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고랑에 앉아서 7
명상
명상(冥想), 사전적 의미는' 눈을 감고 차분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함.'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여기서 한자 冥은 어둡다는 뜻이다. 왜 어두울 명을 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어두운 곳에서 눈을 감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명상'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은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이다. 황제가 쓴 명상록이라니 현시대에 사는 사람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 시대의 최고 권력자가 어두운데 고요히 앉아서 명상을 한다고?
그래도 요새는 절에서 하는 '템플 스테이'나 명상센터 등에서 이런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현대인에게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것들 중에서는 여러 종류의 야생동물이나 곤충 벌레들을 만나는 일이다.
파리와 모기는 어쩔 수 없이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이지만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이 두 종류의 놈들 만으로도 시골생활을 못하겠다고 도망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니 참 난감한 녀석들이다.
하지만, 나비나 잠자리가 꽃 위에 앉아서 가만히 숨을 고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꿀벌들이 새벽 호박꽃 속에 들어가서 열심히 꿀을 따는 모습. 매화, 복사꽃이 만개하면 수 백수 천 마리의 벌들이 날아와 법석이는 모습, 고라니가 새끼를 데리고 사슴처럼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모습. 때로는 꿩이 바로 옆 풀 속에서 푸드덕 날아오라 깜짝 놀라기도 하고. 딱따구리의 나무 두드리는 소리, 뻐꾸기 무심하게 우는 소리. 이렇게 온갖 생명 있는 것들의 사는 모습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즐거움과 위로와 경이로움을 주는지 모른다.
이런 여러 모습들을 보면 이 녀석들도 다 나름 각각의 특별한 생활 패턴이 있다. 이런 움직이는 동물들을 특별히 관찰하지 않아도 여러 해 가까이 함께 지내다 보면 이 녀석들도 우리 사람들처럼 명상을 하는 듯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말한 나비나 잠자리가 꽃이나 풀 위에 앉아서 숨을 고르면서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흡사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이런 모습은 여치나 메뚜기도 마찬가지다. 배춧잎을 갉아먹어 온통 구멍을 내놓고는 배춧잎에 앉아서 한없이 가만히 앉아있다.
좀 큰 동물들을 보면 들고양이가 있다. 가끔씩 찾아와서는 높은기둥 위에 올라가서는 미동도 하지 않고 골똘히 무엇을 생각하는지 한참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데 이런 동물 중에서 최고 명상의 대가가 있다.
바로 청개구리다. 인간을 포함하여도 아마 청개구리가 최고 명상가가 아닐까 한다.
이 조그만, 사람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인 이 녀석들은 가만히 보면 나뭇잎 위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더욱이 옆에 사람이 지나다녀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최고의 경계 태세를 언제나 유지하고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는다. 사람이 가까이 가면 순식간에 도망치거나 사람과 거리를 유지한다. 이 손톱만 한 녀석은 사람이 가가이 접근해도 무슨 배짱인지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아마도 너무나 명상에 깊이 들어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한 번은 어떻게 들어왔는지 집 화장실 한 구석에 한 녀석이 들어와 있었다. 그냥 가만히 두었더니 며칠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명상 중이었다. 나중에는 혹시 굶어 죽을지 몰라서 가만히 바깥 들장미 잎에 올려 두었더니 그제야 어디론가 사라졌다.
여기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청개구리가 생각하는 세상과 인간의 세상은 어떻게 다를까 하는 점이다. 청개구리는 자기가 알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 그 좁은 세상만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
이런 질문에 대해 한 일본 인문학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차피 인간도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세계만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우주를 품고 있는 듯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인간도 코끼리의 주름진 피부 속에 살고 있는 기생충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은 자신이 오관(五官)의 세계 내에 존재하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1)
이렇게 청개구리나 인간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지만, 철학자나 명상의 대가들은 혹시 죽어서 청개구리가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면 이 분들은 나에게 몹시 화를 낼지도 모른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한 구절을 보자.
'세상에서 자신의 영혼이 거하는 내면보다 더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은 없다. 더구나 그곳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즉시 평온을 되찾게 해주는 지혜가 담겨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평온한 마음이란 잘 정돈된 마음이다. 그러니 이런 식의 휴식을 통해 재충전의 시간을 갖도록 하라.'
1. 와타나베 쇼이치. 지적으로 나이 드는 법. 위즈덤하우스 2012. 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