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fe asks...
한국에서 왕자 생활을 한 남편이 대학 입시 실패 후 미국으로 넘어가서
초반에는 5백만원씩(!!) 꼬박꼬박 용돈을 받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부모님이 부동산 이슈로 갑자기 천문학적 빚을 안게 된 이후로는 모든 지원이 끊어졌다고.
이왕 시작한 유학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공부하면서 스스로 돈을 벌 수 밖에 없었다.
남한테 지거나 구걸해본 적 없던 사람이
8년이란 유학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까.
"바닥을 쳤던 유학시절, 어떻게 버텼어?"
Husband says...
유학 생활이 힘들긴 했는데, 그 와중에 생각 나는 얼굴들이 있어.
돈이 끊겼을 때 하루 끼니를 거르고 기름값을 넣어서 학교로 갈까,
아님 수업을 포기하고 밥을 먹을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어.
그때 아마 내가 거의 60kg 정도 빠졌을거야.
아직 그때 운전면허증 사진을 버리지 않은 이유가
그 사진 속의 내 모습을 보면 전혀 다른 사람 같거든.
교회 다니는 분들에게 밥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식당 알바를 소개시켜주셨어.
감사하게도 연결된 중국 식당의 사장님이 한 끼씩 챙겨주셨는데 주방장이 멕시코 사람이었어.
처음에는 일 끝나면 따로 남는 밥을 챙겨줬는데 내가 항상 "많이 많이 달라"고 했지.
많이 주는데도 더 많이 달라고 하니까 눈치를 챈 거지.
'얘가 지금 여기서 먹는 이 밥이 전부구나..'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1.5인분 통을 두개씩 채워서 담아주더라고.
그러고는 갑자기 "너 육개장 먹고 싶어?"라고 하면서 짬뽕에다가 뭔가를 좀 바꿔서 육개장을 만들어줬어.
그렇게 받아 온 밥은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고 한 3인분 되니까 이틀에 나눠서 먹었지.
또 하나 기억 나는건,
돈 아끼려고 기숙사에서 나와서 다른 친구들과 렌트비를 쉐어하면서 살았는데, 그 돈조차도 없어서 더 싼 곳으로 이사했어. 나보다 한 살 어린 한국남자가 은행 대출 이자 갚으려고 방을 렌트로 주고 있었지.
위스콘신 겨울이 마이너스 30도까지 내려가거든.
겨울에 샤워를 하려면 보일러를 켜야 하는데, 그 보일러 기름값을 추가로 내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난 진짜로 낼 돈이 없었어.
그래서 못 낸다고 집주인에게 얘기하니까
내가 화장실로 갈 때마다 지하실로 가서 보일러를 꺼버리는거야.
그럼 난 겨울에 찬물로 씻을 수 밖에 없었지.
찬물로 빨리 샤워하고, 방으로 후다닥 들어와서 몸을 말리고 데우곤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친한 학교 동생놈이 우리 집에 놀러 와서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데 뜨거운 물이 안 나오고 찬물만 나오는거야. 마침 내가 샤워하고 나온 직후라 동생이 이상하게 여기고 "형, 찬물로 샤워했어?"라고 묻더라고.
"어, 어... 괜찮아. 보일러값 낼 돈이 없어서. 근데 뭐 할 만해."라고 하니까
바로 동갑인 집주인에게 달려가서 쌍욕을 하면서 난리를 치더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겨울에 보일러를 안 틀어주고 찬물로 목욕하는게 말이 되냐!!!"
이 친구 덕분에 다시 뜨거운 물로 샤워할 수 있게 됐어.
그때, 말은 안 했지만 그 동생한테 너무나 고마웠지.
Wife thinks...
남편이 항상 나한테 남을 쉽게 믿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면서도
가끔 처지가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면 눈물이 고이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우리가 고시원 운영을 할 때도 연고가 없는 입실생 병문안도 혼자 가기도 하고.
그리고 난 끼니를 거르면 짜증부터 나는데
이상하게 남편은 끼니 거르는 것이 몸에 밴 사람 같았다.
아침 꼬박꼬박 안 챙겨줘도 되서 좋아라했던 나의 경박함이
남편 인생의 무게에 즈려밟힌 순간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