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고랑에 앉아서. 4
진달래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우리에게 꽃을 보여 주는 나무는 산수유다. 언제 피었는지도 모르게 가만히 노오란 꽃망울을 터뜨리면, 아 이제 봄이 시작이구나 한다. 연이어 개나리, 영산홍, 진달래, 벚꽃, 철쭉이 차례로 핀다. 사실 산수유보다 매화가 먼저 핀다고 하지만 도시 주변에서는 보기 힘들다. 요샌 어디를 가나 산수유가 많이 심어져 있어 이제는 대표적 봄의 전령(傳令)이 된 듯하다. 이렇게 봄꽃이 피는 순서를 춘서(春序)라고 한단다. 그러나 이런 질서도 지구 온난화로 흩트려져서 한꺼번에 피기도 하여 그런 순서 구분하기기 점점 힘들어진다고 하니 이 또한 참 섭섭한 일이다.
이런 우리 주변에 많이 피는 봄꽃 나무 중에서 유독 진달래는 보기가 쉽지 않다. 동내 산에 올라가거나 차를 타고 지나가다 산을 끼고 달릴 때 가끔씩 산속에 드문드문 핀 것을 보는 정도이지, 개나리, 영산홍, 철쭉처럼 군락을 이루어 피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러니 좀 귀한 꽃이라 할까.
그래서 그런지 이곳 경기도 여주에 와서 아내가 제일 먼저 앞마당에 심자고 한 것이 진달래다. 나무 파는 곳에서 나무젓가락 같은 어린 묘목을 몇 주 사다가 심어 놓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얼마 지나 다 말라죽고, 그리고는 아주 흔적도 없어져 버렸다. 사실 나는 먼저 텃밭을 만드는 일이 우선이라 거기에 매달려 있는데, 그다음 해 또 어디서 진달래 묘목을 사 와서는 다시 심자고 하니 참 짜증도 났지만 어찌하겠는가. 다시 심을 수밖에.
그런데 아무리 지나도 묘목에 싹이 나지 않는다. 줄기를 잘라보니 웬걸 줄기가 다 말라버리고 딱딱하게 되어 또 죽어 버린 것이다. 아내는 내가 도무지 이런 나무나 꽃에는 관심이 없어 그런 것이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나를 핍박해 대니 참 너무나 난감하지만 사실이 그러하니 뭐 반박도 못한다. 그러고 나서부터는 산 옆을 지나가다 진달래 핀 것만 보면 또다시 진달래 타령을 쏟아 내니 참 죽을 맛이다. 차를 몰고 가다 진달래가 보이면 차를 세우고 남의 집 산에서 하나 뽑아 가자고 하기도 한다. 뭐 이 나이에 특수절도죄를 지어 망신당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한참을 지나 동내분들과 얘기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것이 진달래는 일반적인 나무와 달리 산성토양에서 자란다는 것이다. 진달래 묘목 파는 사람도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도 없고, 나 또한 토양의 그런 상태까지는 생각도 못하는 초보라 어찌 알았겠는가. 그때서야 아차하고 생각해 보니 그럼 그동안 심어서 살지 못한 이유가 이것 때문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다음 해 봄이 와 옆집 산에 핀 진달래 한 주를 겨우 얻어 옮겨 심어 놓고 정말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키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몇 개 꽃이 달려있는 것이라 잘 키워 내년에는 꽃이 만발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아내는 이번에는 진달래 꽃 색깔이 너무 흐려 마음에 안 든다고 자꾸 뭐라고 중얼중얼한다. 참 뭐 끝이 없다.
일반적으로 나무나 작물들은 산성토양을 싫어한다. 밭은 해가 갈수록 자꾸 산성화가 되므로 이을 막기 위해 2, 3년마다 한 번씩 알칼리 성분인 석회를 뿌려주기도 한다. 석회는 꽤 강한 알칼리 성으로 가장 싸게 구할 수 있고 사용하기에 편하기 때문에 이것을 쓴다. 시금치 경우는 특히 산성토양을 싫어한단다. 반대로 산성토양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무 중에 대표적인 것이 소나무다. 그리고 바로 진달래다. 요새 특히 몸에 좋은 것으로, 얼마 전 타임지에서 선정한 ‘10가지 몸에 좋은 음식’ 중에 들어갔다고 한참 뜨고 있는 것 중에 블루베리가 있다. 이 블루베리가 아주 유명한 산성토양 식물이다. 그리고 이 블루베리가 나무 분류에 따르면 바로 진달래과에 속한다니 이제야 좀 이해가 간다. 산에 올라 가보면 소나무 무리가 자라는 양지 바른 쪽에 진달래가 자라는 것이 이제 이해가 된다.
그럼 인위적으로 산성토양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뭐 우리가 아는 황산, 염산을 사다가 부울 수는 없을 것이고(왜냐하면 이런 약품들은 워낙 강한 산성이라 잘못하면 사람도 다칠 수 있고, 아무리 희석해 뿌린다 해도 토양 속 미생물들이 견디지 못할 것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제일 쉬운 방법 중에 소나무 낙엽, 그러니까 갈엽이 쌓여 부엽토가 된 것을 가져다 흙과 섞어주는 것이 제일 좋다. 전문적으로는 ‘피트모스’라는 산성 토양 전용 부엽토를 사다가 쓰면 되지만, 이는 수입한 것이라 상당히 비싸다. 우리가 주변에 자라는 소나무를 잘 관찰해 보면 소나무 밑에는 갈엽이 수북이 싸여 있으면 거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대게 잎이 무성한 나무 밑은 그늘이 지기 때문에 다른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할뿐더러 풀도 잘 자라지 않지만, 유독 소나무 밑은 아예 풀 한 포기 보기가 어려운 것은 아마도 그 밑이 산성토양이라 그런 것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산에서 갈입 썩은 것을 가져다 옮겨온 진달래나무에 주고 또 커피 추출하고 나온 찌꺼기도 산성이라고 해서 그것도 위에 뿌려주고, 그동안 닦달 당한 것을 좀 만회해 보려고 온갖 정성을 쏟아부었다. 그랬더니 새로 잎도 좀 나오고 내년에 필 꽃 몽오리도 올라오고 한다.
그리고 오며 가며 한 번씩 보게 되었는데, 어느 날 자세히 보니 아직 가을이 오지도 않았는데 잎이 시들기 시작하고 상태가 이상해지는 것이다. 아예 세 개의 가지 중에 두 개는 거의 죽은 것같이 점점 잎이 다 떨어지고 줄기도 말라간다. 아 이게 어찌 된 것이란 말인가. 그렇게 정성을 들인 것이련만.
이듬해 봄이 다시 왔지만 겨우 살아남은 듯한 가지에 달려있던 몇 개의 꽃순에서도 꽃이 피질 못하고 그냥 그대로 있다가 떨어져 버리고 잎도 하나도 남지 않고 없어져 버렸다. 아내도 이제는 포기한 듯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보기만 하고 더 이상 말이 없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여름이 오고, 어느 날 우연히 아내의 호출에 쫓아가보니, 아 그 줄기에서 새 잎이 조그맣게 여럿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진달래는 산에 사는 것을 옮겨 심는 경우, 한 두 해 꽃이 좀 피다가 거의 죽어 버린다고 한다. 그만큼 토양에 예민한 나무라는 것이다. 아마 이런 이유로 도시 조경하는데 진달래는 안 심고 온통 왜철죽을 심는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우리 종이 아닌 일본 종 철쭉을 그리 심어대니 이것도 좀 생각해야 할 일이다.
아무튼 다행히 새롭게 잎이 나는 것을 보면, 이제 이 녀석도 겨우 겨우 새 자리에 적응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가을이 가까우면서 몇 개 꽃순이 달린 것을 보면서 내년에 몇 개라도 꽃이 필 것을 기대하니 그동안 당한 구박과 수고가 다 보상받으리라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진달래처럼 봄에 일찍 피는 나무들의 꽃순은 그전 해 여름이 되면 벌써 다 올라와 있다가 겨울을 지나고 이듬해 봄이 되면 꽃을 피운다.)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가기거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