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없이 엄마 되기

조용한 깨달음

by 가을 펭귄

교무실에서 학생들에게 늘 둘러싸여 있는 나이 지긋한 K선생님께 인기비결을 물어보니,


"우리 애들 주려고 사놨던 초콜릿도 풀고.... 그냥 스스럼없이 얘기를 많이 하지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우리 애들'?


자식이 없다고 들었는데? 자기 반 학생들을 이야기하는 건가?

학생들을 자기 아이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는 게 인기의 비결이었구나...


예전에 독일 성당에서 D 선생님이 '내 자식들은 이런 걸 좋아해요.'라고 하신 말씀도 생각났다.

아이가 없으시지만 '내 자식'이란 단어를 쓰시며 사랑이 넘치는 표정을 지으셨던 그분...


K선생님도, D선생님도, 나도 모두 아이가 없지만

'내 자식, 우리 애들' 이런 말 써도 되는 거구나...

엄마의 마음으로 사랑하니까...

하며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았다.


교사생활 8년 차, 잠깐의 번아웃이 와있던 나는 여러 생각에 잠겼다.


2024년 12월,

보육교사 준비생 13학년 학생들과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기획했다. 우리학교 협력 유치원에가서 아이들 앞에서 캐롤를 연주하고 함께 노래와 율동을 따라할 수 있도록 하는 참여형 콘서트였다.

악기라곤 평생 트라이앵글과 탬버린밖에 모르던 학생들에게 키보드, 기타, 우쿨렐레를 가르쳐서 캐롤을 반주하며 그동안 쌓은 실력을 발휘하게 하고, 아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자신감 넘치게 만드는 무대경험을 쌓게 해 주려고 오랜 시간을 고군분투했다.

유치원의 꼬마친구들은 엄청나게 환호했고, 우리 학생들이 노래도, 악기연주도 율동도 참 잘했는데, 주최 측 유치원의 담당선생님이 나와 학생들에게 무례하고, 매사에 불평불만이었던 것, 감사함의 표현이 없었던 것들이 나를 여러 번 황당하게 만들었다.

영혼을 갈아 넣었던 콘서트가 끝나고 나서 나는 완전한 허탈감과 스트레스로 진이 빠졌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면서도 이 행사를 치르느라 뒤에서 치렀을 수많은 노고를 전혀 모르는 듯 한 그녀는 힘들다고 아우성을 피우고, 제대로 도와주는 것 하나 없으면서

자기를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를 깎아내리는 말과 행동들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가족들과 동료들과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위로를 받았지만, 그 오만방자했던 불평꾸러기 마귀할멈 같은 담당교사에게 받은 독가스의 영향이 하루이틀에 사라지진 않았다. 며칠 거기에 대해 계속 반추하듯 생각을 했고, 잠이 안 와서 새벽에 일하는 방, 기도하는 방에서 서성이고,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다시금 앉아서 명상을 하며 잠을 청하고 그랬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 크리스마스 콘서트 때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학생들이 콘서트 준비를 끝내고, 유치원 아이들이 객석에 입장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자리를 꽉 채우자 우리 학생들의 눈에서 하트가 뿅뿅 발사되었다.

유치원 애들이 이뻐서 그들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학생들의 그 감격하고 기뻐했던 얼굴들이 떠오르자 나도 갑자기 너무 행복해져서 눈물이 났다.


'아, 우리 애들이 그렇게 좋아했으면 됐어.

다음에 또 할 수 있어. 마귀할멈 같은 아줌마가 속쌕인데도 우리 애들만 그렇게 기쁘다면...'


그러면서 깜짝 놀랐다.

'내 안에 엄마의 마음이 있구나...

사랑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고통받는 것이라고 했는데,

내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구나...'


그러다가 그 13학년 학생들에게 연주 후에 바구니에 감사의 선물을 담아 학교에 가져갔을 때도 생각났다.

너무나 좋아하며 눈시울이 붉어지던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의 마음으로 자꾸 뭔가 해주고 싶고, 그렇긴 한데 돌아서면 또 진짜 내 자식은 아니다.

그래도 내가 해주고 싶고, 예쁘고 좋으니까 자꾸 퍼주게 된다.




교사 경력 30년인 음악부장 선생님과 성탄연주준비 통화를 하면서,


"교사라는 게 엄청 힘든 직업이다. 연주하나를 무대에 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과 눈물이 들어가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총 리허설과 연주 때문에 수업에 못 들어가게 되는 것에 대해 다른 선생님들께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안 하겠다는 거 못하겠다는 거 마음 달래 가며 응원해 가며 연습시키고, 그 와중에 음악 논술 시험준비 시키고... 30분짜리 연주 뒤에 숨은 노고는 말로 다 못한다.

그래도 애들을 위해서 이게 정말 중요하고 좋은 거 아니까 해야지..." 말씀하시는 거 들으며,


'그게 엄마의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나지움 12학년 학생들의 크리스마스 음악회는 학교 강당에서 했다. 그 밖에도 다른 학급의 성탄콘서트도 준비하느라 매우 분주한 나날이었다.


그 모든 것은 열정과 헌신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매일같이 새벽 5시경 일어나느라 졸립고, 피곤하고... 그런 와중에 칠흑같은 새벽에 집을 나서서 70분 걸리는 거리를 전철로 이동하는 게 추운 겨울에는 상당히 고역이다.


힘들고 피곤한데 억지로 몸을 일으켜 나가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시험을 준비시켜야 하고, 콘서트의 기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서이다. 너무 힘들 땐 병가 내도 그만인데, 그럼 모든 게 물거품이 되니까

힘들어도 버티는 거다.

그냥 버티는 거다.


그렇게 힘든 몸으로 학교에 도착해서,

'예수님, 도와주세요, 정말 너무 힘들어요...' 하고 기도하며 수업을 시작하면

어쩔 땐 갑자기 말이 술술 풀려 나와서 애들이 집중을 잘하고,

어쩔 땐 내가 뭘 잘한 것도 아니고 준비한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너무 잘 따라와 주고, 열심히 해서 힘이 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 날들도 가끔 있기에 하루하루 버티면서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월급을 받고 하는 일이긴 하지만, 주 40시간이 풀타임이라면, 수업 26시간에 남은 14시간만으로 모든 준비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독일은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게 아니라 수업시간 외에 준비와 다른 업무는 집에서 해도 되는 거라, 사실 일하는 시간을 제대로 체크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일하다 보면 풀타임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하기가 일쑤다.


그래서 16시간 수업인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지만 사실 매주 일하는 시간과 먼 통학거리로 인해 매일 3시간 걸리는 출퇴근 시간을 측정해 보면 실제 일하는 시간은 풀타임을 넘고도 훨씬 넘는다.

결국 하는 일에 비해 훨씬 적은 월급을 받으며 끝없이 일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엄마들도 그렇지 않은가?

몇 시간을 일했는지 따지지 않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마음을 다쓰고 밤이든 새벽이든 무엇이든 하지 않는가...


보육교사들에게 더 좋은 수업을 해주기 위해 유치원에 가서 페이도 안 받고 7개월 동안 조기교육 봉사를 하며 경험을 쌓고,

입시철이 되면 음악 보충 수업을 추가로 진행하고,

종교 철학과목의 아이들 소논문을 하나하나 읽는 데에도 엄청난 시간이 들어간다.


이번 학기 수업에 들어가 만나는 학생들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도 아니고, 146명이다.


학교 메신저로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메시지를 한 사람, 한 사람과 주고받는다.

그들의 질문과 필요에 얼마나 관심 가지고 공을 들여서 답하고 있는가...!

나는 아이가 146명이나 있는 셈이다.


물론 하루 종일 한 사람 한 사람 인텐시브하게 케어하는 건 아니지만,

출가한 자식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정도 규모, 왕래하는 자식이 146명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시험이나 수행평가로 성적을 매기지만, 독일에서는 수업 시간의 태도와 참여 자체가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된다.

146명의 과정중심 평가를 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점수를 내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수업태도와 인성, 사회성, 학습능력등을 모두 지켜보고, 기록해야 한다.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힘든 게 당연한 거였다. 아이들이 이렇게 많으니...


좀 더 깨끗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궁리하고, 더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마음과 시간을 쓰고, 그러다 보면 시간은 정말 물 쓰듯 빨리 써진다.

이걸 단순히 직업이라고만 생각하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엄마 같은 마음으로 소명이라 생각하니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나를 선생으로 보지도 않던 학생이, 지금은 아주 착하고 예의 바르고 솔직한 학생이 되어서 나를 행복하게 하고...

어렵다고 느껴졌던 학생들이 나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을 마주할 때

그 아이들이 참으로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이 모든 단상들이 성당 안에 홀로 앉아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는 146명의 엄마구나...'

라는 조용한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입양하고 대모처럼 몇 명 그런 규모가 아니다. 100명이 넘는다...

'하느님이 이렇게 큰 몫을 나에게 맡겨주셨구나...'


왠지 마음이 벅차고 감사해서 찡했다.




없는 것에 마음을 쓰기보다

있는 것에 마음을 쓰다 보니

이미 많은 아이들을 받았고

사랑하고 케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토록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은 작은 생명체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그 고귀한 생명체들을 돌보아주고 사랑을 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나는 선생님들을 참 좋아했다.

우리를 많이 사랑해 주고 재미있게 잘 가르쳐주시는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 운이 좋았다.

학교는 내게 사랑을 많이 받은 좋은 곳이었다.


엄마 같은 사람들을 학교 말고 밖에서도 많이 만났다.

형편이 어려운 나에게 레슨비를 받지 않고 성악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

장학생으로 학원을 다니게 해 주신 선생님들,

나를 자식처럼 사랑해 주셨던 수녀님들, 신부님들,

큰 병을 앓았을 때 자식처럼 걱정해 주시며 따뜻하게 진료해 주셨던 의사 선생님들, 간호 선생님들,

인생의 절박한 시기에 고민을 들어주시고 상담해 주셨던 심리치료사 선생님들, 하기오 어시스텐트들...


사랑을 참 많이 받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걸 다시 전해주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진짜 엄마아빠는 아니어도 수녀님 신부님을 영어로 마더 파더라고 하고, 스승을 어버이라고 하지 않는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내 시간과 마음과 정성을 아끼지 않고 희생하며 산다면

마음의 어버이라는 말을 들을 자격은 되지 않을까...

엄마는 아니어도 엄마 같다는 말을 들을 수는 있지 않을까...


꼭 선생님이 되어야만 엄마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엄마의 마음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사랑할 때, 대상을 영적 아이처럼 품을 때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다.


물론 그래도 진짜 엄마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정말로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이상 내가 그 마음을 어찌 다 알랴?

그저 그만큼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 마음을 닮아 살고 싶다는, 하늘나라에서 그럴 거라는 나의 소망일 뿐이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절망하고 힘들어하던 오랜 시간이 있었다.

작디작은 신혼집을 탈출하고 싶어서, 진로를 바꿔서라도 고정수입을 벌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고,

집을 사고 나니 대출빚을 갚아야 해서 어찌어찌 독일 학교의 음악과 종교/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 모든 연령대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김나지움에선 5학년부터 12학년까지, 종합고등학교에선 11학년부터 13학년 그리고 20-40세의 성인 학생들까지.


보육교사들을 가르치기 위해

유치원과 방과 후 교실에서는

0세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의 아이들도 만났다.


아이들의 발달과 마음을 알게되자

길거리나 주변에서 마주치는 어떤 나이 또래의 아이들을 봐도

더이상 두려움과 자기 연민이 아니라 조용한 자신감과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생기면 손을 내밀어 주려고 준비를 하며, 엄마 같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막 웃으면서 다가올 땐 내가 좋아서라기보다 잘못한 게 있거나 두려운 마음을 숨기고 싶어서일 때도 있고,

내게 투정을 하고 불평을 할 때에도 내가 싫어서라기보다 내가 받아줄 것임을 알고 편해서 그런다는 것을 알았다.


표면에 드러난 표정이 아닌, 그 너머에 있는 깊은 마음을 보아주면서, 그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마음을 사랑해주고 싶다.

말로는 못하더라도 '내가 너를 사랑한다. 아낀다. 자식처럼.' 하고 마음으로 되뇌이며

사랑 어린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이쁘면서도 마음이 아파도 훈육하기도 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배워야 하고 거짓말하면 좋지 않다는 것과 성실함엔 보답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그에 따른 결과를 감당하게 한다.


내가 하는 고생과 희생을 아이들은 대부분 모른다.

그래도 가끔 그 사랑이 돌아오는 서프라이즈 같은 경험도 한다.


오랫동안 오페라 '라보엠'을 공부한 후 함께 저녁에 오페라를 보러 갔을 때, 학교에선 자긴 클래식 별로 안 좋아한다며 시큰둥하던 아이들이 기뻐하며 고맙다고 말해주었을 때...그 날이 하필 스승의 날이었는데, 독일엔 그런 게 없어서 대놓고 감사받는 날도 없지만, 그날 난 특별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내 생일을 어떻게 알고 교실로 들어올 때 깜짝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 순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을 때 국화꽃 한 다발을 건네며 나를 위로해 주고 함께 울어주어준 순간,


그리고 졸업한 아이들이 다시 찾아와 마치 출가한 자식처럼 인사를 건네던 순간들...


내가 주는 사랑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의 마음과 영혼 어딘가에 닿아 정신적 양분이 되길 바라며...

내 아이가 없어서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나의 강점으로 여기고 더 아낌없이 쓴다.




그렇게 사랑하고, 때로는 마음 아파하면서도

가슴에 뚫린 구멍들이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더 이상 터널이 아닌 밝은 빛 속에서 상쾌한 바람을 깊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아름다운 젊은이들, 청소년들이 인생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름다운 눈망울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희망과 사랑, 진리와 존재에 대해 함께 말할 수 있는 은혜.

그들이 힘든 시간을 지날 때

용기를 북돋워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독여줄 수 있는 은혜.


엄마가 된다는 것은 결국 내게 주어진 그 은혜 안에서

조건 없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 아닐까?




이제 곧 제 브런치북 '아이없이 엄마되기'의 연재를 마치려고 합니다.

에필로그는 길지 않고, 애독자님들께 대한 감사의 글이니 발행요일을 기다리지 않고 조만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