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 처음 만났을 때... 어땠어?

by 잰걸음

Wife asks...

두산을 다니고 있을 때 남편이 나를 만났다.

나도 30대를 지나 일본에서 돌아와서 한창 소개팅을 하던 때다.

나름 스펙 좋다는 사람들도 만나봤는데 오래가진 못했다.

신기하게도 남편은 처음부터 호감이 있었다.

그래서 내 생애 처음으로 2차를 먼저 제안했다.

왜냐하면 1차에서 끝낼 것처럼 하길래.


나 처음 만났을 때 어땠어?
결혼에 대한 확신은 언제 들었고?


Husband says...

너를 만나기 직전까지 우리는 재건축 직전 쥐들이 드글거리는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나도 그렇고 부모님도 결혼에 대해서는 급하게 생각 안 하고 있었어.

그래도 나름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니까 결혼정보회사 같은 데서 연락도 오긴 했는데 신경 안 썼지.

그러다가 같은 교회 다니시는 분이 엄마를 통해서 너를 소개시켜 주셨어.

엄마 아빠가 너 얘기를 듣더니 한번 만나보라고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고

난 늘 그렇듯 엄마 아빠 말은 잘 들었지ㅋ


막상 소개팅한다고는 했지만 사실 내키지는 않았어.

아니나 다를까 너를 첨 만났는데 전형적인 외국계 기업 여자들 느낌이 났어.

내가 IBM에서 여자 임직원들에게 하도 당해서 그런지 그냥 싫더라고.

그래서 처음에는 밥 먹고 빨리 가야지라고 생각했어.

당연히 너도 나를 별로 안 좋아할 거라며..


그런데 의외로 너가 나한테 먼저 차 마시러 가자고 하더라?

그게 나한테는 좀 신선했어.

심지어 너가 첨에는 1차 끝나고 뭐 하냐고 물어봐서 집에 간다고 한다고 했음에도

너가 차 마시러 가자고 해서 '어라?' 했지.


그렇게 차를 마시고 와서 집에 왔는데

엄마 아빠가 자초지종 얘기를 듣고 너무 긍정적으로 얘기를 하시는 거야.

사실 내 얘기보다는 소개해주신 분이 너랑 너네 집안에 대해서 좋게 얘기를 하신 것 같아.

그래서 그 후에 계속 만나면서 조금씩 서로 알아가게 되었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건...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지.


이제 조금씩 결혼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 우리 집안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되더라고. 그냥 의사 집안의 아들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빚 얘기는 전혀 모르잖아.

그래서 이 얘기는 해야겠다 싶어서 날을 잡았는데 그때 하필 비가 엄청 내릴 때야.

기억날지 모르겠는데 차 속에서 내가 너한테 얘기했지.


"사실은 우리 집이 돈이 없고 빚만 있어. 그런데 내가 한 가지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그 빚은 절대로 우리한테 넘어오지 않을거야. 그건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을 거다"


너는 듣는 순간 펑펑 울었지.

빗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아주 대성통곡을 하길래

'아 이제 끝나겠구나...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결혼이야'라고 한숨을 쉬었지.

한참을 울더니 집에 가야겠다고 하길래 보내줬어.


그 후로 너네 부모님이 나를 카페로 불러내서 거의 7시간 넘게 취조(?)를 하셨어.

잘 나가는 의사 집에 어떻게 돈이 없을 수 없냐며 계속 같은 질문을 하셨지.

7시간 내내 사이렌 듣는 기분으로 계속 앉아 있었지. 그런데 부모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거 아니니까. 사실은 나도 왜 우리가 이렇게 돈이 없는지 이해가 안 갔거든ㅎ 그래도 최선을 다해 모든 질문에 최대한 답변을 했는데 집에 오니까 진짜 다리가 풀리더라고.


그러더니만 얼마 후에 너한테 전화가 왔을 거야.

생각보다 긍정적인 태도와 말로 얘기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

그래서 그때 '아 이 사람이다.. 내가 알고 있는 외국계 이미지가 아니네'라고 생각했어.

내가 어려울 때 내 손을 잡아줬으니까

다음에 이 사람이 뭔가를 하자고 하면 내가 다 들어줘야겠구나 싶었지.



Wife thinks...

역시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내가 그때 차 안에서 펑펑 울었던 건 빚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상견례를 한 후에 그 얘기를 들어서이다.

'이 중요한 얘기를 왜 이제서야? 내가 이 남자를 믿어도 되나?'

그래서 사실은 그때 부모님께 그냥 결혼 안 하겠다고 선포했었다.


엄마 아빠도 충격이셨지만 이러다가 과년한 딸 노처녀로 죽을까봐 남편을 직접 심문하신 것이다.

다녀오시고선 갑갑한 마음이시지만 그래도 남편이 살아온 얘기를 듣고 7시간의 고문을 침착하게 버텨내는 모습에 마음이 동하셨는지 되려 나를 설득하셨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결심을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남편은 엄마 아빠에게 지금의 10배는 더 잘하길 바란다. 에라이~ 이 양반아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10화나를 무시했던 그들을 갑으로 만났을 때 어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