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연히 사라진 유령

by 초록글씨

오토바이를 탄 아저씨가 멈춰 섰다. 생물학적 나이를 알 수 없지만, 50대 정도로 보였다. 아저씨는 검은색 옷에 검은색 헬멧을 쓰고 있었다.


헬멧 쉴드를 올리고,


"저기요, 아니.."

"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잠바 가슴팍 지퍼를 열며 입모양을 씨익 올렸다.


무엇을 꺼내는 걸까?

시커먼 옷은 검은 속내 같았다.


모르는 아저씨가 나를 보며 무언가를 준다는 게, 마치 나를 아는 사람처럼, 말을 걸고 웃는다?

움찔했다.


그날은 계약을 하러 다른 지역으로 간 날이라 옆에 서 있던 계약자도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내가 애들을 좋아해서 그래요"


아저씨는 같이 있던 첫째와 둘째를 보며, 주고 싶다고 천 원 뭉탱이를 주었다. 괜찮다고 말하는 나에게 '애들을 좋아해서 그래요' 똑같은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십 분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은 이상했고, 멍했다.


아이들은 좋아했다. 두 번 접혀 있던 천 원을 펴보니 다섯 장이었다. 첫째는 두장을 동생에게 주었다. 갑자기 나타나 생판 모르는 남에게 말을 걸고 돈을 준다는 게 의아해서 뭘까? 했다.


만약 (큰돈을 줄리 없겠지만) 큰돈을 주었다면 이것은 검은돈인가 생각되어 받지 않았을 거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아니면 기분 좋은 일이 있던 찰나 거스름돈을 선심 쓰듯 아이들에게 주신건가? 아니면 오다 주운 돈이었나? 대수롭지 않게 멀리 간 생각이라 심플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따지고 들어가는 것도 이제는 피곤한 일이라 아저씨의 말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상황이 고마워해야 할 일인가?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것이 헷갈리긴 하지만.


(어떠한 마음에서 주었던 선물은 받는 사람이 받기 전까지 유효하며, 그 마음은 내 손에서 떠나 받는 사람의 것이므로.)


집으로 가는 길, 키즈카페에서 놀던 아이들은 그 돈으로 뽑기를 했다. 아이를 좋아한다던 아저씨의 선물은 말랑이 판다와 레고였다.

"우와 좋겠다"

아이들은 선물을 들고 방방 뛰었다.


무해한 아이들을 보며 무해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버스 정류장에 나타나 반지르르 윤기 나는 머릿결을 가진 그녀는 나와 함께 내렸는지, 정류장에 서 있었는지, 다른 방향에서 걸어오고 있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녀와 나는 거칠게 쏟아내는 빗소리를 같이 듣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우산이 없었다. 20대였던 나와 같은 나이로 보이던 그녀가 우산을 씌워 주었다. 집이 어디냐고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엥? 왜? 집이 멀면 어쩌려고? 우리 집 알려주는 것도 찝찝하다 등등등을 생각했다.) 찝찝한 생각을 하며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가는 길이 그쪽 방향이면 같은 방향이니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일단은, 버스 정류장에서 집이 가까우니 별일이 생기지 않겠지란 막연함을 믿기로 했다.)


"저도 예전에 비 오던 날 누가 씌워졌던 기억이 있어서 씌워 드리고 싶었어요"


가녀린 뉘앙스와 막연한 믿음이 안심해도 된다고 신호를 보냈다. 집 앞까지 데려다준 그녀는 홀연히 떠난 유령처럼 사라진 기분이었다.


비는 밤새 내렸다. 그녀가 잘 들어갔을까 궁금했지만, 알 길은 없었다.


단비였고,

선의였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