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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날리기와 매타작

by 브로콜리

가끔 학교 앞 경로당 할아버지는 엄청 큰 얼레와 방패연을 가지고 운동장에서 연을 날리신다. 전깃줄이 많아 연을 날리기가 곤란한 동네와 달리 학교 운동장은 전깃줄이 없어 연날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우린 이 할아버지를 연날리기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할아버지들 얼레는 우리가 문방구에서 산 얼레와는 비교도 안될 크기이다. 우리가 쓰는 조그만 4각 플라스틱 얼레가 아닌 크기는 약 2배 정도이고 직접 나무를 깎아서 만든 듯한 8각은 되어 보이는 얼레다. 큰 얼레에 말려 있는 실은 우리가 가오리 연을 날릴 때 사용하는 실의 2~3배 굵기는 되어 보인다.


“할아버지 이건 실이 왜 이렇게 굵어요?”

우린 할아버지 연 날리기를 보다 궁금해서 물어본다.

“이거 실에다 풀하고 유리 먹인 거 아이가.”

“유리요?”

“그래, 유리를 먹여야지 실이 딴딴해지거든.”

“유리를 어떻게 먹여요?”

“경로당에서 유리 깨 가지고 풀하고 섞여서 먹이지. 이거 한다고 며칠 고생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깨진 유리조각이 붙어있는 실은 보기만 해도 단단하고 강해 보인다.


연날리기 할아버지는 가끔 본인 연을 날리다가 저쪽 하늘에 떠있는 꼬마들이 날리는 가오리 연을 보면 슬쩍 옆으로 본인의 방패연을 붙인다. 그리고 몇 번 얼레를 휙휙 감았다가 풀었다를 반복한다. 그럼 멀리서 잘 날던 가오리연 줄이 끊어지면서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봤제? 이게 보통 실하고는 다르다. 유리를 먹이가 연 싸움할 때 좋거든.”

우린 그런 할아버지가 연을 날리러 학교에 오시면 얼른 그 옆으로 뛰어가 구경을 하곤 한다. 방패연도 구경하고 얼레도 구경하고 그리고 연싸움도 구경한다. 그럼 할아버지는 신이 나서 다양한 묘기를 보여주신다. 특히 두 팔로 큰 얼레를 감았다 휙 풀었다를 반복하며 방패연을 조종하시는 모습은 마치 운동선수 같다.


4학년 어느 날 다음 체육 시간을 위해 친구들이 운동장으로 모이고 있었다.

잠깐 10분 쉬는 시간이지만 난 열심히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 운동장 담벼락에 문동이와 하은이, 대기가 매달려서 밖을 구경하고 있다.

‘뭐하노 점마들?’

궁금한 마음에 그쪽으로 가본다.

“대기야! 뭐하노?”

내가 소리치자 세 녀석은 갑자기 휙 담을 넘어서 학교 밖으로 나가버렸다. 놀란 마음에 얼른 담 쪽으로 달려갔다.

‘뭐 때문에 저리 밖으로 나갔지?’

담 너머에는 공터가 있었다. 공터에 연날리기 할아버지가 방패연을 열심히 날리고 계신다.

‘아! 연날리기 할아버지다! 방패연이다!’

나는 어디에 홀린 것 마냥 담을 휙 넘어서 친구들을 따라서 할아버지 연날리기를 구경하러 갔다. 할아버지는 우리 얼굴이 익숙하신지 아는 척을 하신다.

“이놈들아 수업시간 아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내심 우리가 와서 기쁜지 활짝 웃으신다.

“쉭쉭쉭쉭 쉬휙”

얼레를 요리조리 감았다 풀었다를 반복하시며 입으로는 기합소리도 내신다.

“와아! 할아버지 대단하세요.”

우린 그렇게 홀린 듯 연날리기를 구경했다.


“야! 우리 수업 들어가야 되는 거 아니가?”

한 시간쯤 흘렀을까 누군가 그렇게 이야기했고 우린 부랴부랴 학교로 다시 들어갔다. 체육 수업은 끝났고 우린 숨죽이고 교실 뒷문으로 슬쩍 들어갔다.

“야! 너거 넷! 일로 나와!”

평소에는 예쁘지만 한번 화가 나면 엄청 무서운 우리 담임 선생님. 선생님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앙칼진 목소리로 우릴 부르신다.

‘미간을 저 정도로 찌푸리신건 처음 보는데 화가 많이 났나 보다.’

난 잔뜩 겁먹었지만, ‘꿀밤이나 몇 대 맞고 말겠지.’하고 쉽게 생각했다.

“너거 체육시간에 어디 갔었어?

“…”

선생님의 찌푸린 미간과 앙칼진 목소리에 우린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

“어디 갔다 왔냐고? 말 안 하나?”

“그게… 밖에서 연날리기 할아버지 구경하고 왔어요.”

잔뜩 겁에 질려 하은이가 대답했다.

“뭐? 연날리기? 하~참”

선생님은 한숨을 푹 쉬신다. 그러곤 길쭉한 몽둥이를 꺼내 드신다. 난 침을 꼴깍 삼키며 잔뜩 몸을 웅크렸다.

“여기 와서 한 명씩 엉덩이 대라! 이 놈의 새끼들이 정신이 있어 없어?”

우린 그 큰 몽둥이로 엉덩이를 정확히 12대씩 맞았다. 난생처음 엉덩이를 맞아본 나와 친구들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복도에 나가서 무릎 꿇고 반성문 써! 그리고 다음 주까지 부모님 모시고 와!”

울고 서 있는 우리에게 선생님은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치신다.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으신가보다.

복도에 앉은 우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생애 처음 큰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았는데 그게 너무 아파서 설움이 복받쳤고, 이 사실을 부모님께 말해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너졌다.

‘심지어 학교에 엄마를 데리고 오라니… 이건 티브이에서나 보던 일인데…’


학교가 끝나고 난 퉁퉁 부은 눈으로 엄마가 일하는 재봉틀 공장으로 향했다.

저 멀리서 열심히 재봉틀을 돌리고 계신 엄마. 난 엄마를 보니 왠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공장 아주머니들이 다 들리게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는 깜짝 놀라 재봉틀을 멈추시고 나를 바라보신다.

“어. 니 무슨 일 있나?”

내 부은 눈과 겁먹은 눈을 보곤 엄마는 무슨 일이 있나 생각하셨나 보다.

“엄마, 선생님이 엄마 학교에 오란다.”

난 눈물을 글썽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왜?”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오늘 체육시간에 담 넘어서 연날리기 구경 갔다가 선생님한테 엉덩이 엄청 맞았다.”

내 대답에 빳빳했던 엄마의 허리가 조금 둥글게 내려앉는다. 그리곤 웃으며 말한다.

“자~알 한다. 잘못했으면 맞아야지.”

난 예상 밖의 엄마의 대답에 조금 긴장이 풀렸다. 생각보다 뭐라고 안 하신다. 아니 오히려 조금 웃으신다.

“엄마 학교 올 수 있나? 선생님이 학교 오란다.”

난 다시 한번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의 동료 아주머니들이 재봉틀을 돌리다 다들 웃으며 나와 엄마를 쳐다본다.

“그래, 선생님이 오라고 하면 가야지. 자~알 한다. 문디 손아”


며칠 후 엄마는 재봉틀 공장에 잠시 외출을 쓰시곤 학교에 오셨다.

앙칼진 담임 선생님은 엄마를 보자 환하게 웃으시면 엄마에게 인사한다.

‘다행이다. 선생님이 그래도 엄마한테는 화 안내시네.’

한동안 화를 못 가라앉히시던 선생님은 하나둘 부모님이 방문하자 조금 평온해졌다.

그날 이후로 난, 다신 수업시간에 담장을 넘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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