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밭고랑 斷想 17

by kacy


일상(日常)


사람에 따라 아침형 인간이 있고 저녁형 인간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굳이 따진다면 저녁형 인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직장 생활 오래 하면서 더욱 그렇게 굳어져 간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시험 때나 고3 때 새벽 한 시 두 시까지 공부해본 적이 없었지만. (우리집 분위기가 뭐 공부를 하건 말건 그냥 내버려 두는 분위기라 더 그랬을까.) 그러니까 나는 잠이 좀 많았을 뿐 그렇게 심한 저녁형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평생 힘든 일이었다. 학교나 직장이나 항상 아침에는 허겁지겁 급하게 준비하고 겨우 시간에 맞추어 등교하거나 출근하곤 했다.


직장이 공장 생산 현장이라 당시는 항상 오후 7시 넘어 끝나는 것이 정해져 있어 집에 오면 8시 반, 씻고 저녁 먹고 나면 9시 반이다. 이것저것 하다 보면 저녁 12시가 다 된다. 그래서 자는 시간이 12시에서 12시 반이고 아침 일어나는 시간은 6시 반 정도가 일반적인 나의 생활 리듬이었다.


시골에서는 3월부터 서서히 일할 준비를 해야 한다. 겨우내 방치해 둔, 작년에 거두고 내버려 둔 작물의 줄기나 뿌리를 걷어 퇴비장에 버려야 하고 멀칭 하기 위해 밭에 씌운 검정 비닐도 거두어 모아야 하고, 이런저런 일들로 바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다 4월 말 5월 초부터는 본격적으로 작물들 파종도 하고 모종도 심어야 하니, 미리미리 밭에 퇴비도 주고 한 번씩 삽으로 땅을 뒤집어 주어야 하고 정말 바쁘다.

그런데 5월부터는 낮에 일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해가 뜨거워져서 너무 덥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침 일찍 일하거나 해가 들어가려고 하는 늦은 시간에나 밭에 나가 일하게 된다.

자 그러니 나 같은 저녁형 인간에게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일찍 일어나야 하니 말이다. 아침에 6시쯤 일어나 밭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일어나 밭에 내려가면 참 상쾌하고, 일하고 올라와 아침을 먹으면 정말 좋다. 그래서 이곳에서 대대로 농사짓고 있는 분 한테 요새 6시에 일어나 일한다고 자못 자랑스럽게 얘기했더니 이 양반 하는 말이 ‘여기 농사짓는 분들은 새벽 4시에 밭에 나오다’는 말에 얼마나 머쓱했던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늦게 자고 아침잠이 많았던 내가 조금씩 일찍 일어나기 시작하다가 점점 일찍 깨게 되어 새벽 4시면 잠이 깨는 참 상상도 못 한 변화가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되니 자연히 자는 시간도 점점 빨라져서 이제는 저녁 9시 반이면 졸려서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이렇게 계속 지내다 보니 지금은 저녁 9시 반이 나의 취침 시간이 되었다. 내 친구 중에 한 분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체조하고 조깅을 한 시간하고 마무리 운동하고 그리고 식사하고 출근하는 분이 있다. 이분이 저녁 10시면 취침한다고 해서 참 어떻게 10시에 잠을 잘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 몇 년 전인데 말이다. 그때 나는 12시 전에 자면 뭔가 좀 손해 보는 것 같은 생각을 할 때였으니까.


요새는 내가 좋아하는 ‘가요무대’ 본 것이 언제였던가 싶다. 이 프로는 밤 10시에 시작하니 볼 수가 없다. 또 내가 좋아하던 ‘7080’(70, 80년대 유행하던 기타 치고 노래하는 포크송 프로.), 이건 밤 11시 반에 시작하면 새벽 12시 반에 끝나는 건데 당연 못 본다. 그러다 10년도 더 지난 후, 이 프로그램이 없어져 버렸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수십 년 습관 든 것도 필요에 따라 바뀌게 된다는 것, 사람의 적응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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