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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이

트라우마 그리고 치유

by 김운 Mar 20. 2025

   TV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서 가수 '마이진'이 결승전에서 부른 ‘옹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녀는 시종 씩씩하고 시원시원하게 노래를 불러 경연 내내 눈길을 끌었다. 작은 체구이기는 하지만 몸매도 성격도 단단해 보였다. 그런 그녀가 결승전에서는 울음을 참아내며 피를 토하듯이 감정에 복받쳐 노래를 부르고는 끝내 오랫동안 마음속 저 깊은 곳에 있는 설움을 터뜨리고 말았다. 오열하듯이 한참을 울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옹이’라는 노래가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중학교 입학하고 첫 수업 날 사회과목 선생님은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나는 집에 있는 사회과부도를 보고 열심히 지도를 그려서 가지고 갔다.  다음날 수업시간에 숙제 검사를 하신 선생님이 내 숙제를 보시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거 네가 그렸어?”

  “네”

  “네가 그린 거 맞아?” 

  “네”


  선생님은 나를 의심 가득한 눈으로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선생님은 아버지나 형이 지도를 대신 그려준 것이고,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칭찬받고 싶었고 내가 잘하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는데, 지도를 너무 잘 그렸던 것일까. 선생님은 나를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억울하였지만 선생님에게 항변하지도 못하고 마음에 상처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 이후로도 선생님은 나에게 냉정하게 대했고 수업 내내 선생님과 눈길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사회과목 선생님이 나를 칭찬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나의 사회과목 성적은 반에서 최 상위권으로 매우 우수했다. 내가 잘하는 과목은 사회과목 외에도 국어 미술이었다. 그러나 수학은 하위권이었으며 나머지 과목은 중위권으로 최상위에서 하위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이 뚜렷하고 성적의 편차가 너무 심했다. 선생님은 나의 이런 성적을 알고는 또 의심을 가지는 듯싶었다. 혹시 시험에 부정이 있지 않는지 선생님이 나를 생각하지 않나 하고 오히려 내가 선생님을 의심하며 불편한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다행히 선생님은 2학년이 되자 다른 학교로 옮겨가셨다.  


  사회과목 선생님이 가시고 나자 이번에는 새로 오신 수학 선생님과의 관계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수학선생님은 수업 중 갑자기 무작위로 지명을 하여 우리에게 질문을 하였다. 대답을 잘 못하면 30센티 대나무 자로 손바닥을 때렸다. 다음에는 손 등을 때리기도 하고 손가락 끝을 때리기도 하였다. 때리면서 얼굴에 미소를 짓는 모습은 마치 우리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나에게만 편파적이지는 않았다. 모든 학생에게 체벌과 조롱 섞인 말로 우리를 괴롭혔다. 그러나 가뜩이나 사회과목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인지 수업시간에 긴장이 되고 위축되어만 갔다. 이렇게 상처는 내 자아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서 나의 일부가 되어갔다. 


  한편 새로 오신 국어선생님은 젊고 패기 넘치는 총각 선생님이었는데 우리 반 담임을 맡았다. 담임선생님은 호랑이 같은 분이었다. 우리가 잘못하면 불같은 성격으로 운동장에 집합을 시키고는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엉덩이를 치켜든 채 두 손은 엉덩이에 올리고 두 발로 버티고 있는 벌을 주었다. 우리는 몇 초도 못 버티고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이 벌은 일명 ‘원산폭격’이라고 하며 주로 군대에서 하는 벌이다. 원산폭격이 끝나면 ‘오리걸음’을 하였고, 다음은 운동장을 몇 바퀴 돌아야 했다. 우리는 기진맥진  하였지만 웬일인지 가슴이 후련해져서 교실로 돌아왔다. 선생님은 우리를 혹독하게 단련시키려 하면서도 우리를 존중해 주었다. 제자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말과 행동을 보여주었기에 선생님을 따르고 존경하였다.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자신감을 주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선생님은 아쉽게도 1년 만에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셨고 수학 선생님은 3학년 졸업 때까지 우리를 가르쳤다.      


  나는 중학생 시절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선생님을 대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지레짐작으로 선생님은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선생님이 나를 또 의심하지는 않는지 자꾸만 걱정이 되었다. 선생님들을 자연스럽게 따르고 존경할 수도 없었다. 특히나 권위적인 선생님에게는 더욱 기가 죽었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하고서도 상급자의 권위적인 태도에 내 생각을 자신 있게 표현하는 것이 힘들었다. 나는 억눌린 감정을 그저 꾹꾹 참아내며 내 안의 어딘가에 묵혀놓기만 하였다. 억눌린 감정들이 계속 응집되면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다른 형태로 폭발하였다. 그것은 반항하거나 도피였다. 윗사람에게 따지고 대들거나 아니면 절망감에 빠져서 결근하는 날도 많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성실하고 순응적인 사람이었으나 부정과 부조리, 불합리한 지시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스스로 나를 매우 정의로운 사람처럼 여기게 되었고 나를 합리화하였다. 간혹 나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윗사람들은 분고고분하지 않는 나를 불편해하였고 승진에서 제외시키기도 하였다. 중학교 1학년 13살 아이에게 거짓말하는 학생으로 뒤집어씌운 굴레와 계속되는 냉대, 그리고 학생을 인격체로 존중해주지 않는 수학선생님의 비하와 조롱과 체벌은 나에게 트라우마가 되어 사람들과의 관계를 힘들게 하고 오랫동안 내 삶을 따라다니며 방해하였다. 


  매일 공원으로 나서면 산책길 옆에 밑동이 굵고 곧은 소나무 한 그루가 굳건하게 서서 나를 반겨준다. 소나무 눈높이 줄기에는 주먹보다 훨씬 큰 옹이가 단단하게 박혀있다. 그 옹이는 어린 나무였을 때 가지가 부러지며 큰 상처를 입었을 텐데, 이에 굴하지 않는 소나무는 스스로 송진을 내어 상처를 치유하고 더욱 단단해져서 우람한 나무로 자라게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의연하고 떳떳한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 옹이를 어루만지곤 한다. 옹이는 표면이 매끄럽고 속도 단단하여 더욱 아름답고 아픈 상처가 오히려 자랑스러워 보인다.  


  길을 더 가다 보면 오래된 아카시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줄기의 한가운데가 휑하니 구멍이 뚫려버렸다. 아마도 어젠가 가지가 부러지고 상처가 크게 난 것 같았다. 그런데 아카시 나무는 그 아픔을 옹이로 단단하게 채우지 못하고 구멍이 뚫려 썩어가고 있었다. 아카시 나무를 보면 마치 상처 난 나의 마음을 보는 듯해서 더욱 애처롭다. 소나무는 옹이를 만들어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데 아카시 나무는 왜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고 썩어가고 있을까. 


  트로트 ‘옹이’를 불러 2등을 한 여가수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씩씩하고 매사 활발한 모습 속에는 언뜻언뜻 어른거리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오랜 시간 무명가수로 활동하며 겪었을 냉대와 상처를 그녀의 큰 눈망울과 해맑은 미소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무대에 선다. 그녀는 오랜 시간 가시처럼 박힌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꿋꿋하게 이겨냈을 것이다. 냉혹했던 세상과 화해하며 아픔마저도 단단한 ‘옹이’로 채우고 세상을 향해 마음껏 노래를 한다. 


  내성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한 13살 아이에게 주어졌던 그때의 그 상처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아카시 나무처럼 옹이를 만들지 못하고 썩어가고 있을까. 소나무의 옹이처럼 더욱 단단해지고 있을까. 지금도 나에게는 선생님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남아있으며 권위에 대한 반항심도 여전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상처를 껴안고, 원망과 분노를 품고 살수 없음을 소나무와 아카시 나무를 보며 생각한다. 


  13살 그대로 멈추어 있는 나의 내면의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때의 선생님도 아마 나처럼 상처 많은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상처 없는 삶도 없으며 모두가 상처에 힘들어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또한 쉽지 않았을 거라고. 선생님도 상처를 어찌할 수 없어 자신의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여 회복하고자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했을 것이라고. 이제는 선생님과 화해를 해야 할 때이며, 화해하지 않으면 내 상처는 이대로 남을 것이고 선생님의 상처도 그대로 남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옹이’를 부른 그 여가수처럼, 옹이가 박힌 채로 굳건하게 서있는 소나무처럼, 상처와 아픔마저 마음의 굳은살 같은 옹이가 되어 세상 한가운데에서 의연한 모습으로 서있자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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