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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소풍 가는 날

얄궂은 최고의 친구에 대한 기억

by Helen J

이번 주 교수님 미팅 때 보스턴 날씨는 어떻냐고 물어봤더니 역시나 아직은 푸근하진 않고 흐렸다가 쌀쌀했다가 변덕 중이라고 하셨다. 그래도 햇살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달라졌다며, 볕이 몸에 닿으면 겨울 볕보다 따뜻한 게 느껴진다고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목소리다. 그랬나, 봄볕은 더 따뜻했었나. 난 봄이지만 추운게 미워선지 그런거 잘 못느꼈었는데. 쌀쌀하지만 그래도 따뜻한 봄볕. 노교수님의 설레는 목소리는 듣는데 괜히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나는 봄이 되면 난 우리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할아버지는 평생이 봄인 소년 같다


나와 할아버지의 관계를 돌아보면 푸근한 할아버지가 손녀딸 위해주는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다. 할아버지는 오히려 내 또래 친구 같았다. 잘 같이 놀다가도 토라지면 진짜 서로 며칠은 서먹한.


노래도 불러주고, 게임도 같이 해주고, 나랑 제일 많이 놀아줬던 할아버지. Company Couple의 CC인 맞벌이 아빠엄마가 회사에 가고 나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챙겼다. 이때 할머니는 이것저것 챙겨 나를 먹이는 걸 최대 과제로 삼았다면, 할아버지는 나를 '키워주기보다는 나와 놀아'주었다. 근데 진짜 '흥', 스러운 건 뭐 할 때 뭐 하나 내 기분대로 져주는 법이 없다. 본인은 어른이면서 나보다 잘하는 건 꼭 이기고야 말았다. 그리고 나에게 지면 진짜 분해했다. 이 때문에 할아버지와 노는 건 더 또래 친구랑 노는 것처럼 재밌었지만 섭섭한 것도 그만큼 쌓였다. 아무리 놀이들이 아이들의 것이라지만 나보다 몇십 년이나 더 산 노하우를 건너뛰어 내가 할아버지를 이길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내가 할아버지가 얼마나 치사했는지 나중에 한번 다 정리해서 하나하나 따지고 말 거다!’ 하고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지금은 그런 그때는 내 맘에 못을 박은 할아버지의 치사함들이 생각이 안 난다. 애써 지우려고 한 게 아니라 정말 글에 더해 쓰려고 예시를 찾아봐도 기억에 없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족들 다 모여 마지막일 이야기를 돌아가며 할아버지에게 할 때, 무슨 정신에서인지 할아버지에게 소리쳤다 “할아버지 섭섭한 것만 말하고 고마운 거 다 말 못 해서 미안해”.


비 오는 날 꼭 우산 들고 비 떨어지는 학교 문 앞에 서 있었던 뒷모습, 우산 건네주며 '내가 최고지?' 인정하라는 그 표정과 함께

본인 기분 좋은 날엔 “우리 둘째가 최고여, 암”하며 첫째와 막내에게도 언젠가 했을 그 말을 비밀이라며 내게 눈을 찡긋하며 말하던 것,

소아과 안 가겠다고 찡찡대던 내게 저 밑 동네 큰 놀이터 가자고 업히라고 하더니, 할아버지 등에서 한숨 자고 나면 병원 간판 아래 있던!! 작은 낚임의 그런 기억은 마음에 콕 남아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조카들이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면 할아버지랑 있었던 이런 일화들은 당골소재이다. 내가 할아버지 성대모사를 하면 조카들은 깔깔대며 웃는다. 난 할아버지가 옆에 있을 땐 섭섭한 기억만 품고 살았는데, 이렇게 지금은 옆에 있을 때 크게 인정하지도 않고 고맙다고도 못한 기억들에 기대어 산다. 막상 조카들에게, 그리고 이 글에 그때 말하지 못한 할아버지를 전달하며.

봄에 꽃구경 가는 걸 좋아하던 소년 같던 할아버지는 몇 해전 봄 소풍 가듯, 약간은 쌀쌀하지만 봄 볕이 만연하던 날 멀리 떠났다. 이 계절이 되면 더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 내겐 누구보다 뛰어넘을 수 없던 큰 산처럼 보이던 모습으로, 막강한 놀이친구로 다시만나 할아버지와 또 한번 놀아보고 싶다. 몇 해의 봄이 더 지나면 나는 할아버지를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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