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고랑에 앉아서 5
들고양이
도시에 살다가 한적한 시골에 내려오면 많은 야생동물들을 접하게 된다.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것은 온갖 새들일 것이다. 새벽부터 날아와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시골에 사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낮에는 많은 새들, 까치 까마귀들이야 도회지 아파트 단지에서도 자주 보게 되지만, 딱새, 박새, 산비둘기, 직박구리 등등 정말 많은 새들이 날아와서 집 앞 나무에 앉아서 지저귀는 것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 중에 하나다. 그리고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가까이서 들려오는 딱따구리의 나무 두드리는 소리, 뻐꾸기의 그 무심한 듯한 베이스 조의 노랫소리는 참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끔 고라니가 새끼들을 데리고 지나가는 모습, 다람쥐의 귀여운 모습도 참 좋다. 물론 너무 싫은 뱀도 가끔 만나지만 말이다.
이런 동물들은 모두 멀리서만 보거나 만나는 동물들이지만 이제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어느 정도 시골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만나게 되는 것, 바로 들고양이들이다. 물론 시골길을 걸어 다니다가 가끔씩 보는 경우들이 있지만 내가 사는 집으로 들고양이들이 나타나서 우리 집 주변을 맴돌기 시작하는 일이다.
시골로 이사하고 얼마쯤부터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미인 듯한 노란색 바탕에 흰 무늬와 검은 무늬가 섞인 고양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렇게 삼색무늬를 가진 고양이는 다 암컷이라고 한다.) 먹다가 남은 생선이나 고기 등을 주면 멀찍이 앉아 있다가 사람이 멀리 가면 그때서야 살금살금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먹이를 먹고는 금방 사라져 버리기 일쑤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이제 찾아오는 횟수가 많아지고 거의 매일 오게 되었다. 물론 올 때마다 음식을 주어서 이 녀석도 자기 생활 루틴에 우리 집 방문이 들어갔을 것이다.
아, 그런데 얼마 있다가 놀라운 일이 생긴 것이다. 이 녀석이 이제 겨우 어른 손 만한 새끼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그것도 세 마리나 말이다. 한 마리는 하얀색 털만 있는 새끼고, 또 한 마리는 흰색 바탕에 검은 점이 있는 녀석, 나머지 한 마리는 검은색 회색의 호랑이 무늬가 있는 멋진 놈이다. 우리 집도 따라서 비상이 걸렸다. 얘들 모두가 먹을 밥을 항상 준비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기고 이제는 식구가 늘어났으니 양도 많아야 될 것 같아서 정식으로 고양이 밥을 주문하고 밥그릇도 더 준비하는 등 조금 부산을 떨기도 하고. 그리고는 새끼들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얀 녀석은 '밍키', 흰색 검은색 녀석은 '나비' 그리고 검은색 놈은 '네로' 이렇게.
아무튼 우리 집은 무슨 경사라도 난 듯 웃음꽃이 피고, 몰래 숨어서 고양이 가족을 살펴보느라 부산스럽기까지 하였다. 새끼들은 아직 어미젖을 열심히 먹어대고, 우리가 준 고양이 밥도 조금씩 먹기도 하고 그리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어찌나 장난을 치는지, 그리고 어미 꼬리를 물고 흔들고 뒹굴고 화분 위로 올라가서 놀다가 화분이 넘어져서 흙이 다 쏟아지고 난리도 아니다.
밍키가 셋 중에서 가장 장난이 심해 다른 녀석들을 가만 두지 않는다. 나비 꼬리를 물고 잡아당기고 그러다 서로 엉켜서 뒹굴기도 하고, 그런데 가만히 보면 네로는 아주 젊잔해서 여간해서는 싸우지 않고 명상만 하고 있다. 나비는 항상 어미 곁에 붙어서 졸졸 따라다니고, 서로 성격이 어찌 이렇게도 다른지 신기하기만 하다.
이렇게 한참을 놀다가 다 같이 어디론가로 가버리면 우리 집은 갑자기 적막강산이 된듯하다. 이렇게 며칠을 연달아서 와서 먹고 놀다가 가는데 어떤 날 보니 새끼가 한 마리 더 늘어서 네 마리가 왔다. 그동안 이 한 놈은 어디에 따로 떨어져 있었는지 참 모를 일이다. 그러다 어떤 날은 한 마리나 두 마리만 어미와 같이 오는 경우도 있다. 점점 새끼들이 커감에 따라 어미만 주로 오다가는 어느 날부터 새끼들은 완전히 발걸음을 끝는다.
도대체 이 새끼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분명히 어디 다른 곳에 각자의 생활 근거를 확보했으리라 추측해 볼 뿐이다. 그래도 어미만 혼자라도 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들고양이를 보면 강아지와 집고양이와는 달리 절대로 사람가까이는 접근하지 않는다. 밥을 들고나가도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경계를 게을리하는 법이 없다. 좀 가까이 가려고 하면 이빨을 드러내면서 으르렁 거린다. 이런 놈에게 내가 밥을 계속 주어야 하나 하고 좀 섭섭한 마음이 들지만 이들의 야성본능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일 년 가까이 밥을 주고 가끔 말을 걸기도 하지만 그 거리는 좀 채로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도 그렇게 한참을 지내면 그 접근 가능 거리가 조금 좁혀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또 며칠씩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걱정하기도 하고, 이 녀석들은 사람에게 좀처럼 정을 주지 않는데도 말이다.
시골에 살면 가족들이 며칠씩 어디로 가서 없으면 별로 만나는 사람도 없고 하니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요새는 전화 통화보다는 문자나 카톡을 주로 쓰니 더욱 말할 기회가 없다. 그래서 이런 날은 고양이가 오면 그래도 위안이 되고 고양이에게 괜히 말도 붙이곤 한다. 밥 많이 먹어라, 새끼들은 어디 가고 너 혼자 왔니, 밥만 먹고 바로 내빼지 말고 좀 있다가 가거라, 등등 알아듣거나 말거나 혼자 내 입을 열어본다.
밥을 먹고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먹었으니 집 앞 잔디밭에 꼭 똥을 누고 간다. 밥 먹여주고 거기다 똥까지 치워야 하니 여간 짜증 나는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 녀석들이 우리 집에 와서 있는 시간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을 생각하면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음 해에 어미가 다시 배가 산만큼 불어나난 것을 보면 얼마나 설레는지 모른다. 새롭게 태어날 그 귀여운 새끼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8월 雨中에
자작시
입추 지난 지도 며칠인데
오늘도 장맛비 끝을 모르고,
온갖 잡초만 신이 나서
내 장화를 가리는데
쏟아지는 흙탕물에
호밋자루 씻어 두고
남은 막걸리 한잔 따라
처마 밑 웅크린 들고양이 바라보다.
멀리서 들리는 천둥소리
어딘가 또 벼락은 떨어졌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