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상의 나래

공원에서

by 초록글씨

상에 존재하지 않는 귀신 이야기를 조심조심 들려주는 아이와 은밀한 입을 바라보는 아이는 하늘이 어스름해져도 배가 고프지 않다. 귀신 이야기는 반질했던 잎들이 메말라 목이 마를 때 해야 제맛이거든. 눈이 부셔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깐. 한참을 오르내리던 눈동자에 힘이 풀리고 허기가 진다. 집으로 가야지.


써 배부른 아저씨는 의자에 앉자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고 한쪽 다리를 올리고 반바지 밑으로 무심하게 나온 맨다리를 쓸고 아이들을 바라봐.


철 지난 음반을 돌려 본다.


철수는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오십 미터 거리 도란도란한 이야기를 지우다가 꿀떡이 떠올랐다. 음반을 돌리다가 생뚱맞게 떡이라니- 떡을 좋아하는 아저씨는 출근길이나 퇴근길에 역 앞 '남매떡집'을 자주 방문한다. 매끈하게 터지는 꿀은 부드러운 맥주 거품처럼 톡 하고 넘어가는데 콩가루 묻힌 인절미에 사례가 들려 한동안 먹지 않았다. 철수 낯빛이 어두워지자 사례에 걸린 것 마냥 퍽퍽해졌다.


은 털은 금빛을 위한 것. 새까만 고양이는 금빛 눈동자로 아저씨를 쳐다보다가 손이 닿자 저만치 물러섰다. 철수는 잘 살고 있을 거야 버릇처럼 머리를 쓸어 넘겼다.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이들에게서 자유로워졌다. 손에 잡히지 않는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옆에 미지의 여자가 앉아 있으면, (좋겠다.) 두런두런 대화를 하고 싶어졌다. 읊조리고 싶은 시가 떠오르는 저녁 9시였다.


메말라 있던 나뭇잎도 점점 구분이 되지 않았다.


람이라면 사진을 찍고 싶었다. 고양이는 싱거운 이야기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심심하지 않았다. 귀신이야기를 듣던 상냥한 귀신도 볼 수 있었다. 금빛 눈동자는 하는 수 없이 네 명의 아이들과 귀신을 찍었다.


으로 돌아온 아저씨는 맥주 한 캔을 들고 영화를 보다가 잠들기로 했다. 챙겨보던 몇몇 영화가 있었는데, 오늘은 '달콤한 인생'을 보고 싶었다. 마지막 대사는 꼭 애잔한 자신의 인생 같아서.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알람이 울렸다. 아무 감정 없이 눈이 떠졌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감정을 돌보는 건 시간을 역행하는 일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단골 떡집에서 따끈한 가래떡을 사는 사람들을 보고 지나쳤다. 새로운 직원이 오기로 했지- 처음부터 알려주고 맞춰야 하고 머리가 지끈해지는 출근길 오늘 날짜는 성실하게 찍혔다. 카드를 찍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어떤 사람일까 궁금한 낯빛을 감출 수 없었다. 설레기도 했다.


제 귀신 이야기를 하던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공기가 달라졌다. 새까만 털이 윤기 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금빛 눈동자가 나른하게 나무 주위를 살폈다. 메말라 있던 나뭇잎이 반질반질했다. 정오가 지나자 심심한 어르신이 의자에 앉았다. 나른한 낮볕이 어스름해지길 기다렸다. 너와 내가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