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0일.
대형 태풍 '종다리'가 몰려온단다. 명색이 태풍이라는데, 내심 기대가 컸지.
귀촌의 로망 중 하나가,
태풍 휘몰아치는 밤, 텐트 속에서 온 몸으로 폭풍우를 겪어보는 것이었거든.
감나무 그늘 아래의 평상에 모기장 텐트를 펼쳤어. 이슬을 피할 차광막을 덮고서 꿈꾸던 여름밤을 즐기는 나날이었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
몰려들던 구름 떼가 으스름한 하늘을 빼곡히 채우더니, 찻잔 속의 파동 같은 잔잔한 바람이 일어섰어.
아,기대된다.
맥없이 자빠질 깻대랑 키 큰 옥수수는 이미 뒷전, 잠시후면 몸으로 조우하게 될 폭풍우와의 신경전에 온몸의 근육이 팽팽한 긴장을 ... ㅋㅋ.
22시.
세찬 바람을 등에 업은 폭우가 먼발치 언덕을 넘어 미친 듯이 할퀴기 시작한 거야. 한 쪼가리 차광막은 비명을 질러대면서 사지를 바들바들 떨어대고, 모기나 막아내던 텐트는 비바람의 기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더라구.
아이고, 낭패가 났네.
텐트를 버리고 도망을 치기에는 폭풍우의 우격다짐이 너무도 위협적이었어. 짜부러들기 직전인 텐트 안의 나와 잡동서니들의 몰골은 이미 물에 빠진 생쥐 꼬라지였지만, 달리 뭘 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겠더라구.
로망이고 나발이고 일단 살고 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
섬광, 뒤이은 밤하늘의 울부짖음과 콩알만큼 쪼그라든 간댕이.
쉴 새 없이 옆으로 휘몰아치는 주먹만 한 빗줄기들, 잎새와 바람이 내지르는 아우성.....
내가 미쳤었나 보다.
토끼자!
2024. 8. 20. 22:15.
로망 찾다가 벼락 맞아 죽을뻔한 돌쇠 아재..
까불지 말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