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사춘기는 어땠나요?
지적인가요? 핫핫
중학교 때 데미안을 읽었어요.
그냥 멋으로.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이었기 때문에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관계성이
가족들과의 유대보다 훨씬 멋있어보였거든요.
한 번 봐요. 이 대사를.
어떻게 사춘기 초다크 여학생이 지나칠 수 있는지.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데미안, 문학동네 p.109)
저는 아프락사스교의 교인이 되어도 좋은 그런 심신미약의 상태였거든요.
이 데미안을 다시 읽을 기회가 최근에 있었어요.
다시 보니 예전의 막 가슴을 벅차게 한 그런 느낌과 또 다른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이 책이 고전이 된 이유는 누구나 자기 삶과 대비하여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저의 '알'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깨뜨린 세계 밖에 원하는 건 있었을까요?
제 브런치에 놀러온 분들은 어떠세요?
일단 첫 챕터의 제목은 [두 세계], 두 번째 챕터의 제목은 [카인]입니다.
(저는 문학동네에서 출판한 데미안(안인희 옮김)을 읽었습니다.)
주인공 이름은 싱클레어에요. 데미안이 아니에요.
근데 다 읽어보고 나니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자신에게로 도달하기 위한 어떤 터널 이름 같기도 하네요.
열살 무렵이었나봐요 싱클레어의 밝은 가족과 학교의 세계에 금이 간 것은.
초딩이지만 악의 화신같았던 프란츠크로머의 등장이 문제였죠.
싱클레어는 그애와 그애의 무리들 앞에서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 아니 더 우월해보이는 남자행세를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요.
물레방앗간집 옆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쳤다. 라고
크로머는 1차원적으로 그 말에 싱클레어를 추켜주는 그런 머저리는 아니었어요.
크로머는 싱클레어의 거짓 고백을 꼬투리잡아 돈을 뜯어 내기 시작합니다.
싱클레어는 이 일을 집에 알리지 않아요.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싱클레어의 젖은 신발을 꾸짖는 아버지에게 이상한 경멸감과 우월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요.
p.25
이것은 아버지의 거룩함에 드러난 최초의 균열이었고, 나의 어린 시절을 떠받치던, 그리고 누구나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기 전에 무너뜨리지 않으면 안 되는 기둥들에 나타난 최초의 금이었다.
[카인] 챕터에 등장한 데미안.
p.35
영리하고 더없이 단호한 얼굴.
총명하고도 주의 깊은 모습.
약간의 조소가 어린 슬픈 모습.
농부의 자식들 사이에서 그들과 똑같아 보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변장한 왕자
데미안에 대한 묘사는 거의 로맨스 소설 남주 등장급으로 아름답습니다.
심지어 싸움도 잘해서 학년에서 가장 힘이 센 녀석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움켜쥐었고 그 녀석이 죽었다는 소문까지 떠돌았다고 하니까요.
크... 문무겸전인가요. 잘생긴 얼굴에 싸움도 잘하고 분위기는 또 고요한데다.. 네 더 이상의 묘사는..
그렇습니다.
전 이미 반했답니다.
싱클레어를 잠깐 잊을뻔 할 정도로요.
아 그런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카인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을 이야기합니다.
카인과 아벨을 아세요?
카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의 자식이었고 하느님은 농부인 카인의 곡식보다 아벨의 양 제물을 더 기뻐하셨대요.(역시 채식보단 고기가... 아 아닙니다. 깊은 뜻이 있었겠죠)
그래서 화가 난 카인은 아벨을 돌로 쳐 죽여요.
(급발진 1티어...)
그리고 하느님이 카인에게 묻습니다.
"네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느냐"고.
카인의 대답이 걸작이죠.
"제가 아벨을 지키는 사람입니까?"(오.. 카인 너무 쫄아서 미친거니?)
그리고 카인은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되고 하느님에게 호소합니다.
자기를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를 죽이려들거라고. 그랬더니 하느님은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표식을 남겨주었고 그를 해치는 사람에게 일곱 배의 벌을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시죠.
(하느님... 무슨 생각이신건가요.. 애초에 제물을 공평하게 받아줬.. 아 아닙니다. 제가 깊은 뜻을 어찌 알까요)
데미안은 카인의 표식이 살인 후에 생긴 것이 아니고 이미 지니고 있었던 것이며 그것은 실제의 표식이라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정신력과 대담함같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카인과 같은 족속은 사람들에게 섬뜩하게 생각되는데 이것은 두려움 없는 자들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라는 류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아벨 족속이 겁쟁이일 수 있다는 말을 하죠.
그리고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서 프란츠 크로머를 영원히 떼어내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
싱클레어는 프란츠 크로머가 사라진 후 오히려 예전의 어린아이의 세계(아벨의 세계와 같은)로 들어가 데미안을 더 이상 찾지 않아요.
왜냐면 데미안은 크로머와 다르기는 하지만 더더욱 싱클레어 자신을 독립적으로 담금질할 무엇이라고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렇게 데미안을 잊고 살다가 싱클레어가 아버지에게
카인에 대한 데미안의 해석을 이야기하자 아버지는 그런 생각은 그만두라고 엄중하게 일렀고 싱클레어는 더이상 그 밝은 세계에 머물 수 없음을 느낍니다.
저는 저의 원가정을.... (네?)
아빠는 심각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서포트하는 데 자신의 책임감을 다 쓴 사람이었다. 정도로 말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집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저는 그저 변방에서 먹이나 얻어 먹는 어린 하이에나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지나친 자기연민은 오랫동안 해 왔기 때문에 눈물 좀 훔치고요.. )
하지만 어릴 때는 누구나 그렇듯이 부모를 특히 엄마를 본능적으로 사랑하죠.
저는 일하고 돌아오는 엄마를 늘 기다렸던 것 같아요.
노을이 지는 저녁 쯤 엄마가 돌아오면 엄마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엄마가 예쁜 외출복에서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기를 기다리다가 엄마 치마냄새를 킁킁 맡곤 했어요.
그 날 벌에 쫓기다 쏘인 일, 방바닥에 거꾸로 꽂혀 있던 못을 밟은 일 같은 건 일단 할머니랑 좀 처리하구요.
저는 열 네살이었어요. 싱클레어보다 늦었네요.
우리집은 행복하지 않다. 는 감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나의 알에 생긴 최초의 균열이겠죠?
나는 멀리서 우리 가정을 바라보는 자의 시선을 가졌었고 그 안에 깊이 소속되지 못했죠.
내 안의 프란츠크로머는 그렇게 스멀스멀 자라납니다.
나는 그저 경제적인 도움만 받고 있을 뿐(그 경제적인 도움도 당연히 줘야 되는 거 아니냐. 하나도 고맙지 않다는 마음까지)
그들의 세계에서 난 최대한 빨리 빠져주겠다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뭐랄까 정신적인 고아같았달까요.
학교도 친구도 저 자신도 의미가 없었던 것 같아요.
사춘기는 그렇게 국민학교 내내 퇴적층처럼 눌러두었다 폭발한 화산처럼 왔어요.
저는 모든 어두운 것을 밝은 것보다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마치 내가 카인의 표라도 가지고 있는 양 스스로를 특별하게 생각하기도 했고
나는 그런 밝은 세계, 거짓의 세계, 위선의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사람이다.
생각하며 십대의 그 예쁜 날들을 스스로 늙혀가며 보냈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내 안의 데미안은 조그맣게 숨쉬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여기를 벗어나서 어떻게 살까.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편안하게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하다.
는 생각도 했고. 필요할 때는 공부를 하기도 했으니까요.
소설을 읽을 때 가장 행복했어요.
그 안의 인물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위로 받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일기도 매일 썼습니다. 온갖 슬픔과 열망을 쏟아냈던 것 같아요.
그 일기를 버린 게 지금도 참 안타깝습니다. 한 때는 그런 시절의 내가 너무 싫어서 그랬기는 했지만요.
늘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볼 때면
난 꼭 서울에 가서 아무도 모르는 익명에 파묻혀 자유롭게 살거야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고속버스터미널(예전 터미널은 참 지저분했어요 냄새도 나고)에 가서 나무의자에 한참을 앉아
서울로 떠나는 버스를 몇 대씩이나 바라보곤 했던 것도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양하게 나를 시험해가면서 깊이 행복하게 사는 세계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되어 가끔 코끝이 찡해집니다.
그렇게 저의 첫 세계는 네 그렇습니다...
불완전한 성인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가정에 대한 수식어를 몇 번이고 썼다 지웠어요. 너무 과한건가 내 감정이 맞는건가 아직도 긴가민가 한가봐요) 가정과 멀어졌다고
그것을 깼다고 생각해보니 진짜 깨야 할 '나'가 떡 버티고 있었단 것
놀랄 노자였다구요.
오마이 가스레인지!!
여하튼 다음 데미안의 이야기를 또 해보면 좋겠네요(해볼 수 있으려나요.. ^^*)
3월 첫 연휴 모두 평안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