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fe asks...
한의대 편입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남편이 법원 갈 일이 생겼다고 나섰다.
사실 그때는 남편이 별거 아닌 것처럼 자세한 걸 알려주지는 않았다.
나중에 끝나고서야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랬다.
서울시가 남편에게 소송을 걸어온거다..
서울시로부터 소송장을 받았다고?
Husband says...
한의대 편입 준비를 계속 하고 있을 때 뭔가 서류가 하나 날라왔지.
서울시에서 내 이름 앞으로 온 소송장이이더라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 내가 뭐라고.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후에 유산 상속 관련 얘기가 오고 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게 나한테까지 영향을 미칠거란 상상을 못했어. 왜냐하면 할아버지 밑으로 5남매가 있었고 다른 친척들도 있으니까 나랑은 큰 상관 없겠지.. 했어. 그런데 나중에 내가 한국에 들어오고 출입국 기록에 뜨니까 서울시에서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나봐.
우리 외가쪽이 원래 잘 살았던건 알지? 이건 일반적인 상속이 아니라 서울의 좋은 자리의 좋은 물건에 대한 상속 건이라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지.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나에 대한 상속 처리가 누락이 되었나봐. 게다가 내가 미국 유학 다녀오고도 8년이 지났으니까 더 문제였던거지. 그래서 서울시에서 체납에 대한 소송이 들어온건데 내가 감당할 수 있나. 당연히 그냥 상속 포기를 하고 그동안 전혀 몰랐다고 얘기할 수 밖에.
그래서 상속 포기와 그동안의 체납 등에 대한 소명을 해야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수험생 주제에 변호사를 선임할 돈도 없고, 괜히 너 신경 쓰이게 하는 것도 싫고 해서 그냥 변호사 없이 셀프 변호가 가능한지 알아보고 싶었어. 주변에 조금이라도 인연이 닿는 변호사들에게 물어보고, 무료 법률 사무소도 다니고, 유튜브로도 독학하고 해서 코끼리 더듬 듯 공부해봤지. 아마 내가 몇 년간 한의대 준비한 것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했을거야ㅋ
사실 처음에는 너무 두려웠는데 계속 조금씩 알아보니까 그래도 혼자 해볼 수 있겠다는 내 특유의 자신감이 들어서 혼자 소장을 써갔는데 여러번 반려되었지. 법률적 용어를 몰라 개발새발 쓰니까 판사가 계속 반사시키더라고ㅎ 여차저차해서 재판장에 나가보니까 서울시에서는 변호사를 무려 3명이나 고용했더라고.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어설픈 셀프 변호를 하다보니 판사가 그 모습을 딱하게 봤나봐. 결국 내가 승소했고, 서울시는 소송 기각이 되었지.
정말 다리가 후덜거리는 첫 법원 경험이었어. 그동안 누구한테도 속시원히 얘기 못하고 응어리졌던 것들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기분이 째지더라고ㅋㅋ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일을 겪으면서 의외의 소득이 있었어.
그동안 재판 준비한다고 유튜브 등 계속 검색하면서 알고리즘으로 부동산 관련 컨텐츠가 자꾸 뜨더라고. 그 중에서도 법원을 자주 왔다갔다해야하는 경매에 대한 컨텐츠들을 보니까 좀 흥미롭더라고. 그나마 법원을 다닌 경험이 있다보니 경매의 과정이 그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던거야. 왜냐하면 형사나 민사 소송이야 실제 판사 앞에 서지만 경매는 법정이 따로 있고 내가 혼자 뭘 변호하거나 해야하는건 아니잖아.
그래서 점점 한의대 공부보다는 부동산, 경매 및 다른 돈벌이에 대해서 시간을 더 투자하기 시작했지. 왜 그런거 공부하다보면 진짜 시간도 돈인 것 같잖아. 한의대 공부를 하다보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데 너무 비교가 되면서 몸이 근질근질하더라고. 그래서 너한테도 작정하고 얘기를 해서 결국 한의대를 접었지.
사실 지금도 한의대에 대한 미련이 아직 있어. 그리고 분명 한의대 준비했던 시간이 당장은 쓸모 없어 보여도 나중에 돌아보면 왜 그런 시간을 허락하셨는지 이해가 될거라 믿어. 어쨌든 분명한건 내가 더 겸손한 마음, 절박한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해줬다는거지. 거기에다가 서울시 소송 사건이 방아쇠를 당겨줬고.
Wife thinks...
어느 날 남편이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오더니만 더이상 한의대 준비하는건 아닌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동안은 내가 다른 곳에 한 눈 팔지 못하도록 단도리를 했었는데 남편이 너무 힘들어하는 것이 보이고 서울시 소송 사건 이후 뭔가 좀 변한 모습에 수긍해줬다.
"그... 그래, 한 3개월 정도 하고 싶은거 해봐..." 했던 것이 지금까지 왔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