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fe asks...
그렇게 IBM에서 많이 깨지고 가장 '모자랐던' 남편은,
IBM 컨설턴트라면 가장 부러워하는 고객사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남편을 그동안 무시하던 동료들로부터도 비결을 알려달라고,
같이 기도해 달라고도 부탁받았다.
어떻게 갑자기 신분세탁(?)이 되었을까.
고객사 앞에서 얘기하지 말라고도 경고받았는데
어떻게 대기업으로 스카우트된 거야?
Husband says...
IBM에 들어가긴 했지만 실력이 터무니없이 모자라기에 정말 주말 없이 일했지. 남들이 하기 귀찮아하거나 싫어하는 업무를 내가 한두 번 자처하니까 서서히 고착화가 되더라고. 매주 월화수목금금금처럼 일하다 보니 갈수록 힘들어지더라고.
'하나님, 저 이러다 죽습니다...'라고 탄식이 나올 정도로.
나도 30대인데 이러다가 결혼하고 가정은 꾸릴 수 있을까 걱정되더라고.
그래서 탈출구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에 잠시 짬을 내서 잡코리아에 내 직무 경험을 업데이트했어. 올려놓고 잊고 있었는데 마침 그 직무가 필요한 곳이 나타난 거지. 내가 주로 했던 업무가 삼성, 아모레퍼시픽, 한국타이어 등 한국기업의 글로벌화를 위한 프로젝트 관리였는데 두산에서 그런 경험자가 필요했던거지. 원래는 IBM에 외주 넣으려다가 비용이 너무 비싸니 차라리 관련 경험자를 채용하자는 의도였더라고ㅎ
그래서 내가 대충 써 올린 직무 경험을 보고 당시 두산 K팀장이 필(feel)이 꽂혔는지 나한테 계속 전화를 하셨어. 당시 IBM 업무 강도가 너무 힘들어서 내가 이력서 쓸 시간도 없어서 조금 시간을 벌려고 했는데 팀장님이 내 이력서를 직접 수정도 해주시고 심지어 입사 후에도 미비한 서류나 조건 등의 이슈로 인사부에 계속 끌려다녔는데 팀장님이 다 커버를 쳐줬어.
"팀장님, 혹시 저 때문에 입장이 난처해지시는거라면 굳이 저를 위해 이렇게까지 힘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고까지 진지하게 말씀드리니 K팀장님이 바로 인사부로 가시더니 담판을 지으시고 오셨어. 그 이후로는 인사부에서 일절 연락이 안 오더라고.
사실 내가 두산로 옮길 수 있었던 비결은...
두산이 내 고객사가 아니었기 때문이야.
일반적으로 IBM 컨설턴트라는 게 첫 번째는 고객사의 현황을 파악하고 그들의 니즈를 듣고 그들이 보지 못한 니즈까지 파악을 해야 컨설팅을 할 수가 있거든. 그렇게 일하다 보면 고객보다 더 그 회사를 알게 되고 같이 일하면서 좋은 레퍼런스를 쌓을 기회가 되기도 하지. 그러다가 고객의 회사로 스카우트돼서 가는 것을 큰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컨설턴트끼리는 서로 그런 걸 부러워하더라고.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나는 다른 고스펙 컨설턴트들 대비 많이 딸려서 특히 고객사 앞에서 아무 말하지 말라고 상부 명령까지 받았잖아. 그런 상황에서 만약 두산이 내 고객사였으면 나를 간파하고 절대 안 데리고 갔겠지ㅋ
그래서 생각해 보면 또 하나의 기적 같은 일이야.
IBM 업무가 너무 힘들어서 나도 부모님도 이직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들어주셨다고 밖에 생각 안되지. 물론 두산 가서도 힘든 일들이 있었지만 IBM은 컨설팅이라는 업무상 매일매일이 피 말리는 전쟁터였어. 두산과 비교해 보면 업무 강도나 스트레스가 체감 상 한 30배는 높았던 것 같아. 그곳을 탈출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지.
Wife thinks...
누가 봐도 객관적인 스펙이 떨어지는데 취직되는 걸 보면,
하나님이 남편의 단점들이 안 보이도록 사람들의 눈을 가린 것이 분명하다.
IBM 때도, 두산 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