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첫 번째 이유는 물론 가족들을 먹이기 위함이고, 그다음은 지인들과 나눠먹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 나눠 먹는 지인의 범위가 엄청나서 옆 집은 물론이고, 아파트 경비 실장님, 옆 동 동대표님(우리 동이 아니라 옆 동 동대표님인 이유는 우리 동 대표는 아빠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매주 부모님과 함께 봉사를 하시는 자원봉사자 분들한테까지 간다. 보통은 잘 먹겠다, 고맙다는 인사로 끝이 나거나 작은 선물들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 주시는데 딱 한 번, 요리가 되어 돌아온 적이 있었다.
"이거 뭐 동남아에서 먹는 음식이래."
아빠가 내민 반찬통을 열어보니 쏨땀이 들어 있었다. 이게 어디서 난 거냐 물어보니 며칠 전 복지관 요리사 분께 차요테를 몇 개 가져다 드렸더니 이걸 만들어 주셨다고 했다. 와, 어떻게 차요테로 쏨땀을 만들 생각을 하셨지? 사실 차요테는 낯선 식재료인 만큼 아직 다양하게 먹는 방법이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도 매년 심고는 있지만 여전히 장아찌로 가장 많이 소비하고, 종종 생채로, 그리고 또 종종 볶아 먹는 정도로 활용할 뿐이었다. 그런데 쏨땀이라니. 너무 획기적이잖아!
워낙 아삭한 식감과 새콤한 맛을 좋아해서 동남아 식당에 가면 사이드 메뉴로 쏨땀을 꼭 시키는 편이었다. 내가 지난 치앙마이 여행에서 얼마나 먹었나 찾아보니 각각 다른 식당에서 먹은 쏨땀 사진만 5개가 나왔다. 특히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을 때면 김치처럼 꼭 시켰다. 주로 볶음 요리가 많은 태국 음식에 물려 속이 더부룩할 때 찾는 것도 쏨땀이었다. 상큼하고 매콤한 쏨땀 한 그릇에 쌀국수면을 추가해서 먹으면 금방 개운해졌다. 굳이 우리나라 음식과 비교하자면 비빔국수 같은 거 아니었을까?
너무 쏨땀 예찬을 한 것 같지만 내가 이 정도로 쏨땀을 좋아하면서도 만들어 볼 생각을 못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메인 재료인 그린파파야를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으니 해 볼 생각도 못했다. 이제 차요테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쏨땀 레시피를 찾아봤지만 그 외에도 피시소스, 코코넛 슈가, 타마린드 페이스트, 라임 등 필요한 재료가 많았다. 다행히 공심채 볶음을 해 먹기 위해 사 둔 피시소스는 있었으나 이 시기에 잠깐, 조금 먹기 위해 다른 재료까지 다 갖추기는 어려웠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는 거지 뭐. 대체 재료들로 이리저리 만들어 봤는데 맛이 그럴싸했다. 물론 현지에서 먹는 맛에는 조금 모자라다 싶었지만 그건 아마 여행자의 마음까지 포함된 맛이 아니었을까. 진짜 맛있는 쏨땀은 다시 여행자가 되어 만나야지.
(사실 현지 맛의 가장 큰 비법은 MSG라고 한다.)
재료
- 차요테 1개 (약 300g)
- 당근 1/2개 (약 70g)
- 마늘 3개
- 페퍼론치노 3개
- 건새우 5마리
- 방울토마토 10개
- 땅콩 한 줌
- 피시소스 3T
- 레몬즙(라임즙) 3T
- 설탕 2T
만들기
1. 차요테는 그대로, 당근은 반으로 잘라 가늘고 길쭉하게 채 썬다.
2. 절구에 마늘과 페퍼론치노, 건새우를 순서대로 넣어가며 빻는다.
3. 반으로 자른 방울토마토와 껍질을 벗긴 땅콩을 넣고 마저 빻는다.
4. 분량의 소스 재료를 넣고 섞는다.
5. 볼에 채 썬 채소와 절구 안에 만들어 둔 양념을 넣고 잘 섞는다.
Tip
1. 으깨서 즙까지 쓰기 위해 절구를 쓰지만 없으면 칼로 다져서 사용한다.
2. 차요테는 수분이 많아 만들어두면 물이 많이 생기므로 되도록 한 번 먹을 만큼씩만 만든다.
3. 가는 쌀국수 면을 삶아서 비벼 먹으면 한 끼 식사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