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서울대학교병원에서 2차 발달검사 결과를 받는 날.
익숙한 병원 로비에 앉아 담담하게 결과를 듣겠다고 했건만 막상 기다리고 있으니 살짝 긴장은 되었습니다. 물론 2년 전 자폐가 뭔지도 몰랐을 때 ‘자폐 중증’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접했을 때보다는 나름 성숙해 있었죠.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의연하자... 라고 속으로 계속 대뇌이고 있었습니다.
사실 꼭 그럴 필요도 없는데 아이한테도 진료실 들어가서 인사하고 돌아다니지 말고 똑바로 앉아있으라고 주문하기도.
‘딩동’
순번이 돌아와서 아이 손 잡고 들어갔습니다.
제가 몇 번 글에서 소개했지만 저희 담당 의사 선생님을 제가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워낙 환자가 많고 시간은 짧아서도 그렇겠지만 상담이 너무 드라이하고 순식간이라는 점.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황망한 부모들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준 에피소드는 몇 번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큰 기대를 안 하고 들어갔습니다.
근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저희가 앉자마자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K-CARS점수가 2년 전에는 37.5점이었는데
이번에는 33.5점이 나왔네요!
좀 부연설명을 하자면, 크게는 K-CARS 그리고 ADOS 검사를 했는데 K-CARS는 부모가 작성하는 질문지를 바탕으로 한 검사고 ADOS는 평가자가 아이와 직접 관찰하면서 내리는 결과입니다.
K-CARS에서 보통 37점 이상이면 자폐 중증이고 저번에 37.5점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33.5점이 나왔습니다.
이 점수면 경도에서 중등 수준의 중간 정도가 됩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갸우뚱하고 있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
2년 만에 이 정도 결과면 아주 빠르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럼 나중에 30점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도 있냐고 물어보니 그런 경우도 간혹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훈련을 하면 좋냐고 물으니 현재 하고 있는 그룹 언어치료도 하고 ABA도 계속하면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이 모든 상담 과정에서 그동안 이 선생님께서 느껴졌던 차가움과 딱딱함은 없었습니다. 물론 환하게 웃거나 하지는 않으셨지만 제가 봤던 표정 중에 가장 온화한 표정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대로이신데 제 눈에 뭐가 씌인 것일 수도. 그리고 상담 내내 아이를 보시면서 아이가 제 지시를 따르는 것을 흥미롭게 보시더라구요.
사실 ADOS 점수는 더 보수적으로 나왔어요.
아무래도 평가자가 직접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16점으로 나와서 여전히 '자폐증' 범주에는 들어갑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반응은 상당히 고무적이었고 치료하던 거 계속 열심히 하라고 격려까지 해주셨습니다.
처음으로 주치의 선생님이 천사로 느껴졌습니다.
병원을 나오는데 당연히 첫 검사 때와는 다른 풍경과 다른 마음이었습니다.
검사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 호전된 결과가 나왔다고 하니 단전에서부터 뭉클함이 차오르더라구요.
사실 2년 동안 가정 내 마찰도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도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 훈련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감사하고 기쁜 순간들이 참 많았죠.
어떻게 보면
'애써', ‘억지로’ 감사하다고 기쁘다고 세뇌한 순간들일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버티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모여서 아이와 제가 살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있을지는 하나님만 아시겠지만,
이 결과가 나온 날만큼은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