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 10월 8일쯤, 찬 이슬이 맺히고 오곡백과가 열리는 때
벼 추수하기, 콩 수확하기, 고구마 수확하기, 마늘과 양파 아주심기, 보리와 밀 파종하기
차요테에 대해서 얘기하려면 일단 차요테가 뭔지 얘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름부터 낯선 이 채소는 멕시코에서 온 박과 작물이다. 즉, 원래는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아열대 채소인데 온난화로 인해 온대 기후인 우리나라에서도 재배가 가능해졌다. 차요테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직접 재배해서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좋지만 이게 온난화 때문인 걸 생각하면 좋다고 해도 되는 건가 싶다. 아삭한 식감덕에 무의 대체품으로 얘기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서늘한 기후에서 잘 크는 무가 더운 날씨 때문에 크지 못하는 상황을 가정한 거라 반갑지만은 않다.
우리가 차요테를 심은지도 3-4년은 된 것 같다. 당연하게도 호기심 대왕이자 이 밭의 지배자, 엄마의 주도로 들어온 채소이다. 낯설고 궁금한 채소나 과일을 보면 일단 냅다 사고 보신다. 일단 한 번 먹어보고 우리 밭에서 키울만한지 검증하는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차요테를 만난 건 열매부터였다. 상자를 열었을 때 연한 연둣빛이 아름답고 올록볼록한 모양도 귀엽다 생각했으나 이걸 대체 어떻게 먹는 건가 싶었다. 가장 쉽게 먹는 방법은 얇게 잘라서 장아찌를 담그는 것이었다. 그래, 일단 장아찌부터 담가보자.
올록볼록한 모양 그대로 슬라이스 해놓으니 꽃 모양 같기도 구름 모양 같기도 했다. 이때 이미 매니저(나를 얘기하는 것이지만 그 어떤 힘도 없다.) 면접은 통과했다. 맛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냥 신기하고 예쁘니 키우고 싶었다. 그렇게 담근 차요테 장아찌는 바로 먹어도 아삭하고 짭짤하니 맛있었다. 그대로 임원 면접도 통과했다.
차요테는 열매 자체가 씨앗 역할을 한다. 요즘에는 끝물에 수확하는 건강한 몇 개를 남겨두었다가 심는데 처음에는 장아찌를 해 먹고 남은 몇 개를 씨앗으로 사용했다. 하나씩 신문지로 싸서 상자에 담아 겨우내 팬트리에 보관했더니 날이 조금 풀리자 봄이 오는 걸 귀신 같이 알고 열매에서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심기에는 이른 시기인데 싹이 너무 쑥쑥 잘 자란다. 더 서늘한 곳으로 옮겨야겠다 싶어서 상자 그대로 들어 베란다로 옮겼다. 그다음 해부터는 아예 처음부터 베란다에서 보관했다. 그래도 심어줘야 할 때가 되면 어쩜 이리도 스스로 잘 알고 싹을 틔우는지 식물들 크는 걸 보고 있으면 늘 신통방통한 마음이 든다.
베란다에서 싹을 틔운 차요테는 밭으로 가져가 한 화분에 하나씩 심어준다. 가림막이 없는 노지에 아주 심기 전에 하우스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더 튼튼하게 자리 잡기를 기다린다. 이때 어떤 화분의 열매는 밭에 옮겨 심을 때까지 건강하고, 어떤 열매는 삭아서 쪼그라든다. 쪼그라든 열매가 있는 화분은 잘 못 크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싹에서 나온 뿌리가 흙에 잘 자리 잡으면 다행히 크는 데 문제없었다.
모종이 튼튼하게 자라고, 따뜻한 나라에서 자라는 차요테가 추위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을 만큼 날이 풀리면 밭으로 옮겨 심는다. 앞서 말했듯이 박과 작물, 덩굴성 채소기 때문에 타고 올라갈 것을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 밭에서는 지지대를 이용하여 틀을 잡고 그 위에 그물망을 덮어 터널을 만들었다. 처음 옮겨 심고 나서는 얘가 언제 자라서 이 터널을 다 덮나 싶었다. 그리고 한참을 지켜보는데 왜 이렇게 안 크는 거지? 변화가 있어야 사진을 찍고 기록해 둘 텐데 몇 번을 가서 봐도 그대로인 것 같았다. 뭐가 잘못된 건가 싶었는데 찾아보니 실제로 생육기간이 긴 채소였다. (180~200일) 5월에도 자그마해서 걱정을 시키던 차요테는 7월이 되어도 겨우 터널 천장에 닿을 만큼 자랐다.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그럴 때마다 '그래, 얘 아열대 작물이지.'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8월이 되니 드디어 천장을 다 덮었다. 또 느꼈다. '그래, 얘 아열대 작물이지.' 야무지게 잡고 올라가는 덩굴손도 기특하고, 터널 안에서 올려다본 하늘도 예뻐서 괜히 한 번씩 몸을 굽히고 들어가서 구경하고 나오고는 했다.
내 기억에 9월 초부터 차요테를 수확했었다. 그래서 원래는 9월 초의 절기인 백로에 차요테에 대해 쓰려고 계획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꽃이 피어야 지고 난 자리에 열매가 맺힌다. 그 말은 열매를 만나려면 우선 꽃부터 피어야 한다는 얘기기도하다. 그러나 8월 중순부터 아무리 살펴도 꽃 한 송이 보이지 않았다. 매일 꽃 찾으러 터널 밑에 들어가고, 내가 밭에 가지 못하는 날이면 오늘은 꽃이 피었냐 물었다. 그러다 9월이 되어서야 겨우 꽃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기쁜 마음에 사진을 찍고 엄마에게 달려갔는데 엄마가 한 소리 하셨다.
"얘는 수꽃이잖아."
아, 그렇네. 열매를 만나려면 암꽃이 필요하겠구나. 수꽃은 수정에 필요한 꽃가루만 제공하고 열매가 맺히는 건 암꽃이 지고 난 자리이다. 이후로 암꽃 찾기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근데 수꽃과 암꽃이 어떻게 다르지? 일단 꽃이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고 어떤 게 수꽃이고 암꽃인지 물었다.
"수꽃은 송이로 모여서 피고, 암꽃은 하나씩 펴."
시간이 지나자 열매도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차요테는 수확 시기가 늦으면 금방 껍질이 단단해져 그전에 수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또 충분히 과육을 키우기 전에 따면 먹을 부분이 적어지니 그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적기에 딴 차요테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지만 너무 여문 것은 이 울퉁불퉁한 열매의 골을 따라 껍질을 깎아내는 것부터 곤혹이다. 뭐든 과유불급이라고, 욕심을 좀 버리고 차라리 조금 덜 여문 열매를 따는 게 낫다.
여기까지 잘 따라와서 이를 어떻게 심고 키워서 수확하는지 다 알게 된 분도 '그래서 얘 이름이 뭐랬지?' 하실 수도 있다. 우리 가족 역시 이 이름도 모양도 낯선 채소를 기억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이제는 잊지도, 헷갈리지도 않지만 한동안 "그거 이름 뭐지? 왜 연두색 올록볼록... 멕시코..." 하며 이름 찾기 스무고개를 하고는 했다. 직접 주변에 나누기까지 하시는 엄마는 더 힘들어하셨다. 엄마가 이 이름에 익숙해진 뒤에도 다른 분들께 나눌 때면 항상 "이름이 뭐라고?" 하는 질문이 몇 번씩이나 따라왔던 탓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가 방법을 찾았다는 듯 자신 있게 얘기했다.
"코요테 말고, 차요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