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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사의 발표

염소목소리 없애기

by 급식이모

대학교 시절 발표를 해본 경험은 한 번씩 있으시겟지요. 그 중 목소리가 얇고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이 새어나오는 염소 목소리를 가진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 중 하나가 바로 저랍니다. 목소리만 들었을 때에는 울먹거리는 수준이었어요. 대학생 신분에서는 그 하루를 지우고 싶을만큼 부끄러웠고, 발표공포증이 생겼어요. 엄숙한 자리에서는 더더욱이요.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자 했었죠.


하지만 사회생활에서는 필수로 마주쳐야하는 것이 말하는 시간이지요. 면접, 소수의 사람들과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 나보다 높으신 분들에게 설명하는 자리, 그리고 회의.

영양사에게도 마찬가지에요.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행정실장님등과의 면접, 교무실에서 학년별 선생님들과 매달 학사 일정을 공유하는 시간, 학기별로 학부모님과의 급식 소위원회 등이 있어요. 말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는 저로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그 중 가장 긴장되는 발표는 매 년 새학기 시작하기 전, 심의 안건 및 급식계획을 발표해야하는 운영위원회 자리에요. 무려 10명이상의 학부모님 및 교직원분들이 참여하시는 회의지요. 그 가운데서 주목을 받으며 말을 하는 일은 저에게는 아주 큰 두려움이었어요.


공무직 영양사로서 6년 경력이 있으니, 이 시간은 6번을 가졌어요. 첫 발표때는 대학생때와 마찬가지로 염소 목소리가 나왔고, 어른이 되어서도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어요. 이후 저의 인생 목표에 사람들 앞에서 차분하고 전문적으로 말하기가 추가되었어요.

3번째 발표, 그러니까 영양사 3년차일 때도 어김없이 이 날은 찾아왔어요. 전날부터 발표내용을 충분히 숙지를 하고 자기 최면을 걸었습니다. (이 방법이 다소 비현실적일 수도 있어 거부감이 들수도 있어요.) 흔히 말하는 끌어당김 법칙과 긍정적인 생각을 적용해보았어요. 차분하게 떨지않고 제가 준비한 것들을 모두 말하는 저의 모습이요. 결과는 성공적이었어요. 밑바탕에는 열 번 넘게 읽고 시작한 것이 도움이 되었겠지요. 인생 통틀어 떨지 않는 발표가 처음이었어요. 스스로 말하는 것을 잘 못한다라는 생각에 저를 가두고 있다 딱 한번 (제 기준에서) 이루었을 뿐인데, 그 다음부터 어느 발표를 하든 떨지 않았어요. 이상하게도요.


하지만 업무에서 1년간의 공백이 있었고, 새로운 학교에서 또 새학기 전 운영위원회 발표날이 다가왔어요. 저의 당당함이 숨어버려 또다시 염소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었죠. 심지어 이전에 있었던 학교보다 더 엄숙한 분위기였어요. 9번째 순서였던 저는 회의의 첫 시작부터 지켜보며 긴장은 커져갔어요. 다른 안건을 발표하는 선생님들에게 학부모님들은 학생들을 위한 질문을 하시곤 했죠.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할까는 두려움을 한 스푼 더 얹었어요.

마침내 저의 순서가 다가왔어요. 한달 전 연수를 갔을 때 멋지게 설명을 하시던 분이 떠올랐어요. 그분(여자 주무관님)은 중저음의 목소리와 일정한 속도 그리고 차분함을 갖추었어요. 제가 원하던 이상향의 발표였죠. 그 분을 떠올리며 안건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아니나다를까 미세하게 목소리가 떨렸어요. 제가 제출한 내용과 학부모님들이 가지고 계신 프린트물의 페이지 번호가 달라 잠시 당황했어요. 침착함을 유지하며 이어갔어요. 그렇게 30페이지에 달하는 심의 내용을 마무리했어요. 후,,,, 떨리던 목소리는 예전의 저(대학생의 염소)보다 나아져 그래도 위안을 삼았어요. 발표를 마친 후 가벼운 질문들이 오갔고, 학부모님들의 급식에 대한 칭찬 속에서 마무리를 했어요. 손에는 땀이 났고, 긴장한 나머지 머리는 두통으로 찌릿했어요. 모든 것을 마친 후 교실에서 나온 복도는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한 여름날 수영장에 뛰어들 듯 시원했어요.

사무실에 돌아와 같이 회의에 들어간 보조영양사 선생님께 제 목소리가 많이 떨렸냐고 물어봤어요. 그 떨림이 주변 사람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나봐요. 전혀 그러지 않았다고 말하더라구요. 나에게만 느껴진 것이라 다행이고, 이 정도는 나혼자만 들을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날의 큰 짐을 내려놓았어요. 보조영양사선생님은 저보다 7살 어렸고, 그 분에게도 좋은 모습을 보여야한다 것에도 중압감이 느껴졌었어요.


이렇게 저는 발표에 대한 두려움을 또 한번 없앨 수 있었어요. 작은 긴장감은 그것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더라구요. 다수의 사람 앞에서 말한다는 것에 큰 용기가 필요했던 저였어요. 오히려 나의 부족함을 부술 수 있는 시간들이 모여 새로운 나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어요. 어떤 경험이든 반복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고 한다면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는 걸 알고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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