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fe asks...
안정적인 회사를 다니다가 갑자기 한의대 편입 준비한다고 퇴사해 버린 남편.
내가 회사로 나갈 때 남편은 동사무소 근처 독서실로 출근했다.
학창 시절부터 과목별로 고액 과외를 붙여도 공부 안 하고
대학 입시 때 고배를 마셨던 사람이
나이 들어서 다시 입시 준비를 한다는 것이 어땠을까.
공부와 담쌓던 당신이 40대에 수험생이 되니 어땠어?
Husband says...
두산 다니면서도 퇴근 후 한의대 편입 시험을 준비했었는데 당연히 역부족이어서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하는데 역시나 쉽지 않더라. 전국에 한의학과가 있는 대학교가 10여 군데 정도밖에 없는데 거기에다가 나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원서를 받아주는 데는 한 군데밖에 없었어. 안 그래도 확률이 낮은데 완전 바늘구멍인거지.
어쨌든 나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어.
내가 봐야 하는 과목이 한문, 생물, 화학이었는데 생물, 화학은 내가 대학교 때 화공을 전공해서 그나마 이해하지만 한문이 쥐약이었지. 학교 다닐 때도 한자는 너무 싫어했는데ㅋ
나는 딱 떨어지는 걸 좋아하는데 같은 한문이라도 무슨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해석이 제각각이야! 아, 진짜 싫어!!
공부 자체도 힘들었지만 사실 더 힘들었던 건 확 바뀐 라이프스타일이었어.
사실 한창 일할 때인데 하루 종일 독서실 와서 중고등학생들이랑 같이 공부한다는 게 참 어색하더라. 그것도 몇 천년 전 중국의 글들을 꾸역꾸역 외우고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이었지. 가끔 환기하려고 스벅에 가서 공부를 해보려고 해도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세상 사는 이야기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되더라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같은 시간대에 나처럼 공부하는 중년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계속 남들보다 더 빨리 나오고 더 늦게 집에 가고 했어. 퇴사 후 첫 한의대 시험을 보는데.. 알잖아 나 시험 노이로제 있는 거. 대학 입시 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항상 시험이 닥치면 설사를 하지. 그래서 아예 아무것도 안 먹고 시험장에 들어갔어.
1년에 한 번 있는 편입 시험인데,
첫 해는 떨어지고 두 번째 해도 떨어지고...
심지어 세 번째는 아예 모집을 안 하는 거야.
가끔 이런 경우도 있다고는 하는데 1년을 준비했다가 아예 기회조차 사라지니까 허무하더라고. 난 지원할 수 있는 학교가 하나밖에 없으니 그냥 1년을 날린 셈이니까.
그래도 다시 시험을 준비했지만 문제는 공부를 하면서 뭔가 쌓이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계속 제자리 같은 거야. 시간이 지나가니까 가족들 눈치도 보이고 초조해지더라고. 너도 한창 회사 다니면서 스트레스 많이 받고 가끔 힘들어서 침대에 누워서 우는 것도 보면서 나도 인간인데 미안하지..
그래서 4번째 시도부터는 조금씩 흔들리더라고.
중간중간 헤드헌터도 연락 와서 '이 시기 넘어가면 이젠 아예 못 돌아온다'라고 말하는 것도 나를 불안하게 했지. 그래도 그때마다 네가 '다시 회사 가려고 그만둔 거 아니다'라고 못 박아줘서 정신을 붙잡긴 했지만.
그러다가 내가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생겼지.
서울시로부터 갑자기 소송장을 받은 그 사건.
Wife thinks...
남편의 한의대 준비 지원할 할 때는 나도 호기롭게 마음을 크게 먹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성과가 없으니까 사실 나도 조금씩 불안해졌다.
"역시 우리가 너무 무모했나... 나라도 말려야 했었나"
그러면서 내가 도전해 보라고 해놓고선
독서실을 향하는 남편이 한편 얄밉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이 지리멸렬한 입시 준비 기간이 늘어지자
남편이 조금씩 시들어가는 것도 보였다.
그래서 계속 한눈팔지 말자고 다독였었는데
나도 결국 내려놓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