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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2피스를 제대로 꽂는데 걸린 시간... 8개월!

by 잰걸음

우리 아이 자폐 치료로 진행했던 ABA (응용행동분석)의 또 하나 예시를 공유해 볼게요.


'모방'이 교육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래서 ABA를 하면 따라하기 비교적 쉬운 대근육, 소근육, 안면, 구강모방 순서대로 진행합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모방을 할 때 정확도가 중요합니다. 가장 쉬운 대근육모방을 제대로 해야 그다음 더 어려운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소근육 훈련의 목적으로 레고를 많이 씁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레고 놀이가 아니라 일단 레고 단 2피스를 꽂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치료사가 먼저 2피스를 조립한 후에 아이에게 똑같이 모방하게끔 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점차적으로 피스 수를 늘려갑니다. 아이는 레고의 위치, 순서 등을 잘 관찰해서 제대로 꽂는 것이 미션입니다.


저희 아이는 아기 때부터 옥스퍼드 같은 큰 블록을 잘 갖고 놀아서 어렵지 않게 진도를 뺄 수 있을 거라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2피스 진도 떼는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8개월이나 걸렸습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길게 할 건 아니었는데 문제는 아이보다는 저에게 있었습니다.


애초에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었기에

2피스라도 조금 어려운 모양의 피스에서 시작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뭐가 문제지?


ABA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아이가 잘 모방하게끔 가장 쉬운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아이가 실수하지 않고 성공 모멘텀을 계속 쌓아 올리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1번이 제가 초반에 선택했던 레고 피스였습니다. 모양도 둥글고 면이 넓다 보니 다른 레고를 꽂을 때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자꾸 실수를 하니까 '아니'라는 피드백을 계속 주게 되고 그러다 보니 아이는 짜증을 내는 악순환이 일어났죠. 저 역시 왕초보 치료사였기에 '왜 안되지?' 하면서 덩달아 짜증 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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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ABA 선생님께서 조언을 주셔서 결국 2번 세트로 조금 더 쉽게 피스를 바꿨는데 이것도 잘 안되서 결국 가장 단순한 조합인 3번으로 하향 조정해서 기초부터 닦았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건 아이가 '정확하게' 따라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레고 꽂을 때의 위치, 방향, 순서가 시범 보인 '그대로' 나와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쉬운 3번 조합에서도 아이가 제대로 안 보거나 실수하면 바로 오반응이 나오기 십상입니다.


3번에서 몇 개월을 연습을 하다가 100% 정반응이 나올 때 다시 난이도를 도로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2피스에서 3피스로 넘어가게 되었고, 워낙 가장 기본인 2피스를 오래 하다 보니 3피스는 훨씬 빠른 속도로 마스터했고 4피스도 금방 넘어갔습니다.


이런 식으로 점점 난이도를 높이다가 최종적으로는 보통 레고를 사면 같이 딸려오는 설명서를 보고 혼자 조립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ABA를 엄마가 하다 보면 결국 내내 욕심과의 싸움입니다.

더 빨리 진도를 뺐으면 하는데 결국 애꿎은 아이만 혼내다가 둘이 지쳐 쓰러져 자는 적도 많죠.


하지만 과욕을 버리고 0에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실제로 훈련 진행하다 보면 속이 터지다가 제대로 꽂을 때의 희열은 형언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도 더 신이 나서 그 다음에 더 잘하게 되구요.


이렇게 저희 아들과 저는 매일매일 한 걸음씩 나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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