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가 되기까지

by 초록글씨

나는 소녀였다. 보호받고 있지만, 통제와 억압된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때를 소녀라고 부르고 싶다. 이제는 불릴 수 없으니.

숨이 막혔지만 지나간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으니깐, 그립다고 되돌려 돌아가고 싶냐고 물으면 '아니요'라고 말할 테지만. 잊힌 음악은 갑작스럽게 나타나고, 명징한 마음도 건드리고 싶어 질 테니깐. 또다시 보고 싶을 테다.

건드리면 톡 깨지는 파편을 담아 투명함이라 부르던 소녀를 여릿하게 떠올려야 하므로 이럴 때라도 소녀라고 부르고 싶다.


아빠가 있어도 조용했던 집은, 아빠도 없었고 엄마도 없었다. 무서운 영화가 유행이었던 그 시절 일본영화 '링'을 보기로 했다. 성인이 될 준비가 되었던 우리들이 안방에 앉아있으니, 아빠가 있어도 엄마가 있어도 언니가 함께 붙어 있어도 헐렁했던 집이 꽉 찼다. 가벼운 숨은 쉬고 있었다. 무서운 영화를 무서워하던 친구는 이어폰을 꽂고 내방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기로 했다. 그 친구의 선택은 현명했다. 나중에 영화는 웃긴 소재로 패러디되었지만, 결코 웃긴 영화가 아니었다. 우물 속에서 천천히 기어 나오던 귀신이 얼굴을 보여주긴 할 건지 숨이 가라앉아 쉬기조차 불편한데 끝날 기미 없이 다가왔다. 가려진 머리카락과 사운드가 신경을 건드렸다. 잠시 손으로 눈을 가렸다 떼기를 반복했지만, 궁금해도 미치지 말았어야 했다. 티브이 밖으로 튀어나오는데 거기서부터 못 보겠더라. 놀라 소리치던 친구들은 멈추지 않았다.



밤마다 정지했던 장면이 재생되었다. 한 번은 의자 밑에서 사다코가 기어 나오는 것 같아 책상 안으로 깊숙이 밀어 넣고, 한 번은 장롱 위에서 기어 내려오는 것 같아 이불을 뒤집어썼다. 약 한 달간 그 잔상은 떠나지 않았고, 작은 방 야광별이 붙어있던 천장은 더 이상 효력이 없었다. 그 이후로 무서운 영화라도 사다코가 나올 것 같은 영화를 멀리했다.

밤은 아빠 같았다.

무서웠고 싫었던.


열아홉 졸업을 하고 스무 살이 되기 전, 이제 성인이라고 해방감에 들떠있던 나는 친구와 둘이 목적도 없이 이유도 없이 춘천을 가기로 했다. 집에서 가깝기도 했고 대화를 나누다가 어디든 떠나고 싶다는 이야기가 발단이 되었는데, 끝에 무계획 춘천이 만만했기 때문에 저녁에 떠나기로 했다. 아침에 집으로 오는 낭만을 즐겨보기로 했다. 계획도 없이 밤에 도착한 춘천은 명동이라 불리는 서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닭갈비를 먹는 것과 같았다. 먹고 놀다가 이제는 대화하는 것조차 피곤했고 추웠다. 차라리 날 밝은 날 동해 바다나 다녀올걸 후회했다. 낭만이고 뭐고 잠이 쏟아져 빨리 작은 방 나의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싶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대화는 잠들었고, 친구와 나는 엉뚱한 짓을 한 것처럼 웃었다.


안녕,

집에 가자.


집으로 걸어가는 길 슬슬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엄마가 아빠에게 무어라 말을 했을까 잘 모르겠지만, 늘 그런 식이라 들키지 않고 조용히 내방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대면하더라도 당당하게 눈을 피해 문을 닫으면 될 일이었다. 따가운 눈은 피할 수 없고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서로가 방법을 몰랐던 건지, 언제부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빠가 불편했다. 무섭다면서 엄마를 방패막이 삼아 하고 싶은 것은 다 했던 것 같다, 하면서도 절대 이것만은 엄마도 방패막이가 돼주지 못하겠구나 하는 것은 하지 못했다. 그 일이 한 번쯤은 내 인생에 도움이 되든, 실패든. 지나고 나서야 부딪혀볼걸 설득을 해볼걸 생각되는 일은 벌이지 못했다. 강력하게 내가 넘지 못하는 벽은 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빠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무서웠고 싫었고 내가 맘대로 해 볼 수 없는 것은 아빠 같았다. 그랬던 아빠이기도 했으니깐 단단함은 절대 깰 수도 이길 수도 없는 것과 같았다. 컴컴해서 어디까지 인지 감도 오지 않는 밤에, 울어도 보고 안겨도 보고 별 짓을 다 해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내가 이 모양인가 싶을 때가 있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있지만, 다시 돌아가 예전처럼 아빠가 있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여전히 나는 나이지 않을까.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서 이해받지 못한 채로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보며 더욱 또렷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 '센티멘탈 밸류'를 보며 아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묻고 싶었다. 아빠는 집이라는 공간이 어땠을까, 나는 아빠와 있으면 답답함이 컸던 것 같은데. 혹시, 아빠도 답답함이 컸다고 이야기한다면 난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다음이 알고 싶었다. 그래봤자, 다시 돌아올 일은 없겠지. 단지, 그건 왜 그런 거였냐고 물어보고 싶고, 묻고 싶은 것이 많은데, 그다음이 알고 싶어서일까. 대화를 나누고 나는 그러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도 그다음이 알고 싶은 걸까. 알면서도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다.


지나간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으니깐, 그립다고 되돌려 돌아가고 싶냐고 물으면 '아니요'라고 말할 테지만. 아빠가 있던 그 시절을 '아니요'라고 말한다면 그건 위로받고 이해받지 못한 그때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그럴 수 있을까란 답을 하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잠시나마 아빠였던 구스타브를 따라가 보았다.

이해해 보았다. 눈물 흘리고 나니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콧물까지 흘려 머리가 띵,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밖을 나오니 하늘은 어두웠다. 당분간 구스타브의 눈빛이 아른 거릴 듯하다. 나는 낮보다 고요한 밤이 건네는 위로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처음부터, 원래는 밤을 좋아하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알면서도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지만.


지나간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으니깐, 그립다고 되돌려 돌아가고 싶냐고 물으면 네.라고 마침표를 찍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안녕,

후련하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