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과의 식사

해진의 영국 생활기 3

by 해진

인벤토리 체크에 관해 작지만 의미 있는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던 존과 우리 가족 간의 관계는 그 이후로 좀 더 가까워졌다. 이제 날씨에 관한 얘기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상에 관한 정보나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된 것이다. 나는 원래 상대가 어떤 사람이건 나이에 관한 질문을 잘하지 않으므로 그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지금도 모른다. 다만 초로기에 접어든 그가 학교에 소속되어 그곳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잡일을 하면서 힘겹게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것만 짐작으로만 알고 있었던 터였다. 늘 일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를 만나서 그랬던지 모르지만 항상 허름한 작업복 차림에 한 번도 우리가 보기에 좋아 보이는 옷이나 신발을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보지를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우리 가족을 보면 항상 커다란 웃음이 입에 걸리는 것을 보고 나도 그를 보면 진심 반가운 얼굴로 그를 향해 활짝 웃어주곤 했다. 그의 연배가 한국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그리 하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하루는 우리가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존이 대문을 통과하는 것이 보였다. 여러 생각도 할 겨를 없이 바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 비품 창고 앞까지 온 그에게 다가가 우리와 점심을 같이 하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그의 의사를 물었다. 그는 내가 두말할 것도 없이 그 특유의 만면의 미소를 띤 얼굴로 혼쾌하게 "예스"라고 말하며 나의 예상치 못했던 점심식사 초대에 응했다. 지금 하여야 할 일을 잠시 미루고 나의 갑작스러운 제의를 받아준 그가 고마울 정도로 그때 그의 얼굴에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언뜻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던 것은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사실 그때 계획적으로 누구를 식사에 초대하려고 의도했던 것도 아니고 해서 우리의 점심 메뉴가 화려하거나 누가 봐도 정말 그럴듯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영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점심으로 먹을 수 있는 수준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내 나름의 기준으로 그를 우리들의 식사에 초대했지만 그것에 대한 그의 반응은 너무나 우호적이어서 나도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날의 점심식사 메뉴가 지금도 생각나는 이유는 내가 영국에 온 이후 우리의 식탁으로 불러들인 최초의 사람이 존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식성이 까다롭지 않아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라 "내가 그날 존을 우리의 식사에 초대한 건 정말 잘한 일이야."라고 두고두고 생각할 만큼 맛있게 먹어주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여러가지 맛있는 재료들로 속을 빵빵하게 채운 샌드위치에다 오븐에서 갓 구워내어 겉바속촉인 피시핑거(fish finger)와 대다수의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슈스트링(shoestring: 감자칩의 일종) 그리고 송이버섯과 완숙 토마토 구이를 함께 담아내어 후추 살짝 뿌려 식탁에 올려놓았더니 상차림이라고 까지 명명할 수는 없겠지만 제법 조화로워 보여서 내심 만족한 마음이 들었다. 거기에다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저그에 담긴 순도 백 퍼센트의 오렌지 주스의 색감은 어찌 그리 예쁘던지... 우리 한국식 손님접대의 기본인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린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지만 내 마음에 들면 그만이다. 아니다. 존이 좋아했으니 그만이다. 더구나 샌드위치의 필링(속채움)을 많은 영국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샐러드의 조합에다 마요네즈 듬뿍 넣어 만들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왜 우리 모두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배고플 때 잘 끓인 라면, 진수성찬 안 부럽다. 뭐, 이런 거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자화자찬이 심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래도 내가 그날 존을 식사에 초대한 일은 두고두고 잘한 일 같다. 혼자 살아가는 그도 우리 가족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녹아들어 흡족한 시간을 보내며 잠시나마 인생의 시름을 놓는 듯했고 나도 그런 그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했다. 한 시간도 채 못 되는 시간에 존과 우리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앞에 놓여 있던 어찌보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도 있는 음식이라는 것이 매개체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나는 기회가 있는 대로 존을 우리의 점심식사에 초대하여 우리만의 즐거웠을 수도 있는 그 시간을 그와 함께 나누었다.


영국에서 살다 보면 누구를 식사에 초대할 일도 생기고 또 초대받는 일도 빈번하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인교회가 아닌 영국인들이 다니는 교회에 다녀서 목사님이나 다른 교회의 성도들로부터 식사초대를 받는 일 이 종종 있었다. 일요일의 예배가 끝나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점심 식사를 하면서 늘 교회문제나 신학에 관한 일에 대해 논하기를 좋아했던 데이비드라는 분도 생각이 난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존과 함께 식사를 한 일들이 유독 내 마음에 남은 것은 서두에서도 밝혔다시피 그로 인해 우리 친정아버지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늙어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시기였으므로 영국 노인들의 실상에 대해 잘 몰랐던 내가 어렴풋이나마 그와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다. 훗날 영국의 양로원에서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긴 하였지만 노인들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그가 내게 선물로 준 셈이다. 노인들을 돌본다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내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만한 일이었다는 것을 여기에서 말해두고 싶다.


영국 하면 떠오르는 것이 일 년 내내 푸른 잔디와 아름다운 건축물들과 더불어 노인들의 복지가 잘 보장되어 있는 나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그 말도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인간이 나이 들어가면서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은 만국공통이라는 것을 내게 깨우쳐 준 계기를 만들어 준곳이 내가 영국에서 풀타임 '간호사' -그곳 양로원에서 노인들이 나를 찾을 때 부르는 호칭이었기는 하지만 나는 정식 간호사는 아니었다.- 로 일했던 양로원이라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흔히 불리는 통칭은 케어 어시스턴트(care assistant, 돌보는 조력자)였다. 하긴 한국의 대학병원에서 일했던 정식 간호사들도 이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 것도 내가 그곳에서 일하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영국 대학에서 간호학과를 이수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실습과정을 거쳐가는 것도 여러 번 보긴 했다. 나와 함께 라운딩을 하면서 그곳 입주자들에게 차를 제공하는 일을 같이 하기도 했으니까.


하여튼 존은 여러모로 내 삶에 동기부여를 하게 만든 숨은 공로자였다는 것을 여기에서 밝혀 두고 싶다.


- 해진의 영국 거주기 4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