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브런치북으로 연재를 해야했는데 일반 매거진글로 잘못 발행해서 다시 올립니다. 오늘 연재도 진행하겠습니다)
나도 그랬고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엄마들과 얘기해다보면 흔히 빠질 수 있는 착각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언어'만 할 줄 알면 다 해결될거야.
아무래도 말의 능숙도가 아이의 발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에 하나이기에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죠. 그래서 각기 다 받는 치료는 다르지만 '언어치료'만큼은 거의 예외 없이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언어에 집중하는 것이 답일까요?
아이가 말을 할 줄 알고 이해하면 문제 행동들이 없어지는걸까요?
언어는 모든 발달의 '상위 단계'에 있다고 합니다.
다른 모든 감각들이 어느 정도 발달이 된 상황에서 발현되는 것이 언어인 셈이죠. 아직 기본이 안 깔려 있는데 급한 마음에 무작정 언어에 집중을 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어 그 자체보다는
그 전 단계에 필요한 학습의 단계 및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제가 꾸준히 진행했던 자폐 치료인 ABA(응용행동분석)에서는 아이의 행동 중 가장 먼저 중재해야 하는 행동이 아래 세 가지라고 규정합니다.
본인과 남에게 위험할 수 있는 행동 (e.g. 폭력)
배움에 방해가 되는 행동 (e.g. 탠트럼)
남이 봤을 때 이상한 행동 (e.g. 상동행동)
이런 행동들이 소거되지 않으면 이 아이는 어떤 학습에도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인 학습의 '자세'를 잡아야 하는 것이 첫번째입니다.
그리고 언어를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여러 가지 능력 중에 '모방'이 있습니다. 근데 그렇다고 바로 구강 모방으로 점프를 하면 무리가 있습니다.
먼저 해야하는 것 중에 하나가 대근육모방입니다. 아이와 마주 보면서 '따라해'하고 대근육 (주로 팔, 다리)을 이용해 동작을 만들면 아이가 그대로 따라하는 원리입니다. 이때 ABA 선생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동작의 '정확성'입니다. 예를 들면 '배 두드려' 할 때 가슴 쪽이 아니라 배꼽 주변으로 두드리는지, '무릎 올려'라고 했을 때 아이가 직각으로 올리는지 등입니다.
처음에는 그런 세세한 부분도 다 교정하라고 컨설팅 받을 때 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손을 들었는데, 각도까지 요구하는건 어린 아이한테 오버 아닌가...?'
하지만 여기에는 납득할만한 이유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대근육모방은 가장 따라하기 쉬운 모방입니다. 그 다음으로 소근육모방, 안면 모방 그리고 언어 모방이 뒤를 잇습니다. 가장 쉬운 대근육모방부터 제대로 따라하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난이도가 높아지는 언어 모방에서 나오는 미세한 발음 차이 등을 아이가 민감하게 캐치해서 따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하루 빨리 언어 진도를 나가고 싶어서 모방이 100% 안되도 스리슬쩍 넘어가기도 했지만 원리를 이해하고 나서는 정확도에 더 신경 쓰게 됩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일관적인 반응이 나오는지 확인 후 다음 진도를 넘어가게 됩니다.
결국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배우는게' 중요합니다.
하나씩 하나씩 배우다보면 언젠가 언어도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처럼 선행학습이 중요한 시대에 사실 이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특히 학부모들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교육 마케팅은 가히 공해 수준이죠. 제가 인스타그램을 끊어낸 이유 중에 하나가 5-6세 엄마들 대상으로 한 광고들 때문. 어떤 것이 '진짜' 필요한 선행학습인지 엄마인 내가 먼저 공부해서 원칙을 정하고 고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비록 지금은 '엉금엉금' 기어가지만
때가 되면 물을 만나 능숙하게 물살을 헤쳐나갈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