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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개월의 침묵, 그리고 찾아온 기적 같은 첫 '엄마'

by 잰걸음

보통 아이들이 처음으로 떼는 단어가 '엄마'죠.

빠른 경우 12개월 이내에도 첫 '엄마'를 떼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는 전형적인 무발화였습니다.

'아~', '음~' 처럼 초간단 의성어 이외에는 그 어떤 단어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습니다.

자폐 중증 판정이 난 이후 이런저런 치료를 전전하다가 ABA 홈세러피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때 선생님께서 주신 주요한 주문은 아래 3가지였습니다.


입과 혀 운동을 계속 시켜줘라

말이 늦은 아이들 중에 일부는 입과 혀 주변 근육이 덜 발달되어서 그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첫 시작은 엄마가 직접 운동을 도와주는 '구강 마사지'입니다. 즉, 엄마의 손가락으로 아이 입 안 구석구석을 마사지해 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이도 제 손가락도 깨물면서 어색해하지만 점점 익숙해집니다. 이걸 하면서 점점 아이가 스스로 혀 운동을 할 수 있게 입 주변에 꿀 같은 걸 묻혀서 혀를 움직여 핥아먹게끔 하는 등 입과 혀를 계속 풀어주었습니다.

현재 언어 능력과는 상관없이 수용언어를 계속 늘려줘라

표현은 물론이고 말에 대한 반응이 사실 거의 없다 보니 아이가 이 말을 이해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를 알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ABA에서는 새로운 단어를 교육시킬 때 '인지 => 매칭 => 수용 => 표현'의 단계를 거칩니다. 그림카드를 이용해서 아이에게 반복 노출을 시킨 후에 아이가 이해를 했는지를 단계별로 확인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당근, 미국 구매 대행으로 구입한 카드들 및 제가 주변에 사물들 찍어서 출력한 사진들로 한 1,000장을 아이에게 노출시켜 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화는 계속되지 않았고 마음만 초조해졌지만 ABA 선생님께서는 표현언어는 모든 발달의 상단에 있으므로 포기하지 말라고 계속 독려를 해주셨습니다.


무발화일수록 미디어는 금물!

출생 후 2년까지는 미디어를 보여주지 말라는 얘기는 흔히들 있지만 사실 따르기 쉽지는 않습니다. 저나 남편도 평소에 TV를 안 보더라도 틀어놓는 스타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디어 노출이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선생님의 호통 이후에는 교회 온라인 예배를 제외하고는 전부 끊어버렸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동시에 대근육, 소근육모방 프로그램을 더 열심히 했습니다. 이유는 언어 역시 '모방'이 제일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모방이 그나마 쉬운 대근육부터 시작해서 구강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어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무릎 올려', '손 들어' 등의 지시를 하면서 관찰력, 모방 능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이렇게 매일매일 다양한 훈련을 하면서 발화를 유도했지만 기다림은 길었습니다. 그야말로 지리멸렬한 하루하루 가운데 조금씩 변화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나온 아이의 첫 '엄마!'

아이가 42개월일 때… 즉 보통 아이들보다 물경 30개월이나 늦었습니다.

사실 이때는 너무 기쁜 나머지 친척들, 지인들에게 전부 영상을 돌리면서 '이제 됐다!'라고 자축했습니다. 물론 이 이후 언어가 급속하게 폭발적으로 늘지는 않았습니다. 역시나 더듬더듬 조금씩 조금씩 늘어났지만 시작은 시작이니 크게 마음 졸이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 두세 단어를 조합해서 문장을 완성하는 수준을 지나 이제는 제법 자기 의사 표현을 잘하는 편입니다. 그 말이 없던 아이가 수다쟁이가 된 것을 바라볼 때면 참 감개무량하죠.

아이의 언어 지연으로 고생하시는 부모님들이 참 많으시죠.

벽 보고 얘기하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낄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훈련을 시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아이 안에 우리의 노력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내 꿈은 가장 알맞은 때에 실현된다.
<보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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