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쥐들이 득실득실한 천장 아래 부모님과 살았다고?

by 잰걸음

Wife asks...

20대를 거의 미국에서 보내 2002 월드컵도 전혀 경험 못한 남편은

우리 대학교 시절의 이야기들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두 번의 미국 정착 시도에서 실패하고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그를 기다린 건

힘들었던 미국 시절이 무색하게

더 처참했던 현실.



미국에서도 가난했었는데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였던 거야?

Husband says...

한국에 들어와서 부모님과 살았던 곳이 재건축 직전의 아파트였어.

한국에서는 고급 빌라, 강남 아파트만 살다가 그런 폐허 같은 곳에서 살려니 기가 찼지.

하다 못해 식당 알바하면서 공짜 밥 얻어먹었던 유학 시절도 이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어.


유지보수도 엉망이었고, 천장에 판넬이 무너져 내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면

천장에서 쥐들이 단체로 운동회 하듯이 여기저기 다다닥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니까.

운동회를 하든 말든 상관은 없는데 저렇게 격하게 움직이다가

내려앉은 천장 틈 사이로 몇 마리가 떨어질까봐 그게 무서웠지.

너무 심할 때는 나도 다급한 나머지 '야옹~ 야옹~~~' 하면서 고양이 소리까지 내곤 했어.

그러면서 빨리 일 보고 문을 확 닫고 나왔지.


그리고 또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노크를 했어.

'사람 들어가니까 바닥에 있는 놈들이 있으면 얼른 들어가라....'라는 나만의 신호였지.

그러고는 아주 살짝 문을 열어 움직임이나 소리가 들리는지 기다렸다가 들어갈 수 있었어.


그나마 그때 친구가 거의 없었으니 망정이지

이런 현실이 내가 얼마나 비참하고 부끄러웠겠냐.


아, 그래서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취직을 한 후에 야근을 하고 귀가할 때

집이 가까운 사람들끼리 하나의 법인카드로 택시를 타고 오는데

거리상 우리 집이 가장 가까워서 내가 먼저 내려야 해야 했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우리 집 앞에서 내리는 것을 보이기 싫어서

항상 15분 도보로 떨어진 거리에서 먼저 내렸어.

택시가 내 눈에서 안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제야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갔지.


미국에서 한국 오는 것 자체도 뭔가 실패한 것 같아서 암울했는데

도착하니 더 끔찍한 현실에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어.

나도 나지만

왕비처럼 살았던 우리 엄마,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았던 우리 아빠가

예전의 영광은 온데간데없이

이런 폐허 속에서 사는 모습을 보니 비현실적이기까지 했지.


와...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쳐진다!!



Wife thinks...

원래부터 가난했으면 모르겠는데

워낙 잘 살던 때를 경험했기에 더 대조가 되었겠지.

그래서 남편은 가난에 대한 적대심을 갖고 있다.

다시는 내 가족을 그런 환경에 넣지 않겠다는.


가끔 얘기 중에 "넌 가난한 게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라고 할 때

남편이 내 대학시절에 공감 못하듯

나도 온전히 공감 못하는 것 같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5화8년간의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온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