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fe asks...
IBM에서 팀동료들에게도 무시당하고 고객사 앞에서 함구령 떨어진 남편.
그런 남편이 대기업 두산에 스카우트를 받았다.
두산은 IBM 때와는 어떻게 달랐고
IBM을 다시 '갑'으로 만났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를 무시했던 IBM 사람들을 갑으로 다시 만났을 때 어땠어?
Husbands says...
두산에 입사를 하니 많은 것들이 달랐지.
일단 제일 인상 깊었던 건 당시 박용만 회장이었어.
두산은 특이하게 박용만 회장님이 전 직원 입사 면접을 보는데 시무식 때도 회장님이 전 직원을 한 명 한 명 다 악수하시더라고. 한때 두산이 '사람이 미래다'라는 슬로건으로 광고했었잖아. 그런데 회장님부터 그러니까 좀 진심 같더라고. 회사 분위기도 훨씬 더 가족적이고.
일적으로는 조금 복잡한데,
처음 면접 볼 때는 두산은 글로벌 세팅이 다 되어 있고 너는 들어와서 안정화시키면 된다고 했는데 들어가서 보니까 뭐 아무것도 없는 거지. 심지어 입사 3일 만에 나한테 바로 미국 출장을 가라고 하더라고. 글로벌 프로젝트 담당 팀임에도 불구하고 토익 점수 높은 사람들은 있지만 영어로 프리토킹이 가능한 사람이 별로 없었던거야. 내가 뭘 아냐며 손사래 쳐도 소용없어서 등 떠밀려서 출장길에 올랐지.
그때 한창 두산이 건설 기계 인수로 포트폴리오 확장을 하고자 하는 타이밍이었는데 소형 굴삭기로 밥캣 (Bob Cat)이라는 미국 회사도 그 대상 중 하나였어. 그래서 미국 출장 가서 시스템 통합하는 거를 현지 직원들과 얘기하는데 누가 주도권을 갖고 가느냐를 갖고 엄청 대치하던 상황이었어. 그래도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도움이 된 건지 외국 애들과 공식, 비공식적 방법 다 동원해서 협상하고 한국으로 보고한다고 매일 3-4시간 밖에 못 자면서 결국 우리가 갖고 왔어.
이걸 시작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도 곳곳에 돌아다니게 됐어. 내가 IBM에서는 거의 그림자처럼 존재감 없이 일하다가 회사를 대표하면서 회사 대 회사로 협상을 한다라는 것이 엄청 값진 경험이었지. 그때서야 비로소 진짜 자신감을 얻기 시작하고.
자신감이 생겨서인지 좀 부끄러운 사건도 있었어.
우리가 고객사이니까 IBM에서도 수시로 와서 우리에게 컨설팅 영업을 했어. 내가 실무 담당이니까 그런 제안들을 나보고 1차 검토하라고 하더라고. 그럼 대리 직급인 내가 IBM 영업 대표들과 만나는 거였지.
그래서 딱 대면 미팅을 하는데 순간 예전의 억하심정이 확 올라오더라고. 사실 그 영업 대표들이 나를 직접적으로 괴롭힌 건 아니지만 내가 IBM에 대한 기억이 너무 안 좋았던 거야. 그래서 뻔히 아는 내용도 '이건 어떻게 되는 거죠?'라며 딴지도 걸고 좀 차갑게 대하고 그랬어. 일종의 '갑질'을 하는 거지. 아마 IBM에서 나를 엄청 욕했을거야.
그때는 나름 쾌감(?)을 느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죄송하고 부끄럽지. 어리기도 했지만 그냥 나도 모르게 그 괴로웠던 기억에 소심한 복수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결국 IBM 쪽에서도 1-2번 더 시도하시다가 포기하시더라고.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여유롭게 분위기 편하게 하면서 설령 계약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좋게 끝냈을 것 같은데... 많이 후회스러워.
Wife thinks....
자존감이 처참히 무너졌던 미국 생활, IBM 시절을 거쳐 두산으로 옮기면서
처음으로 자신감이 회복되었다.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물론 이 시간이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나를 만나면서
남편의 생각과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