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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발화인 아이의 미래를 외치다

자폐 아들의 언어평가 후 생긴 꿈

by 잰걸음

서울대병원서 자폐 판정을 받은 이후 나온 조치 중에 하나가 언어검사를 받아보는 거였습니다. 역시나 오랜 대기로 인해 대략 1년 후로 일정이 잡혔습니다.


자폐 판정 나왔을 때가 30개월 정도였는데 하선이는 ‘음~’ 이외의 말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1년 후에는 조금이라도 하겠지라는 막연한 소망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1년 뒤에도 여전히 무발화였습니다.


그래서 언어검사를 미루고 싶었지만 일정을 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착잡한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작은 진료실로 들어가니 검사자분께서 아이와 함께 이런저런 교구로 상호교류하면서 아이의 반응을 살피셨습니다. 수용언어 및 표현언어의 수준뿐만 아니라 비언어적인 반응도 다 체크했습니다. 더불어 아이에 대한 평소의 관찰을 근거로 보호자 대상 설문조사도 함께 작성해서 제출했습니다.


부모인 저도 함께 들어가서 아이의 반응을 보는데 무발화인 것도 문제지만 수용언어, 즉 언어의 이해도 자체도 많이 떨어지는 것을 보니 속이 갑갑해오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새로운 공간이라 아이도 자리에 가만히 있지는 않아 검사가 중간중간 끊겨서 속으로는 열불이 터지기도.


시간은 1시간 내외로 걸렸고 검사자분의 따뜻한 격려의 말로 종결되었습니다.


검사를 마친 후 1개월 정도 후에 결과를 들으러 담당 의사 선생님께 다시 찾아갔습니다. 결과지에는 다양한 관찰 사항이 있는데 요는 43개월인 우리 아들이 수용언어, 표현언어가 12-13개월 정도 수준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즉, 일반 아이들과 2년 이상의 언어 수준의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흔한 ‘엄마’도 못하는 상황이라 기대 자체도 없었지만 실제 결과를 전문 기관으로부터 듣는 것은 확인 사살과 같아서 기분이 다운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결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점이 있었습니다.


저희에게는 초진부터 정해진 담당 의사 선생님 말고도 서울대학교 주간치료실을 다니면서 다른 선생님과 상담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마침 시기가 맞아서 하선이의 언어평가 결과에 대한 두 명의 의사 선생님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두 분에게 같은 질문을 드렸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언어 수준 차이가 너무 나는데… 열심히 훈련하면 이 갭이 줄어들 수 있나요?”


그런데, 여기에 대한 답은 천지 차이였습니다.


의사 A : (빛나는 눈으로) “네, 가능합니다.”

의사 B : (단호하고 메마른 어조로) “이 정도 차이는 따라잡기는 어렵죠.”


너무나 상반된 의견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화도 났습니다. 도대체 같은 병원에서 이렇게 전혀 다른 얘기를 할 수가 있는 건지… 특히 의사 B와의 상담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심지어 검사 결과를 보고 난 후의 첫 반응은 기가 막혔습니다.


“언어가 12개월 정도 수준으로 나왔네요. 지금으로서는 별로 할 말이 없네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과거 경험을 통해서 상세한 상담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너무 예상치 못한 반응이어서 멍하게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 진료는 수 분 내로 끝났고 진료실을 나오고 나서야 온갖 감정의 파도가 덮쳤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감정 소모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어쩌면 의사 A의 말이 듣기에는 좋지만 희망 고문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어떤 마음가짐과 행동을 취하느냐는 부모의 몫.

저는 의사 A 믿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저는 아무리 전문가 의견이라도 내가 무엇을 믿는가는 스스로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같은 결과값에도 이렇게 상반된 의견이 나온다면 어차피 복불복.

희망회로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엄마인 나부터 믿지 않으면 누군들 믿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야... 저도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꿈꾸는 대로 아이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소 허망하게 들릴지언정 보다 과감한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3개 국어를 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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