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슬픔과 기대는 덤으로
관세사 2차 시험을 4개월 앞두고, 시험을 포기하며,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4학년 2학기 복학을 해야 하지만,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취업 준비를 위한 그 흔한 토익 점수도 없었다. 그래서 지난 몇 개월은 철저한 이중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관세사 2차 시험준비에 집중을 해야 하고, 속으로는 뭔가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학교에 9개월 간의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이 거창해서 교환학생이지. 그나마 미국에서 들은 학점이 이수가 되어 다음 해 6월에 한국에서 졸업을 할 수 있는 어학연수(ESL)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지금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면.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 어려운 살림에 1200만 원을 마련하여 주셨다. 처음에는 반대를 하셨다.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관세사 시험준비를 하며 하나뿐인 아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았으니, 이번에는 한국도 아니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간다니 걱정이 많으셨을 거다. 관세사 시험에 붙고, 취업하기 위해 높은 토익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연수를 다녀와야 한다는 나의 간절한 청을 부모님께서 들어주셨다.
이제 2차 시험도 끝이 났으니 9개월 예정의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아무렴 어때. 영어는 좋아했기에 9개월 회화에 집중하고, 토익 시험을 보고 취업을 하면 되지. 취업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졸업을 한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미국행은 사실상 도피였다. 도피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그냥 시간 벌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실패한 내게 9개월이라는 귀한 시간을 선물해 줄 것이다. 9개월 후에는 다시 현실과 마주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그때는 영어라는 무기 하나는 갖추고 있을 테니까. 지금의 내가 처한 상황보다는 좋아 보였다. 하지만,
비자 신청에 문제가 생겼다. 무슨 인생이 이렇게 문제도 많고 탈도 많고, 수월하게 되는 게 없냐.. 미국 비자를 신청하려면, 아버지의 소득 증명을 해야 하는데, 그 당시 아버지는 자영업을 하시어 비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갈 수 없는 건가? 또 이렇게 길이 막히는 건가? 신원조회로 떨어진 ROTC의 악몽이 떠올랐다. 마지막 보류였던 어학연수마저 가지 못한다면 취업은 어떻게? 대학교 재수를 못해서 이렇게 강제적으로 취업 재수를 해야 하는 건가? 미국행마저 좌절된다면 같은 경우의 수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얼마나 더 나락으로 떨어져야 하늘에서 동아줄을 내려 줄까? 그 동아줄이 있기는 한 건가?
다행히 수소문을 해 보니, 친척 중에 한 분의 소득 증명을 내고, 그분이 보증을 서면 된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감사하게 그 당시 작은아버지가 KT에 다니고 계셔서 작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무사히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작은아버지가 보증을 서 주셨을 때는 정말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비자 보증은 단순한 문서 서명이 아니라 내가 미국에서 불법체류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그 책임을 지는 일이었다. 작은아버지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나를 도와주셨다.
"야, 너 미국 가서 코리안 타운에서 설거지하다 오는 거 아니지? 정말 영어 공부하고 오는 거지?"
작은아버지의 농담 섞인 질문에 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정말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미국에서 한국말 안 하고, 영어만 쓰고, 현지인들과 어울리고... 그래서 9개월 후에는 혀에 버터를 잔뜩 바른 사람처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올 거라고.
미국행 비행기 표를 끊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비행기는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 줄 뿐만 아니라, 내 과거로부터 멀어지게 해 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내가 ROTC에 불합격을 하고, 편입에 실패하고, 회계사 시험을 포기하고, 관세사 시험을 포기한 낙오자라는 것을 모를 테니까.
공항, 출국 게이트 앞.
"저 문을 지나면 지금까지의 한심했던 실패와 포기의 아이콘이었던 나는 사라질 거야. 앞으로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출국장 유리창 너머로 활주로에 대기 중인 비행기가 보였다. 그 거대한 날개는 마치 나를 과거로부터 떼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한국에서의 그 한심했던, 바보 같았던 실패와 포기, 이 모든 것들은 한국에 남겨질 것이다. 미국에서는 아무도 내 과거를 모른다.
손에 쥔 여권과 탑승권이 살짝 떨렸다. 두려움? 기대감?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벅찬 기대와 함께,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취업 전 마지막 기회라는 간절함도 함께.
내 심장은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 새로운 언어,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람들. 거기서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그리고 과거의 실패와 포기들을 생각하며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나를 상상하며.
뒤를 돌아보니 공항 입구 쪽에 부모님이 아직 서 있었다.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 번은 돌아봐 주겠지 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엄마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고 있었고, 아빠는 굳은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부모님들은 나의 새 도전을 응원하면서도, 동시에 멀리 떠나는 나를 염려하듯, 보내기 싫은 듯 아쉬운 마음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부모님들의 무조건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많은 실패를 했든, 얼마나 많은 포기를 했든 부모님에게 나는 여전히 소중한 아들이었으니까?
"곧 다시 만나요. 도착해서 전화드릴게요. 더 나은 모습으로 돌아올게요. 건강하세요"
내 자신에게만 들리도록 아주 작게 중얼거리며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었다.
탑승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면서, 이 떠남이 단순한 도피가 아닌 용기 있는 도전이 되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다짐했다. 미국에서의 새 삶은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번에는 끝까지 해낼 것이다.
"이제 샌프란시스코행 대한항공 KE023 편 탑승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