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꽃과 나무를 돌보고 때맞춰 잔디를 깎아주는 것이 영국 생활에서는 아주 중요하다고 몇 번은 말한 것 같다. 본머스에서의 집주인이었던 클라이브는 한 번도 우리에게 이런 일로 세입자에게 잔소리를 한 적이 없었지만 어떤 집주인들은 집 한 채 가진 자신이 무슨 영주라도 되는 줄 알고 아무 때나 찾아와서 간섭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두번째로 한국을 떠나 영국에 정착한 곳은 뉴몰든이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집을 얻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전 집주인이었던 본머스 랭귀지 스쿨의 교장 선생님인 클라이브가 이곳 우리가 집을 얻으려고 찾아간 뉴몰든의 부동산 에이전트에게 최고의 추천서를 보내 주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산 이력이 있는 사람들이 다시 다른 곳에 집을 얻으려면 대개는 전번 집주인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전에 살던 곳에서 집세를 제떄에 지불하지 않았다거나 청소를 게을리했다면 감점을 받아서 다음에 집을 얻으려면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이런 사실까지는 몰랐는데 부동산 중개인이 그렇게 말해 주어서 안 것이다.
우리의 두 번째 거주지였던 뉴몰든은 런던과 가까운 편이라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많았다. 남편과 아이가 학교에 가고 나면 그 당시 백수였던 나는 런던에 갈 기회가 많았다. 런던행 기차를 타고 시내에서 내리면 보로우 마켓(Brough Market)이나 캠던마켓(Camden Market) 같은 큰 시장에서 장을 볼 수도 있었고 왕궁이나 유명한 공원, 미술관들이 다 시내에 운집해 있어서 그런 곳을 별 부담 없이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특히 좋아헀던 곳은 내셔널 갤러리 (National Gallery)였는데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반 고흐나 램브란트, 모네 등의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소액의 기부금을 낸 적이 있었던 기억은 있다. 리버티(Liberty) 백화점과 헤러즈(Harrods) 백화점 같은 전통적인 백화점은 내가 런던에 들를 때마다 거의 꼭 가보는 장소이기도 하다. 리젠트 스트리트(Regent Street)는 버버리 매장과 리버티 백화점이 있는 곳이어서 눈요기하기도 좋아 자주 들리는 곳이었다. 우리 집주인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런던에 대해 몇 마디 언급한 이유는 그래도 그곳에 살았을 때가 가장 런던과 접근성이 좋아서 자주 다녔던 까닭이다.
우리의 두 번째 집주인 빌은 평범한 듯 약간 특이한 사람이었다. 전화도 없이 우리 집에 와서 잔디가 자라 있으면 아무 말 않고 창고로 가서 잔디 깎는 기계(lawn mower)를 꺼내어 또 아무 말없이 잔디를 깎아주고 그 일이 끝나고 나면 내가 주는 커피 한잔 마시고 나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가 자기 갈 곳으로 가곤 했다. 그런 일이 자주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한마디의 잔소리도 하지 않고 마치 그 일이 자신의 일인 것처럼 하곤 했던 것이다. 자기 집을 내 소유의 집인 것처럼 깨끗하게 관리하며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고맙다는 표시였던 것 같기도 한데 잔디 깎는 일이라면 우리 남편이 할 일인데 왜 빌이 와서 하는지 나도 그 이유는 아직 확실히 모르겠다. 우리 딸은 미혼이었던 집주인인 빌이 혹시 엄마와 얘기하는 것이 좋아서 우리 집을 자주 방문한 것이 아니냐는 농담 섞인 이야기도 했다.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래도 영국 남자들은 신사라는데 전화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우리가 자기의 소중한 재산인 이 집을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그런가 보다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세상에 별 희한한 사람도 많은데 그 정도는 그냥 봐주기로 했다. 우리 부부보다 두세 살 어린 젊은 나이에 이런 집을 이만한 동네에 두 채나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꽤 성실하게 일해서 소위 말하는 자수성가한 사람인 것 같았다. 우리 집에 배관을 봐주러 온 배관공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그는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모터바이크를 파는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아일랜드 특유의 사투리가 섞인 영어를 썼던 그가 우리 집을 빠져나가면 어린 딸과 나는 함께 그의 이이리쉬 악센트를 흉내 내면서 배꼽이 빠지게 웃었던 기억도 여러 번 있었다. 이건 여담이고,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내가 보기엔 영국에는 집주인이 세입자의 집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에 대한 권리가 그리 낯선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사사건건 간섭하는 집주인들을 만나지 않은 것은 참 다행스러웠던 일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비싼 집세를 지불하고 살면서 조금이라도 집주인이란 자가 와서 싫은 소리를 하면 나는 정말 그가 보기도 싫을 것 같았다.
하루는 누가 문을 두들기기에 나가봤더니 빌이 서 있었다. 자주 얼굴을 봐서 그런지 이제 그는 손님도 아니었다. 그저 지나가다 아무 때나 우리 집에 들를 수 있는 사람 정도로 친근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책 두 권을 들고 있기에 얼른 그를 집안 응접실로 들였다. 그러자 그는 쑥스러운 얼굴로 내게 들고 온 그 책들을 내밀었다. 내게 주는 선물이란 것이다. 한 권은 꽃꽂이에 관한 책이었고 다른 한 권은 정원 가꾸기에 관한 책이었다. 내가 꽃을 좋아한다는 것은 빌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니 정원을 더 잘 돌보아 달라고 주는 선물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일단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그 선물을 받았다.
그 이후로도 빌은 가끔 우리 집에 들러 차 한잔과 비스킷을 나누며 우리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저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한국과 영국의 다른 문화에 관한 질문과 답들이 많이 오간 것 같다. 남편도 빌이 싫지 않았던지 곧 잘 말을 걸곤 했다. 상냥했던 빌이었던지라 남편의 약간 부족한 영어에도 잘 대답해 주었고 남편도 영어를 배우기에 만만한 상대라고 생각하고 빌에게 잘 대했던 것 같았으며 그가 집주인인데도 불구하고 별 부담을 가지지 않고 대했던 것 같다. 이런 그와의 관계가 아마 남편과 내가 일을 가지기 전 까지는 계속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 3,4개월이 지난 후에 다 저녁때가 되어 빌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팔에 또 무엇인가 들고 있었다. 소파에 앉자마자 선물이라며 정성스럽게 포장한 것을 내게 불쑥 내미는 것이 아닌가. 그가 보는 앞에서 풀어 봤더니 반짝반짝 빛나는 은으로 된 티 포트와 작은 쟁반이었다. 저번에 책을 두권 선물로 받았을 때는 별 부담을 못 느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선물을 가지고 온 그의 성의를 생각하면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에도 일단 받아놓고 이 집을 떠날 때 이것들을 여기에 두고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에게 고맙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빌은 내가 내주는 차 한잔을 마시고는 또 별 말없이 우리 집을 나갔다.
그 후 일 년 정도 지난 후에 우리 남편은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나도 비슷한 시기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으므로 이를 안 빌은 또다시 우리 집에 전처럼 들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는 좀 많이 외로왔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친구도 별로 없었던 것 같았고 어떻게 한번 우리 집에 들렀을 때 우리가 잘 대해 주었고 그 후에도 자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변함이 없는 것을 알고 집주인과 세입자라는 관계를 떠나서 우리에게 진심으로 대했던 것 같다. 그 집에서 사는 동안 그는 우리를 조금도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여름에도 보통은 22도를 넘지 않은 것이 영국의 날씨였던지라 에어컨이 필요 없는 영국에서는 선풍기면 충분했다. 그는 여름이 되기 전에 우리에게 큼직한 선풍기를 사다 주었고 또 정수기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바로 기사를 보내 주기도 했다. 우리 부엌의 하수구가 말썽을 부리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배관공을 보내어 해결해 주기도 했다.
우리는 두 번 다 좋은 집주인을 만났던지라 영국의 집주인들은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누구나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대충 그렇게 얼버무려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중에 여러 사람들에게 들은 영국의 집주인들에 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믿을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나쁜 쪽으로 말이다. 그런 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클라이브에게도 빌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어디에나 좋은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이 섞여 사는 세상이니 내가 아무리 잘하려 해도 나쁜 사람을 만나면 곤란한 일을 겪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영국에 3년 정도 사는 동안 두 번 다 좋은 집주인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던 것이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