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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아동이 숫자에 집착하는 이유?

by 잰걸음

자폐 아동은 어떤 특정한 현상이나 물건에 집착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아들은 '숫자'를 특히 좋아합니다.


저희가 대학로 서울대병원에 매주 갈 때마다 한강을 건너야 하는데 그때 잠수교 혹은 반포대교를 자주 이용합니다. 아이가 반포대교 보다는 잠수교로 내려가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데 처음에는 아들이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것이 좋나...? 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철저히 제 관점에서 비롯된 생각이더라구요.


잠수교는 다리마다 큰 숫자가 써 있어요. 그럼 저희 아이는 차로 지나치면서 다리의 숫자를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해요. 결국 우리 아이가 잠수교를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숫자'랍니다.


이외에도 숫자가 적힌 다른 물건, 장난감, 엘리베이터 같은 것을 접하면 우리 아이는 항상 주목을 하곤 합니다. 우리 눈에 보기에는 그냥 숫자일 뿐인데 그래서 그냥 넘기는 것들이 우리 아이 눈에는 특별해 보이나봐요.


이처럼 숫자 뿐만 아니라 바퀴, 줄 등을 집착하는 자폐 아동들의 특징이 있지요.


도대체 왜??


자폐 아동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는 쉽지 않지만 성인이 된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은 대니얼 태밋 (Daniel Tammet)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좀 참고가 됩니다.


"파이처럼 연속된 숫자를 외우면 불안이 가라앉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파이는 언제나 똑같기 때문이죠. 100% 예측이 가능합니다.... 자폐 아동들이 색깔 블록이나 장난감 자동차를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길게 늘여 세우듯 저는 항상 똑같은, 신뢰할 수 있는 패턴에 들어맞는 숫자에서 평화와 기쁨을 느낍니다."


TED 강연에도 나온 그는 파이를 소수점 22514자리까지 외워 유럽의 기억력 경연대회에서도 수상할 정도로 숫자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그의 테드 강연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숫자에 색과 도형을 매칭하는 등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해석을 하더라구요.


"어렸을 때 저는 남들에게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의 행동에는 아무런 패턴이 없었거든요. 절대 같은 일을 두번씩 하지는 않죠. 그래서 반 아이들과 친구가 되는 대신 숫자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긴 숫자를 부분부분 나누어 패턴을 찾곤 합니다."

<패턴 시커 p.142>


숫자에서부터 시작한 패턴 분석의 훈련을 다른 공부에도 적용해서 다수의 외국어와 학문을 습득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자폐 아동들은 지능 수준과는 상관 없이 패턴을 통해 안정감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자동차 바퀴나 세탁기 돌아가는 모습처럼 구체적인 것이든 아니면 파이처럼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서든.


예전에는 사실 저희 아들이 그런 집착을 보일 때 좀 싫었습니다.


한 곳에 지나치게 집중을 하면 그 주변을 보지 않게 되고 사회성의 결여로 이어진다라고 여겼습니다. 물론 그것이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남의 눈치에 민감했던 초반에는 더더욱 신경 쓰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경우에 맞지 않게 너무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은 중재를 할 필요가 있지만 지금은 아이의 그런 모습도 아이 스스로 평안함을 추구하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구나... 라고 생각을 하면 너무 막으려고만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다보니 이런 장점을 역으로 더 잘 활용할 방법은 없을까라는 고민도 하게 됩니다.


오늘도 거실 매트 위에 누워서 흥얼거리며 블록과 자동차 행렬을 가지런히 만들어가는 아들을 보면서 아이의 소중한 힐링 타임을 지켜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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