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다

서랍 속에서 꺼내며

by 가을 펭귄

마음에 쌓인 것이 언어가 되어 툭 내뱉어지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문구들이 막 떠올랐다.

아빠가 글을 써보라고 하셔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받아 적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시 세편을 후루룩 쏟아냈다.


대단한 수준의 시는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김성수 작가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답지 않은 시')

그렇게 적어놓고 나니 마음이 참 뿌듯했다.

내 힘든 시간이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어떤 꽃 내지 열매를 피워낸 것 같아서 의미 있게 느껴졌다.

어떤 아픔도 시간이 지나서 아름답게 승화할 수 있다면 참 의미 있는 거구나 생각이 들어 감사했다.


그 시들은 가까운 사람에게만 조심히 나누었지만 한동안 다시 꺼내지 못한 채 서랍에 넣어두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이 읽으면 내 맘을 알아줄 것 같았고,

내 글이 작은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넣어두기만 할까 생각하다가, 이제는 조심히 꺼내어 보기로 했다.




마지막 난임판정 이후 1년이 지난 2022에 썼던 시 세편을 아래에 남겨본다.


1. Kinderlosigkeit

(아이 없음, childlessness)


2. 시편 113편


3. 시를 쓰자




Kinderlosigkeit


우리는 아이가 없다.

원하지 않아서 없는 건 아니구

오지 않아서 없다


신혼이라 아직 우리끼리의 시간을 감사하기를 4년,

난임이 슬퍼서 자주 울기를 2년,

공부하느라 바빠서 슬퍼할 새 없이 보내기를 3년,

교사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살기를 1년,

너무 늦기 전에 인공수정이라도 해볼까 방황하기를 1년


모든 게 안되는구나

마침내 받아들이고 펑펑 울던 게 작년


우리는 부모가 될 수 없구나

서로의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며 실컷 울었지만

그 눈물 안에 원망은 없었다

슬펐지만 하느님의 우리를 향한 깊은 뜻을 믿을 수 있음에

감사했던 우리

그래서 많이 울었지만 왠지 그 십여 년의 굴레에서 벗어난 듯

홀가분해졌던 우리

그래서 눈물과 미소를

함께 지었던 우리


지금은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자녀로서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내가 매일 가고 싶은 미사에

갈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고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와 창작을

마음껏 할 수 있기에 감사하고

남편과 함께 주님을 섬기는 일에

비전을 갖게 해 주심에 감사한다


받아들이고 기대하지 않는다지만

'그' 날이 오면, 그래도 약간의 실망은 한다


Kinderwagen(유모차)을 끌고 가는 엄마들이 아직은 부럽고

카톡에 올라오는 지인들의 아기들 사진을 보면

어머 그 새 그렇게 컸구나

예쁘고 좋으면서도

눈시울과 마음은 뜨겁다


그러면 기도를 한다


"예수님, 제가 얼마나

아이를 가지고 싶었는지는

당신이 아십니다

저의 성화와 이웃의 성화를 위해

이 고통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 이 고통이

저와 세상의 죄를 보속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제 고통을 아실 테니

천국 갈 때 도움 주시겠죠?

감사합니다"


그러고 나면 왠지

천국 갈 보증수표가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


- 2022년 10월 26일 저녁




시편 113편


성경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세상 마지막 때에

젖먹이가 딸린 엄마들과

임신한 여인들은 불행하여라"


어떤 때에는

아이가 없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날도

있을 거라는 말씀


자녀로 인한 슬픔과 근심을

말하는 말씀


그런 말씀은

내게 조금은 위로가 되지만

완전한 위로는 되지 못한다


아이가 생기면

언제라도 기쁘게 받아들일

희망을 가지고 있으니까


엄마들과 임신한 여자들이 불행할

그때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괜히 늦게 아이가 생겼는데

그때 하필 마지막 때이면 어쩌지

걱정이 되니까


내게 가장 큰

위로와 기쁨을 주는 말씀은

시편 113편이다


"할렐루야!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양하여라 주님의 이름을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은 찬양받으소서


주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위에 높으시고

그분의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다


누가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과 같으랴

드높은 곳에 좌정하신 분

하늘과 땅을 굽어보시는 분


억눌린 이를 먼지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불쌍한 이를 거름에서 들어 올리시는 분


그를 귀족들과

당신 백성의 귀족들과

한자리에 앉히시기 위함이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도

집 안에서 살며

여러 아들 두고 기뻐하는

어머니 되게 하시는 분


할렐루야"


그렇다

그분은 드높은 곳에 좌정하시며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게 하시는 분


그러니 여기서 말고

좀 늦게

하늘나라에서

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


늦게라도

어머니가 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그것도 하늘나라에서?


아름답고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내가 아끼던 많은 아이들이

수많은 예쁜 아이들이

내게 엄마라고 한다면


정말

행복이 터질 것 같다


시편 113편은

내게 정말 소중하다


하느님의 말씀은

정말 소중하다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 2022년 10월 26일 저녁




시를 쓰자


시를 쓰자

내 마음을 글로 적자


귀 기울여 듣지 않을까 봐

못다 한 이야기


꺼냈다가 이해받지 못해

아픔으로 다시 삼킨 이야기


용기가 없어

말로는 하기 어려운 이야기


천천히 생각하며

나와야 하는 이야기


그래서 빠른 세상에게

기다려달라 말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


세상 어딘가엔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남긴 이야기들을

우연히 들추어 보다가


기뻐하고

위로받고

행복해질 사람들이

있겠지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나와 영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겠지


하느님이 필요한 사람들의 손에

내 글이 닿게 해 주시겠지


그렇게 나는

글로 하느님을 말하고

찬미할 수 있겠지


2022년 10월 27일 00시 15분




그때의 나는 그렇게 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