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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스웨덴 선택,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by 엠에스

<폴란드의 스웨덴 선택,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안보 공동체의 문 앞에서, 한국은 무엇을 보지 못했는가


2025년 11월, 폴란드 정부가 오르카(Orka) 잠수함 사업의 최종 파트너로 스웨덴의 A26을 선택한 순간, 한국 방산업계는 단순한 수주 실패로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은 훨씬 더 큰 배경, 즉 유럽 안보 생태계의 작동 방식, 동맹의 결속, 지정학적 신뢰라는 구조적 요소를 드러내며 한국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졌다. 이 패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외교·안보 공동체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구조적 실패였다.


한국의 잠수함 기술력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한화오션이 제시한 플랫폼은 세계적인 표준에 부합하며, 장보고급 무상 제공이라는 파격 카드도 포함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유럽 안보의 울타리를 넘지 못했다. 폴란드는 성능이 아니라 누구와 미래의 안보 생태계를 구성할 것인가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한국 외교와 방산이 회피해 온 질문이다.

세계는 왜 우리 기술보다 동맹 구조를 먼저 보는가?

우리는 어느 안보 공동체에 속했는가?

이 질문이 앞으로 한국 방산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스웨덴의 승리—기술이 아니라 ‘안보 공동체’의 승리


스웨덴 A26은 뛰어난 플랫폼이지만, 폴란드가 스웨덴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성능이 아니었다. 핵심은 유럽의 전략적 재편이다. 2020년대 이후 유럽 안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스웨덴과 핀란드가 NATO에 가입하면서 발트해는 사실상 NATO의 내해(內海)가 되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유럽은 안보·산업·정보·기술이 하나의 생태계로 묶이는 경험을 했다. 발트해 연안국들은 이미 다음과 같은 전략을 추진하고 있었다.

공동 해양 감시 체계

표준화된 잠수함 및 해군 장비

폴란드-스웨덴-핀란드의 해군력 연동

러시아 발트함대 대응을 위한 통합 전략


즉, 폴란드는 스웨덴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발트해 안보 공동체를 선택한 것이다. 이 안보 공동체에 한국은 초대받지 못했다. 아무리 좋은 장비라도 구조적 관계 밖에 있는 국가는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없다. 이것이 스웨덴이 승리한 진짜 이유다.


한국 방산이 간과한 것—‘기술력’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한국 방산은 오랫동안 “기술력+가격 경쟁력”이라는 공식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해 왔다. 이 전략은 중동·동남아·개도국 시장에서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유럽·북미와 같은 가치·동맹 기반의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유럽은 단순히 무기를 구매하는 시장이 아니다. 그들은 무기를 구매하면서 장기 안보 동맹을 선택한다.


폴란드가 이번에 보여준 것은 매우 단순한 진리다. 무기는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 안보 철학이다. 구매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동맹의 문제다. 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의 유럽·북미 시장 진입은 계속해서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캐나다 사업(CPSP)은 한국의 또다른 시험대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은 약 60조 원 규모로, 향후 10년간 세계 최대 규모의 잠수함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한국이 여기에서 승리하려면, 폴란드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한국이 캐나다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전략은 다음 세 가지다.


① ‘동맹 기반 패키지' 제공

캐나다는 전통적인 해양국이며 북극 해군 전략을 중시하는 국가다. 그렇기에 단순한 잠수함 구매가 아니라 북극 작전·정비·조선 인프라까지 포함한 완전한 전략 패키지를 원한다. 스웨덴이 폴란드에 제공한 것도 바로 이 패키지였다.

잠수함 임시 제공(gap-filler)

폴란드 조선소 투자

공동 개발 및 기술 이전

NATO 표준 기반의 연동 훈련


한국도 캐나다를 위해 다음을 제시한다.

북극 작전 솔루션

한·캐다 연합 잠수함 훈련 체계

캐나다 조선소 MRO 투자

미국과의 삼국 협력 구조

즉, 한국은 잠수함 공급자가 아니라 북극 안보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② 외교 신뢰 구축

방산은 그 나라의 외교 노선의 ‘성적표’다. 정치적 스탠스는 방산 수출 성과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한국의 외교는 미국·NATO·EU로부터 보았을 때 전략적 모호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과의 과도한 경제·정치적 접근은 서방에 불안감을 준다.

“한국은 어느 진영인가?”

“중국이 압박하면 외교 방향을 바꾸지 않을까?”

“장기 파트너로서 신뢰할 수 있는가?”


서방의 시각에서 이러한 질문은 매우 구체적인 위험 요소다. 폴란드 역시 이러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분석은 충분히 가능하다. 결국 방산은 외교 정책의 결과다. 동맹과의 일관성 있는 신뢰가 약화되면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안보 공동체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③ ‘장비 공급자’에서 '안보 파트너' 국가로 전환

스웨덴과 폴란드는 상호 무장을 구매하며 안보 공동체의 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이 모델은 유럽 방산의 정석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수출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 파트너가 아닌 ‘공급업체’의 위치다.


캐나다 사업에서는 캐나다의 북극 전략·조선 산업·연합 방위 체계를 묶는 삼각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캐나다 해군

캐나다 조선 산업

미·캐·한 연합전력


이 구조를 만들면 캐나다는 단순 고객이 아니라 한국의 안보 네트워크 파트너가 된다. 이 생태계 구축이 없다면, 캐나다 역시 “자기 공동체의 무기”를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의 철학적 의미: 안보는 기술이 아니라 ‘공동체의 철학’이다


폴란드의 선택은 한국 방산의 기술력보다 외교 철학을 겨눈다. 세계는 다음과 같은 철학적 원리를 기준으로 국가를 평가한다. 안보는 결국 ‘함께 살아가는 자’와 ‘함께 싸울 자’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무기는 그 결속의 상징일 뿐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방산 전략은 근본적인 질문을 피해왔다.

우리는 어떤 세계관을 가진가?

우리는 누구와 함께 안보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는가?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법치라는 서방 가치에 확고히 서 있는가?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않으면 방산은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방산의 가장 큰 리스크는 잠수함이 아니라 한국 외교의 전략적 중심축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이 지금 답해야 하는 마지막 질문: “우리는 어느 편에 서는가?”


폴란드의 선택은 한국 방산에게 준 결정적 메시지이자 경고다. 기술은 이미 충분하다. 그러나 세계는 기술만 보지 않는다.

동맹의 일관성

국가 전략의 방향성

신뢰

가치를 공유할 파트너인지 여부

이 네 가지가 기술력보다 먼저 평가된다.


캐나다는 한국에게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시험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한국은 어떤 안보 공동체에 속할 것인가?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할 때만, 한국 방산의 다음 문이 열린다.


만약 한국이 이 질문을 회피하고 외교적 모호성 속에 머문다면, 폴란드의 사건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반대로 명확한 전략적 방향을 제시한다면 한국은 단순한 방산 수출 국가를 넘어 세계 안보 질서의 핵심 플레이어로 도약할 수 있다.


맺음말—기술은 준비되었고, 이제 필요한 것은 ‘전략의 결단’이다


한국 방산의 미래는 조선소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기술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부족한 것은 한국 외교와 안보 전략의 철학적 중심이다.


세계는 한국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것인가?”

“아니면 전략적 모호성 속에 머물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순간, 한국은 폴란드의 선택을 넘어 새로운 세계 안보 질서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한국의 잠수함 기술력은 이미 준비됐고, 세계는 한국의 기술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들이 망설이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파트너의 방향성’이다. 그 방향성은 안보에서 점차 전략산업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의 선택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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