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다 보면 찾아오는 폭풍우
이십춘기라는 말이 있다.
혹자는 살만하니 나오는 배부른 말이라 할지라도 늘 내가 하는 말은 있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삶이 가장 아프고 고된 법이라고.
해리 할로의 실험 중 애착 실험을 아는가? 차가운 철사로 만든 엄마 인형과 부드러운 천으로 덮힌 엄마 인형을 만들어 세워두곤 철사 엄마 쪽에만 우유를 뒀다. 이때 새끼 원숭이의 선택은, 우유를 주는 철사 엄마에겐 잠깐 허기짐을 달래는 정도로만 머물렀을 뿐 천 엄마에게 훨씬 많은 시간을 가졌다.
그렇다. 제 아무리 내향적인 사람이라도, 웬만한 사람 아니고서는 어느 정도의 사회적인 관계가 필요하다. 단순히 스킨십, 살을 맞댄다는 의미보다 뭐랄까, 집에서 잘 지내기 위해 바깥 활동을 한달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나누고 항간에 떠도는 말들을 나눠보며 살아가는 것 말이다. 집에서 그리 바쁘게 지내던 나도 한동안은 외롭고 적적했던 시기가 있었다. 혼자서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던 나였기에 더욱 몸서리쳤던 것 같다. 이유를 몰라 헤매어 집에서 더욱 바삐 살아도 봤으나 해답은 아니었다. 그렇게 온갖 것들을 직성이 풀릴 때까지 시도해 보니 단 한 가지, 나가서 사람을 만나보는 그 단 한 가지를 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갈피가 잡힌 것이다.
문제는 내가 굉장히 내향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특히 낯을 심하게 가렸다. 차라리 일대일인 경우나 여럿 중 아는 이가 한두 명 있으면 훨씬 나았지만 아는 이 하나 없으면 쉬운 말 한마디도 채 하지 않거나 뚝딱였다. 나도 이런 내가 참 어렵고 못마땅했지만 어쩌겠는가?(그래도 내겐 좀 다행인 점은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하면 그 벽을 조금씩 허무는 것이 아니라 와르르 무너뜨려서 어쩌면 상대가 다소 놀랄 수도 있을 만큼 단숨에 다가갔다. 당황했을 상대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심란하고 더욱 힘들기만 했다. 하지만 연애도 삼프터라는데 세 번은 시도해 보자 생각했고 또 적응의 동물인지라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더욱 쉬웠다. 하고재비라고 말했던 것처럼 워낙 '해보고 싶은 것' 자체는 많았던 터라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서 내게 맞는 것들을 찾아가는 중이다. 뭐야, 집순이라더니 나돌아 다닌다고? 싶겠지만 저래 보여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고 모든 활동은 혼자서도 잘 지내기 위함이다.
그렇게 때때로 찾아오는 고비를 넘기다 보면 문득 길을 잃은 것만 같고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기도 한다. 일평생 옳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 때도 있고 노력한 만큼 성과가 따라주지 않았다는 괜한 서운함도 들며 챗바퀴처럼 굴러가는 하루하루 똑같은 날들로 인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나 의문이 든다. 그간 만들어온 정체성이나 가치관이 흔들리고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그랬고 여전히 그러는 중이다(학교라는 작은 사회를 떠나보낸 뒤부터 그런 것 같다.). 정답이랄 게 없는 것이 인생이다- 싶다가도 정답을 살아내는 것 같은 주위를 보다 보면 괜히 의기소침해지고 생각이 많아진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더더욱 열심히 사는 이만 보이는 요즘이고, 나름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더더욱 행복한 이만 보이는 세상이다. 그렇다 보니 이십춘기가 스며드는 것이다.
극복하는 방법은? 나도 잘 모른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말을 참 싫어하지만 또 정작 기댈 곳은 시간 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폭풍우가 들이닥쳤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안전한 곳에서 가만히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는 다 지나가겠지'라는 말이 참 잔인한 말이라고 생각해서 남에게 잘 내뱉지는 않는 편인데, 이런 일엔 그만한 말도 없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결말이 이래서 기운 빠졌는가? 혹은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군 하며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는가?
그냥 잘 지내보자고, 이 말을 전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