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글쓰기 모임

by 이월

8월10일에 올렸던 글을 삭제 후 재업로드했습니다.

(업로드 날자가 8월17일로 되어있지만,

8월10일 업로드했던 글 입니다.)




일주일에 한편 글쓰기를 혼자 하다가 동네 독립 서점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에 들어갔다. 그 모임은 글을 배우는 곳이 아니어서 글을 더 잘 쓰기 위해서 간 것도 아니고, 취미가 맞는 친구를 만들려고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잘 지냈다고 한 줄 적으면 끝나버리는 일상에서 글로 쓸만한 소재가 없는지 아무리 분해해 봐도 33℃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되면 폭염이라고 한다는 추가 지식을 얻은 것밖에 없을 때, 시냇가의 조약돌 중 하나일 뿐인 내 글을 챙겨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이렇게 신경을 쓰나 싶고, 팀전 게임에 들어가면 시작도 전에 추방당하는 나약한 내 게임 캐릭터 공격력이 글 마감일보다 더 시급해 보이기 시작한다. 이럴 때 경험치 물약을 구하러 사막으로 떠나지 않고 키보드 앞에 손가락을 잡아두려고 글쓰기 모임에 들어갔다.

글을 올리고 보니 내 글은 글쓰기 멤버들보다 양이 좀 더 많았다. 게시판의 제목을 클릭한 멤버들이 깨알같이 채워진 글자를 보고는 피로를 느껴서 뒤로가기를 누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글쓰기를 해온 터라 그래도 괜찮았으나 걱정되는 건 오히려 꼼꼼히 읽는 분이 계실까 바였다. 대단한 내용이 없는 긴 글을 완독했을 때 괜히 시간을 뺏고 눈을 피로하게 만든 게 아닐까 싶어서 상상만으로도 죄송해졌다.

그러던 와중에 몇몇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기 시작했다. 리듬이 빠른 유튜브도 10초 앞으로 건너뛰기를 누르는 요즘, 긴 글자를 읽고 내용에서 자기 생각을 덧대어 글로 남겨주시는 것이 참 감사하고 예상치 못한 일이라서 놀랐다.
답글을 달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댓글 창에 마우스 커서를 가져다 댔지만, 어떤 말을 해야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 괜히 읽은 이의 감상과 다른 동문서답을 하게 되는 건 아닐지 고민하다가 아무 말도 못단 채로 모임 날이 다가와 버렸다. 댓글에 답도 안 하고 유난히 긴 글을 쓰는 싹퉁머리 없는 새로 온 멤버1이 된 건 아닐지 또다시 걱정했지만, 모두가 다정하게 받아주셔서 무사히 첫 번째 모임을 끝내고 다음 모임 기수에도 참여하겠다고 했다.

멤버들의 얼굴과 글이 매칭되기 시작할 때쯤 동네에서 마주치게 되면 인사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여름의 무성한 나무를 핸드폰 카메라에 담는데 툭하고 나를 치며 반갑게 알은체해 주신 멤버도 있었고, 인천에 10년 살면서 집 앞에서 매년 열리는 자연 축제가 있는 줄도 모르다가 구경하러 간 날에 책방지기님을 만난 적도 있다. 인천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혹시 친구도 왔을까?’ 생각하며 두리번거리는 일 하나 없이 할 일만 하던 내 어깨를 톡톡 쳐서 웃으며 인사해 주실 때 예상치 못한 안정감이 들었다.

인천에서도 제법 오래 살아서 동네를 둘러보면 내가 아는 골목, 아는 공원, 아는 빵집이지만 본가인 송파를 걸어다닐때 아는것과는 깊이가 다른 느낌이다.
초등학생때는 경사가 급하고 높아 보이던 집앞 언덕을 이제는 성큼히 걸어다닐수 있게 됨으로 같은 곳에서 다른 경험을 느끼는 것, 어릴때 별로 안좋아하던 문구점 사장님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문구점에서 슈퍼로 업종을 변경 하셨는데 덧씌워진 슈퍼 인테리어에 얼핏 보이는 문구점의 모습을 보며 다른것에서 같은 것을 느끼는 것. 이런 경험과 기억이 뭐라고 인천에서는 타지인의 마음으로 살게 된 걸까. 아는 사람 몇몇이 생겼다고 안정감이 드는 것도 신기했다.

익숙하고 낯선 인천 동네에서 나를 알은체하는 웃는 얼굴들이 누름돌이 되어 떠있는 발바닥을 붙여주는 느낌이 들었다. 고료가 나오는 마감도 아닌데 혼자서 열심히였던 글쓰기를 펑크내지 않기 위해 들어간 모임에서 공동체의 안정감을 고료대신 받은 기분이다.

두세달에 걸쳐 멤버들의 글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그들의 사랑과 고민 그리고 유머를 들여다 볼수 있었다. 여덟 명 남짓한 멤버들의 시선과 마음이 서로 닮아 있는 듯 했다.

글쓰기 멤버들이 모이는 날에 폭염이었던 적이 있다. 오는 길이 너무 뜨거워서 다들 서점에 들어오자마자 아이스 커피를 주문하고, 사장님은 서둘러 얼음물을 먼저 내어주셨던 작은 독립 서점의 낯선 응급상황. 다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을 때쯤, 폭염을 뚫고 멤버가 아닌 일반 단골손님이 찾아와서 책방지기님에게 수작업으로 만든 책갈피를 주고 가셨다. 에어컨이 보호하고 있는 서점으로 한 발짝도 안 들어오시고 밖에서 깜짝선물만 주고 가시는 것을 보고 ’와 이 더위에 책갈피를 주시려고 오시다니’ 하며 감탄했던 적이 있다.

그 후 약속한 듯이 한 명씩 가지고 온 선물을 꺼내더니 나눔이 시작되었다. 빵을 사 오신 분도 있고, 뜨개질로 손수 만든 다양한 색상의 작은 파우치를 가져오신 분도 있고, 화려한 패턴의 표지를 가진 핸드메이드 수첩도 책상 위로 올라왔다. 마침 나도 내 그림이 그려진 엽서를 가져와서 같이 꺼내놓았다.

하하호호 웃으며 예쁜 것을 나눠 가지던 중에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 비슷해’라는 멤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한 일이다. 각자의 삶에서는 더 단단한 성격으로 삶을 해결해 나가고 있겠지만, 서점 공간을 공유할 때는 모두의 마음이 닮아있었다.


고향에서는 편의점 사장님도 약국 사장님도 우리 가족을 알지만, 인천은 나에 대한 정보가 없는 곳이라 회사 같기도 했다. 낯설지만 매일 가는 곳이니 익숙한 곳, 별일 없이 지내다가 어떤 충돌이 생기면 내 편은 없는 곳. 내가 글쓰기 모임 사람들의 다정함을 보듯이 그들도 나를 비슷하게 봐주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괜찮아지는 기분이다. 폰 게임보다 글쓰기를 앞세우려는 개인적인 목표로 열어낸 서점 문에서 밖으로 나오니 길에서 만나면 반가운 사람으로 봐주는 사람들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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