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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1도 모르고 IBM 들어갔는데 바로 들통 안났어?

by 잰걸음

Wife asks...

식당 주방일만 주로 했던 남편이

난데없이 IBM 상무 눈에 들어서 IBM 컨설턴트가 되었다.

하나님의 기적이든 뭐든 일단 들어는 갔지만

밑천이 드러나는 건 시간 문제.

IT 경험이 1도 없는 디자인, 화공 전공자가 어떻게 IBM에서 안 잘리고 버텼을까.


일단 IBM에 들어는 갔는데, 밑천이 바로 뽀록 안 났어?



Husband says...

IBM 상무님 면접을 볼 때만 해도 사실 붙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지.

그래도 절박한 마음에 그냥 밀어붙인거야.

근데 막상 붙고 나니까 온갖 걱정과 두려움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지.

입사를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나만 빼고 90%가 서울대 상대 출신이고 10%는 경력직 베테랑들인거지.

일단 급하게 PM이라는 역할이 뭔지, 어떤 프로세스로 일하는 건지 인터넷 등을 통해서 찾아보고 독학하려 했지만 그게 공부한다고 되나. PM은 무조건 경험인데.


내 사수였던 차장님이 나랑 몇 번 말 나눠 보더니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라는 걸 바로 눈치챘지.

그러니까 정말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많이 가르쳐 주셨어.

얼마나 짜증 났겠어.

그래도 너무 감사하게 그런 티 별로 내지 않고 잘 가르쳐주셨고

나도 열심히 배우려고 해서 매주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했지.

내가 부족한 건 스스로 인정하니까 당연히 일주일 내내 일했어.

당시 삼성 쪽 마케팅 부장님이 주말에 잠깐 나와 보시더니 "IBM 너넨 할 일이 없어서 주말에 놀지?"라고 하시길래 누군가는 하나 주말에 잠시라도 일해주기를 바랐는데 내가 자처했지.

남들이 하기 귀찮아하는 일들, 싫어하는 일들 내가 손 들고 많이 했던 것 같아.


우리 팀은 PM이니까

고객사한테 현황 공유와 브리핑을 드리는 업무를 했고 나는 IT 실무보다는 오퍼레이션 쪽이었어.

당연히 나 같은 놈에게 IT 실무를 맡기면 큰 일 나지ㅋ

삼성을 하다가 아모레퍼시픽 프로젝트로 넘어가면서 대행사 실무자인 L과장을 만났는데

사실 그분도 나를 살렸지.

우리 팀의 다른 과장이 나를 정말 많이 괴롭혔는데

그때 L과장이 나를 백업 많이 해주고

나도 L과장의 실수들도 많이 커버 쳐줬어.

서로 의지를 하면서 아모레퍼시픽, 한국타이어 프로젝트들을 거치면서 IT, 온라인 마케팅 등 많이 배웠지.

그 기억 때문에 우리가 아직도 주 1회 이상 만나잖아ㅋ


이제 조금씩 일들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너무 힘들었어.

아직 내공이 턱 없이 부족하니까 우리 팀 부장님이 나한테는 항상 함구령을 내렸어. 특히 클라이언트 앞에서.

왜냐하면 이제 고객들도 IBM과 일한 지 오래되니까 빠꼼이들이 돼서 허튼소리하면 바로 캐치하거든.

그런 불편한 자리들이 너무 괴로웠고

심지어 팀원들과 엘리베이터 같이 타는 것조차도 미치도록 싫었어.

그 엘리베이터가 점점 좁아지는 느낌 그래서 빨리 여기를 탈출하고 싶은 생각에 숨도 잘 안 쉬어지더라고.

그래서 나중에 김구라인가 어느 연예인이 공황 장애 증상을 얘기를 하는데 공감이 되는 거야.


나와는 전혀 다른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들 사이에서 있으려니까 너무 움츠려 들었던 것 같아.

'혹시 여기가 외국계 기업이라서 더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럼 한국 대기업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


IBM 컨설턴트들의 로망이라는, 고객사에 스카우트되는 것을 간절히 고대하며 하루하루를 버텼지.

근데... 그게 진짜 이루어졌잖아.



Wife thinks...

결혼 후 다시 한번 경제적으로 바닥 쳤을 때

남편이 쿠팡 배송센터로 지원한 적이 있었다.

첫날 OT를 다녀오더니 남편이 도저히 못하겠다고 그만뒀다.

거기 일하는 사람들이 남편을 보자마자 배타적인 분위기가 심했다는 이유다.


그때는 생각 못했는데

이 글을 쓰다 보니 IBM 때의 기억이 확 도진 게 아닌가 싶다.

전혀 다른 인간군이지만

이질적인 사람을 비웃는 속성은 스펙을 가리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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