이 들기도 했지만 케어홈 입주자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해야하는 것이 이 직업이다보니 그녀가 그럴게 말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지 영국인들에게는 이런 일자리의 기회가 널려 있을 수도 있겠지만 외국인이라면 좀 다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한편 들기도 했다. 영연방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내머리 안에서 어지럽게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남편은 자존심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접어넣었는지 그런 와중에도 "너도 요새 여기 새로 이사와서 아는 사람도 없고 심심하잖아 한번 해보는게 어때?"라고 내게 제의하는게 아닌가.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리는 나를 향하여 그녀가 내가 만약에 여기에서 일할 마음이 있다면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말은 즉 나에게 시간제 아르바이트가 아닌 정식 직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었다는 것이었다. 잠시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그녀에게 말해놓고 그녀가 내게 제안했던 일에 대해 남편과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이제는 은근슬쩍 권유하는 정도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네가 입버릇처럼 이런 일을 한번해보고 싶다고 전에 존과 식사를 할 때 말한 적이 있지 않냐고 과거에 내가 했던 말까지 소환을 한다. 그렇지, 내가 그러긴 했지. 하지만 입버릇처럼이란 말은 명백히 아니다.


연로하고 힘없는 노인들을 돌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들을 위해 자원봉사라도 할 판이었는데 한달에 한번씩 통장에 따박따박 돈까지 들어온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겠나 하는 생각에 까지 도달했다.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 데에는 꼭 남편이 나를 설득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나의 마음 속에 잠재해 있던 어떤 작은 소망 같은 것들이 꿈틀거리며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본머스에 살면서 무어다운 커뮤니티 센터 (Moordown Community Centre)에서 7개월간 자원봉사를 했던 정신을 되살려 다시 한번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내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물론 커뮤니티센터에서의 나의 일은 노인들을 돌보는 일은 아니었다. 내가 자원봉사로 일했던 곳은 무어다운에 사는 동네주민들을 위한 편의를 제공하는 공공기관 이어서 그 곳의 주민들을 위한 여러가지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곳이었는데 나는 그 중의 한곳인 카페에서 일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손님으로 오셨던 분들 중에 노인분들도 꽤 있었기에, 그중 한가한 몇분들은 매일 같이 나를 찿아와 카운터에 앉아있는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들의 외로움을 달래셨던 것으로 안다. 나또한 그분들을 통해서 이국에서의 외로움도 해소하고 영국 생활에 대한 두루 유용한 정보를 얻는데도 유의미한 도움을 받았다.


그래, 그 때 그런 경험을 되살려 까짓거 한번 해보지 뭐, 노인들을 돌보는 일이 매니저의 말대로 쉽기만 하겠어? 하지만 태어나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는 것은 분명히 가치있는 일이고 더구나 이 일은 나 아닌 타인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 이제 그만 따지고 이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는거야! 나는 결기에 찬 얼굴로 손님용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그녀의 책상 앞에 있는 의자로 가서 앉았다. 남편도 나를 따라와 내 옆에 있는 의자에 않았지만 그녀의 모든 관심은 이제 나에게 쏠려 있었기에 남편의 행동에 대해서는 별로 안중에 두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나와의 취업 계약을 서둘러 끝내고 싶어했고 나도 약간은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잠시 취업에 관한 결정을 유보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작은 기회라 해도 아무 때나 내앞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출근할 날짜까지 대충 정해놓고 케어홈을 떠나 남편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인터뷰에서 있었던 일이 남편에게 기분 나쁘게 작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이 나의 발걸음보다 더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나는 앞으로 이 새로운 직장에 어떻게 적응해야하나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을 안은 대신 그의 마음의 짐은 오히려 내게로 덜어진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것같은 지금 이 상황이 그 당시 우리가 살고 있던 앞뒤 정원이 달린 이층 주택의 집세를 다소 덜 부담스럽게 만들어 준 것도 있었으니 남편의 마음의 짐이 좀 덜어지긴 했을거다 라는 짐작만 했다. 우리는 그때 이미 본머스에서

지불했던 집세의 두배가 넘는 돈을 매달 집세로 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집에서 런던 시내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기차로 삼십분이라는 것이 집세가 그리도 높은 주된 이유였다.


영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만큼은 좋아하는 그림도 많이 그리고 정원의 꽃이나 가꾸면서 좀 더 느슨하게 살면서 나의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기간으로 생각했는데 아르바이트도 아니고 전일제 직장이라니, 완전한 계약은 아니었지만 이미 약속해버린 일을 무를 수도 없어 조금은 난감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으며 이왕 해야 할 일이라면 열심히 해봐야지 라는 각오를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 정말로 난감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진의 영국 생활기 5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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