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의 sky 캐슬
내가 sky 캐슬의 염정아(현 한서진, 구 곽미향, 닉네임 아갈머리)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얼마나 든든한가.
너는 공부만 해. 방향은 내가 다 정해줄게.
시간도 에너지도 로스나는 것 없이 해줄게. 하는 그 열정과 성실(을 가장한 광기)
그리고 내 아이에게 이태란(이수임, 특: 아들이 특별히 해주는 것 없이도 우주 탑. 그래서 이름도 우주인가..)이 이기적이고 편협하다고 말할 때 아갈머리를 찢는다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한 천박함.
부럽다.
멀리서 보는 사람들은 이게 맞냐, 애들 공부시키는 것 보면 기괴하다 어쩌다 해도
학부모들은 만들어진 제도 하에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하는 나약한 개미들일 뿐인 걸.
스카이캐슬의 이수임처럼 동화쓰고 화초 키우고 애들 사교육 안 시켜요~라고 우아하게 말할 수 있으려면
애가 그런 사교육 없이도 깊이 생각할 줄 아는 놀라운 두뇌의 소유자일 때나 가능한거 아닌가 싶다.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학교 내신을 다뤄주는 학원을 알아보는 것부터가 벌써 피곤했다.
누가 일타라더라(알타리 아니다...) 누가 자료가 좋다더라. 뭐 어떤다더라. 거기서 1등급이 많이 나온다더라.
그래도 엄마가 되서 마냥 게으를 수는 없어서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고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서 학원을 등록하고 애가 너무 피곤하려나 어쩌려나 하는 마음으로 스케줄을 수줍게 들이밀어보고..
일단 입학전에는 이것부터가 시작이다.
그리고 진단평가 같은 걸 봤는데 후아.... 그렇지.
그렇게 고1 엄마의 가면무도회가 시작된다.
일단 동네 엄마.
동네 엄마랑 이야기하고 돌아오면 거울 앞에서 아에이오우를 몇 세트 해줘야한다.
얼굴에 경련이 날 것 같기 때문이다.
나한테 자기 아이 뭐가 부족하다 뭐도 부족하다 죽는 소리 하길래 아는 정보 모르는 정보 다 퍼주고 보니
알고보니 걔도 저~~ 앞에 있는 아이였다.
거지 똥구멍에 콩나물을 빼먹어도 유분수지. 화가 났다.
난 대체 뭘 하고 온건가 현타가 와서 쌀 씻다가
스캐이캐슬의 염정아처럼 소리없는 아우성을 질러댔다.
왜 소리없는 아우성이냐고?
애가 있는데 어떻게 내 감정을 다 드러내나.
그래도 관계를 끊어선 안된다. 언제 내가 뭘 물어봐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집 청소년.
내가 봐도 불쌍하다.
일단 학교에 가려고 깨울 때부터 불쌍하다.
늦어서 미인정지각이면 생활기록부에 출결 스크래치가 난다. oh no~~!!!
이것은 수퍼울트라특급 재앙이여.
성적 올리기도 힘든데 출결 이슈까지?
알람을 핸드폰으로도 3개 맞추고 시계까지 사서 또 맞춘다.
가끔 핸드폰을 안고 잠든 나를 인식할 때 강시처럼(강시 아시는지?) 튕겨 일어난다.
아침에 푹 자고 일어났다는 느낌이 들 때가 제일 무섭다.
깨울 때도 절대 내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나지 않게 조심한다.
"좋은 아침~~(좋은 아침 같은 소리 하시네)"
"오늘 아침은 호밀토스트에 잼 발라 줄게. 조금이라도 먹어. 계란도 먹어야 단백질 보충이 되지~."
그렇게 등교 작전을 해치우고 나면
내 갑상선 약을 주섬 주워먹는다. 호르몬이 부족하면 안돼~~ 절대 쓰러지면 안돼엑!
그리고 우리집 반려 인간.
"쟈기야~(인간아), 회사 늦는거 아니야?(일어나 얼른!)"
그래 내가 수술 때문에 휴직하고 있으니 학원비 버느라 고생하니 거기에도 짜증을 내어선 안된다.
너도 쓰러지면 안된다. 우리는 절대 쓰러지면 안되는 사명을 갖고 있는 것이야.
하고 술냄새 풀풀 나는 방 문을 닫는다.
이렇게 소리없는 아우성의 날들이다.
그리고 또 학부모총회.
선생님을 만나는 일은 떨리는 일이다.
우리애가 막 공부를 잘하고 누가봐도 학교의 중심인물이면 어깨를 쭈아악 펴고 위풍당당하게 가겠지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찾으며 한껏 겸손하게 교실로 들어가야 한다.
아무리 쫄보 쪼렙 소심이지만 올해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있으면 재빨리 손들어야지 마음 먹고 총회에 갔다.
눈이 마주치는 부모님들에게는 온화하고 겸손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드디어 학부모들에게 역할이 주어지는 시간.
엄마들이 안 한다고 하면 빨리 해야지 했지만 이미 그 역할들은 다른 엄마들이
우아하게 가져간다.
"스앵님~ 제가 할게요."
"스앵님~"
"스앵~"
우앵.... 나 같은 쪼렙 소심이는 손을 드는 시뮬레이션만 머릿속으로 열번쯤 돌리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있는 엄마가 되었다.
하아....
올해 고1부터는 등급도 5등급제가 되고 수능도 쉬워진다.
5등급이라고 해서 1등급이 4%->10%로 늘어난다고 해서 거기에 우리애 자리가 있는 건 아니다.
수능도 통사 통과를 다보니 사회 과학 공부도 다 해야하고 수학이 쉬워지니 그럼 변별은 어떻게 되는 것이며
생기부 서류도 잘 해야 한다고 하고(학교에서 하는 온갖 신청기간을 놓칠까봐 매일 체크하고 신경쓰고 한다, 좋은 기회는 눈 앞에서 유명가수 티켓팅하듯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우리 애가 학교에서 잘 생활해야 할텐데. 하는 마음에 조급함이 밀려온다.
우리애도 학교에서 나처럼 가면무도회를 펼치길 바라게 되는 거다.
먼저 대학을 보낸 학부모님들이 달리 보이고 존경스럽다.
우리 아기 신생아때부터 두돌 정도까지 힘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정말 중요한 시기이고 돌아보면 예뻤던 시기였다.
나중에 돌아보면 지금 이 시기도 참 중요한 시기이고 어쩌면 치열해서 행복했던 시간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대 똑똑이 유전자를 못 물려줘서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또 안쓰럽다.
나는 우리 애 수학책을 보면 다 그림같다아... 그냥 그림감상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성실하게 하며 잘 참고 지나가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공부는 알아서하는 거지 하는 것은 어쩌면 나 편하자고 하는 말인 것도 같다.
같이 걸어주고 초조해하고 어쩔 때는 싸우고 강요하고 또 한 발 물러나기도 하는 게
엄마의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하는 요즘이다.
수행이 뭐 달리 어디 산에가서 안해도 절로 된다.
그저 나는 최선을 다하도록 도와주는 것과 집착의 경계가 무엇인지를 매일매일을 고민할 뿐이다.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현명하게 알아챌 수 있기만 바랄뿐이다.
온갖 사람들 앞에서 가면무도회를 하는 요즘이지만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는 내 진심을 털어놓는다.
이제 중간고사가 한 달 여 남았다... 후덜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