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중에 여름을 제일 좋아한다. 탈탈거리는 선풍기에 가까이 앉아서 과일이라도 하나 씹고 있으면 여름의 즐거움을 누리는 마음이 풍족하게 차오른다. 고기보다 채소를 더 좋아하는 식성을 가지고 있어서 아삭거리는 여름 채소의 식감이 행복하다. 낮이 길어서 하루가 긴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득을 보는 것 같아 기분좋게 걷다가 집 앞 중학교 근처를 지나가다 보면, 얇은 티셔츠를 입고 친구들과 뛰어노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여름의 밝은 기운이 느껴진다. 할머니들의 옷에 프린트된 다양한 꽃무늬와 자두빛, 보랏빛이 어우러진 색감을 보면, 자기 취향에 당당한 그 모습이 괜히 귀엽고 멋지다. 이불 빨래를 밖에 놓으면 금세 말라서 한 번 더 빨래를 돌릴 수도 있다. 그러면 하루에 이불을 두셋은 더 널 수 있는데 하계에는 못하는 세탁 속도이다. 햇빛에 짱짱하게 마른 이불과 함께하는 밤은 또 어찌나 포근한지. 그런 여름 생활이 좋다.
여름을 반기다 보면 기온이 점점 올라간다. 뜨겁게 달궈진 보도블록 위는 사람을 포함한 많은 생명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더운 여름 에어컨을 누리지 못하는 참새와 고양이가 걱정되어 텀블러에 얼음을 담아두어 누군가 관리하는 길고양이 급식소에 퐁당퐁당 떨어뜨린다.
비가 오면 땅을 보며 다닌다. 지상으로 나온 지렁이를 찾는 것이다. 사람들이 오가는 보도블록 위나 화단의 샛길 위를 기어가고 있으면 밟히지 않도록 인적이 드문 흙 위로 옮겨준다. 어떤 생명들의 힘듦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정작 할 수 있는 일은 참 하찮다. 여름이 다정하기를. 아픔보다 여름의 낭만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를. 힘없는 기도를 올리며 밤을 보내곤 한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요일은 금요일이라고 한다. 월화수목과 같은 평일인데 단지 휴일 전날이라는 이유만으로 토요일을 이기고 1등을 차지했다. 크리스마스에도 이브가 있듯이 좋아하는 날의 하루전 설렘은 당일을 이길 정도로 강하다.
나도 여름을 좋아하지만, 여름이 시작되는 7,8월 전인 5월에 녹색이 색을 찾기 시작하면 설렌다. 그만큼 가을이 오면 아쉬운 마음이 뚝뚝 떨어진다. 하반기에 접어들어 날씨가 선선해지면 빼앗길 푸른잎과 사라지는 생명의 소리, 그리고 짧아질 햇살이 벌써부터 막막하다. 너무 좋아하지 말고 느긋하게 자연을 오감으로 느끼면 좋을텐데 요란한 마음이다.
‘여름의 기원(祈願)’이라는 산문시를 쓴 적이 있다. 훗날 내가 죽은 뒤, 여름이 다시 찾아왔을 때 여름을 반기던 나를 떠올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5월부터 설레고 8월부터 아쉬워하던 나를 생각하며 푸른 나무를 그리움으로 채우지 말고 지나가는 여름을 놓아버린 뒤 무화과를 덥석 베어 물며 가을을 시작하길 바랐다.
지구 생명들은 죽어도 지구 밖으로 못 나는 원자 알갱이가 되니까 원하신다면 귀신처럼 곁에서 맴돌아 드리라. 그리고 울 때마다 옆에서 횟수 체크하면서 놀릴 것이다.’ 야, 너 벌써 여덟 번째 오열이다. 내 덕에 살빠지겠다잉.’ 만화처럼 또 다른 생명의 분자로 진화했다가 다시 원자로 쪼개져서 돌아다니고 전 세계의 여름을 즐기며 놀고 있을 테니 혹시나 미안함이 한 톨이라도 있다면 내다 버리시길. 나는 샴페인을 맛보고 샴페인이 되어보기도 하고 있을 텐데 나에게 미안하다며 진지하게 울고 있으면 선글라스 낀 채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내가 민망해지지 않는가.
이렇게 상대방이 나와 같아지는 날을 기다리고 그날이 당도하면 서로 놀리고 웃을 일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다음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당신의 건강함을 기원한다. 나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놀림 받으며 후련하게 웃을 날을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