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이는 43개월 때 첫 언어발달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 후로 1년 뒤, 두 번째 검사를 받게 됩니다.
익숙한 서울대병원으로 향하고 작년과 비슷한, 젊으신 여자 선생님 한 분 혼자 계시는 깔끔한 하얀 진료실에 아이와 함께 들어갔습니다.
작년에 했을 때는 어려서 그런지 관찰뿐만 아니라 부모 설문지도 같이 했는데 이번에는 설문지 없이 그냥 아이와 독대하시고 아주 잠깐 저와 함께 노는 것을 관찰하셨습니다. 주로 그림이 그려진 카드나 간단한 장난감으로 아이에게 질문을 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우선 수용언어 (얼마나 많은 단어를 이해하고 있는지)부터 해서 나중에는 표현언어도 꼼꼼히 확인하시더라구요. 저는 뒤에 앉아서 아들이 어떻게 대답하는지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기억나는 질문들의 예시는 아래와 같아요.
(여러 사물이 있는 카드를 보며) 이 중에서 외투는 어떤 거야?
(사람들이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는 이미지들을 보며) 수군거리는 사람들 어디 있어?
(하나의 나비 vs. 다수의 나비 사진을 보며) 나비'들' 사진은 어떤 거야?
(얼굴 표정 가리키며) 기분이 어때 보여?
(숫자가 랜덤으로 적혀 있는 카드를 보며) 이런 걸 뭐라고 그래?
(아이들이 각자 그림을 그리는 카드를 보며) 안경 낀 아빠를 그리는 아이는 누구야?
(아이 혼자 노는 놀이터 vs. 다수가 같이 노는 놀이터의 카드를 보여주며) 나밖에 없는 놀이터는 어느거야?
(약간의 스토리가 있어 보이는 그림 카드를 보여주며) 이 그림 설명해 줘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 알지? 그거 설명해 봐
제가 몇 가지만 적었지만 아주 촘촘하게 언어 수준을 알아보기 위한 질문들을 하셨습니다. 점심 먹은 후인 데다가 본인이 자신 없어하는 표현언어를 집중적으로 테스트해서 아이가 조금은 자세가 흐트러지고 답도 명확하게 안 하는 것이 보였는데 선생님께서 애매한 것들은 더블 체크하면서 꼼꼼히 봐주셨습니다.
뒤에 앉아 있으면서 질문할 때마다 아이보다는 제가 더 가슴 졸여가면서 듣고 있었습니다. 사실 들으면서 '이거 다 ABA 치료 프로그램에 다 있는 건데... 더 열심히 할걸... ㅠ ㅠ' 이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동시에 분명히 알만한 건데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집중력 흐려지는 모습을 보면 순간적으로 욱하기도.
질문의 난이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마음이 갑갑해지면서 틀린 것들을 마치 오답노트 정리하듯이 뒤에서 핸드폰으로 허겁지겁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검사가 어느덧 끝나고 선생님은 아이에게 스티커, 색연필 등을 주면서 놀게 하고 저와 짧은 상담을 하셨습니다.
사실 작년 선생님 대비 차분하고 약간은 도도해보이는 첫 인상이어서
딱히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상담 시간이...
감동이었습니다.
작년 언어 검사 대비 좋아진 점들이 많아요!
최종 진단은 몇 주 후에 담당 소아정신과 선생님께서 해주시겠지만 일단 요는 우리 애가 대략 만 3세의 언어 발달 수준을 보인다는 거였어요. 즉, 지금 55개월이니까 36개월의 언어 수준이라고 하면 대략 19개월 차이예요. 이걸 작년의 수치와 비교하면 아래와 같아요.
제가 1차 언어검사 이후 담당 소아정신과 선생님께 '다른 친구들과 2년 이상 차이가 나는데... 이 갭은 줄어들 수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안 되죠'라고 단호박으로 얘기해서 상처받았다는 얘기도 한번 포스팅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이를 감사하게도 12개월이나 단축한 셈입니다.
안된다고 단칼에 잘랐던 그 선생님께 따지듯이 다시 묻고 싶어지더라구요.
사실 이것만으로도 감격인데 언어발달 검사해 주신 선생님이 정말 숨도 안 쉬고 앞으로 어떻게 더 가르치면 좋을지를 거의 랩 수준으로 읊으셨습니다. 우리 아이의 가장 시급한 이슈는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게끔 훈련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평소 생활하면서 적용할 수 있는 실전팁들을 한 15개 정도 순식간에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 제가 놓친 부분이 있었는데,
검사 도중 아이가 집중력이 흐려질 때가 있어서 제가 신경 쓰였다고 했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아이의 집중력이 정말 좋아졌어요.
'진짜 그런가...?'
싶어서 작년 언어검사 기록을 살펴보니 진짜 그렇더라구요.
작년에는 이렇게 난동을 피운 것 대비 오늘은 중간중간 머리 쥐어뜯고 엉덩이가 들썩들썩했지만 자리 이탈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시 따르기도 몇 번 빼고는 거의 다 따랐구요.
사실 1년 만에 이렇게 많이 변했는데 결국 제 기준이 높아져서 마음 조리고 있었던거더라구요. 이럴 때 보면 사람이 참 간사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언어발달 검사를 끝나고 나오는데 고생한 우리 아들 너무 기특해서 칭찬 많이 해줬습니다. 저도 간만에 서울대병원에서 정말 '도움 되는' 상담을 받고 나와서 기뻤습니다.
무엇보다 '자책'이 아닌 '감사함'과 '소망'을 안고 나올 수 있었다는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상담 끝나고 나올 때 선생님 손을 꼭 잡고 '감사합니다'라고 얘기했는데 저의 진심이 닿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