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남학생들 사이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서열’이 있다.
영웅이가 울 학교 싸움 1등이고, 2등은 양정이고, 5등 정도까지 싸움 순위가 높은 아이들 몇 명은 서열 꼭대기에 있다. 꼭대기 아래에는 힘, 카리스마, 덩치, 운동신경 같은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작동한다. 나는 서열이 우리 반 중간쯤 된다. 중간쯤 이란 친구들 사이에서 무시받지도 않고 놀이를 할 때 적극적으로 내 의사도 표현하는 정도이다.
준식이는 덩치가 나보다 크고 운동도 잘하니 나보다 조금 높고, 덕성이는 키도 작고 성격도 둥글둥글하니 나보다 조금 낮다. 남자아이들 사이에는 그런 ‘감각’이 있다. 본능처럼.
난 우리 학교싸움 1등 영웅이가 싸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친구들이 싸우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왜 그 아이들이 꼭대기에 있는 걸까? 사실 이런 순위는 친구들의 상상과 이를 바탕으로 한 소문으로 정해진다. 그렇다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굳이 영웅이와 싸워서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진 않다.
그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2교시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친구들은 종이 치자 급하게 다들 요즘 유행하는 제기차기를 하려고 교실 뒤로 모인다. 난 급히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다녀왔다. 얼른 친구들과 제기를 찰 생각에 신나서 교실 뒷문을 열었다.
급하게 교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퍽”
뭔가 내 머리를 강하게 가격한다. 의자다.
아무 예고도 없이 의자가 날아와 내 머리를 가격했다.
나는 순간 심한 충격을 받아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 머리를 만져보니 주먹만 한 혹이 올라왔다.
‘이게 무슨 일이지? 누가 의자를 던진 거지?’
충격에 머리를 움켜쥐고 앉아 있는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동규야 괜찮나? 어짜노? 미안하다.”
그리고 아픈 내 머리를 연신 문질러 준다.
“미안하다. 어짜노?”
찔끔 눈물이 났지만 친구들이 볼까 얼른 닦고 고개를 들어봤다. 그 앞에는 순석이가 있었다. 덩치는 크지만 성격이 매우 순한 순석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순석이가 의자를 교실 뒤쪽으로 던지는 순간 내가 뒷문을 열고 들어왔단다. 순석이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기가 던진 의자에 친구가 맞아버려서 너무 놀래고 있다.
주위에 친구들이 모였고 나와 순석이 주위를 둘러쌌다.
“괜찮나? 동규?”
“피 안 났나?”
“순석이 임마 니 돌았나? 와 그랬노?”
친구들은 날 걱정해 준다. 친구들 눈이 나를 향한다.
“동규, 맞았는데 가만있나?”
그리곤 의도하지 않았지만 순석이에게 맞은 내가 가만있지 않을 거란 기대에 찬 눈으로 모여서 우릴 지켜보고 있다.
난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렇게 맞고 가만있으면 안 되는데… 순석이는 나보다 서열도 낮은데…’
사실 크게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내가 가만있으면 안 되는 분위기다. 내가 가만있으면 순석이에게 맞고 가만있은 아이로 서열이 순식간에 저 아래로 떨어질 거 같다.
모두 모여서 기대에 찬 눈으로 보고 있는데 사나이가
‘흐흐 난 괜찮아. 실수인데 뭘 어쩌겠냐?’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난 흐르는 눈물을 몰래 닦으며 벌떡 일어나 순석이에게 주먹을 날렸다.
순석이보단 내가 더 순위가 높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난 맘에 없는 억지 주먹을 날렸다. 순석이 몸에 내 주먹이 정확히 닿았다. 하지만 순석이는 전혀 반응이 없다.
“동규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그저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며 내 머리를 연신 문지른다.
그 순간 난 머릿속이 하얘졌다. 사실 친구들은 눈치 못 챘지만 내가 순석이 몸을 주먹으로 쳤을 때 순석이 근육에 내 손목이 오히려 꺾여 휘청였다. 맞춘 내가 더 아팠다.
‘이놈 뭐지? 적당히 두대만 더 휘두르고 끝내야지’
난 무서웠지만 두 번 더 주먹을 휘둘렀다. 순석이는 내 주먹을 아기가 허우적대는 팔로 생각하는지 피할 생각도 않는다.
더는 의미가 없단 걸 느끼고 난 자리에 앉았다.
‘다들 내 서열이 높다고 생각할까? 모르겠다.’
오른쪽 머리엔 혹만 남았고, 옆에 앉은 순석이는 연신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문지르고 있다.
난 그날 배웠다. 진짜 센 사람은 조용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