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바뀌었다. 영어공부의 흐름이 바뀌었다.

by 영어하는 소시지

서문


아이들을 가르치며 깨달은 것은 아이마다 고유한 기질이 있다는 점이다. 모든 아이는 각기 다른 계절에 피어나는 저마다의 꽃이다. 나의 두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보니, 목표하는 방향은 같을지언정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제각각이었다. 똑같이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어도 큰아들이 집어 드는 원서와 딸이 몰입하는 책은 결이 달랐다. 호기심은 많으나 공기처럼 가벼운 아들과, 몰입도가 깊지만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딸을 이끄는 방식 또한 같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입시 과외를 하다 온라인으로 전환하며 수많은 또래 아이들을 교육하며 깊이 있는 관찰을 하게 되었다. 그 아이들 역시 모두 달랐다. 같은 학원을 다니고 똑같은 '엄마표 영어'를 거쳤어도, 각자의 삶의 패턴과 기질에 따라 학습을 소화하는 방향은 천차만별이었다. 아이가 가진 잠재력은 기질에 맞춰 효율적으로 발현될 수 있다. 다만 수능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넘어, 평생의 자산이 될 뇌의 균형과 문해력이라는 본질만 놓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정확한 목표 지점을 알고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다. 모든 아이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같은 길을 같은 속도로 갈 필요는 없다.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걷다 보면 결국 원하는 목적지에 닿게 될 것이다. 그 목적지로 향하는데 내 경험과 분석들이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시대가 변했다. 영어공부의 흐름이 바뀌었다.


우리 세대는 문법을 먼저 배우고, 언어를 필요에 따라 이후에 배웠다면, 요즘 아이들은 모국어를 습득하듯 영어를 체득한다. 파닉스를 시작해, 파닉스를 통해 리딩과 라이팅으로 나아간다. 더 나아가 지속적인 영어노출을 통해 아이의 영어를 발화시킨다. 초등 엄마들 사이에서 아이들의 렉사일지수 아이의 SR지수가 중요해졌다. 아이의 리딩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구문과 단어의 난이도에 따른 지표로 아이들의 영어를 판단하는 것이다. 원서, 영어교재등은 구하기가 쉽고 저렴하기까지 하다. 영어도서관에는 다양한 책이 레벨별로 구비되어 있으며, 리딩레벨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바로 이웃나라에 영국이 있지만 독일에서 사는 원서가격은 만만치 않다. 다시 말해 한국은 마음만 먹는다면, 어릴 때부터 영어를 접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잘 되어있는 나라이다. 워낙 어릴 때부터 영어를 접하는 아이들이 많다 보니, 상담으로 만난 아이들 중 상당수는 나와 프리토킹이 자연스럽게 될 정도로 영어로 유창하게 사용할 줄 아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이중언어를 사용하게 되는 세 가지 과정



첫 번째인 동시적 이중언어(Compound Bilangual )는 아주 어린 시절(유아기)에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접하며 자란 경우를 뜻한다. 이들은 머릿속에서 두 언어를 별개의 시스템으로 분리하기보다는, 하나의 개념에 두 가지 이름표를 붙이는 방식으로 언어를 처리한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사물을 볼 때 머릿속에는 하나의 '사과'라는 이미지(개념)가 떠오르고, 여기에 'Apple'과 '사과'라는 두 단어가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두 언어 사이의 코드 스위칭(Code-switching)이 매우 빠르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서, 모국인 수준의 발음과 직관을 갖기 쉽다.


두 번째는 순차적 이중언어 (Coordinate Bilangual)이다. 첫 번째 언어(모국어)를 어느 정도 습득한 후, 학습이나 환경 변화를 통해 두 번째 언어를 습득하는 유형이다. 예를 들어 집에서는 한국어만 쓰고, 학교나 직장에서는 영어만 쓰는 환경이다. 이 경우에는 두 언어의 개념 체계가 머릿속에서 분리되어 있다. 영어를 쓸 때는 영어의 사고방식으로, 한국어를 쓸 때는 한국어의 사고방식으로 작동하는 '두 개의 장치'를 가진 셈이다.


세 번째는 종속적 이중언어 (Subordinate Bilingual) 유형이다, 어른이 되어서 외국어를 학습해서 배우는 단계에 속하며, 외국어 단어를 들었을 때 바로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 → 모국어 번역 → 개념 이해라는 3단계 과정을 거친다.


나의 세대는 중학교 때 처음으로 영어를 접할 수 있는 세대였다. 에이 피피 엘 이 애플이라고 스펠링을 외우며 단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명사에 a나 an을 붙이는 관사를 시작으로 문법을 배웠다. 다만, 내 경우에는,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해 팝송을 수도 없이 들었고, 한국말로 영어가사를 적어가며 통으로 가사를 외워 불렀다. 나의 영어 리스닝의 시작이었다. 이후 국제대학원과 해외 업무 현장에서 스스로를 영어 환경에 노출하며 '순차적 이중 언어자'에서 점차 '동시적 이중 언어자'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경험했다.


우리 아이들의 케이스


처음 독일로 반쪽짜리 이민을 오면서 아이들을 독일 현지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때 아이들의 아이는 4학년과 5학년이 막 시작하는 시기였다. 독일 생활 3년 반이 된 지금, 아이들은 독일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면서 순차적으로 독일어 이중언어자가 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독일에 오기 전까지 독일어 단어 하나 알지 못했고, 영어 사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 그저 매일 밤 동화책을 읽어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오디오로 꾸준히 들려주며 영어라는 언어에 친숙함을 느끼게 해 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나의 언어 발달이 후천적으로 이루어졌던 경험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언어가 발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과정을 좀 더 면밀하게 알고 싶은 마음에 독일에 온 이후 뇌과학이나 언어 발달 단계 등을 공부했고, 영어는 '듣기'에서 '리딩'으로 그리고 말하기로 독일어는 ‘듣기’에서 말하고 그리고 ‘리딩’으로 이어지는 단계를 나의 습득 과정과 비교하며 관찰하는 것은 꽤나 흥미로웠다). 독일 생활 3년 반이 된 지금, 아이들은 독일어책과 영어책을 부담 없이 비슷한 수준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전형적 순차적 이중언어가 될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시간이 지나고, 점점 독일어 활용의 비중이 높아지게 되면, 일정 부분 동시적 이중언어자의 특징을 가지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