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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음 음악

역사적 흐름

by Kompo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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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음 음악에 대한 정의는 쉽지 않다. 미분음 음악은 단순히 옥타브를 더 작은 단위로 분할한 음악이 아니라, 전통적인 12음기법에서 벗어나 음높이의 연속성을 탐구하는 음악적 접근을 포함한다. 실험적 조율 체계는 종종 조성 음악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예를 들어, 특정 반복적 음정의 활용이나 옥타브 분할 방식은 미분음 음악과 조성 음악 모두에서 발견된다. 또한, 미분음적 음악이 반드시 정확히 정의된 음높이에 의해 규정될 필요는 없으며, 글리산도, 클러스터, 멀티포닉 등의 요소를 포함하는 경우도 많다. 미분음 음악의 구조적 기초를 명확히 정의하는 것은 어렵고, 다양한 조율 및 음계 체계를 연구해도 일관된 연속성이 보이지 않으며, 20세기 이후 현대음악에서 미분음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지만 여전히 개별적인 해결 방식이 공통적인 규범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분음적 측면을 이론적으로 다룬 초기 시도는 이미 19세기 말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쇼헤이 타나카(Shohei Tanaka)는 1890년에 20개의 건반과 옥타브당 26개의 음높이를 가진 엔하모니컴을 발명하여 순정률에서 연주를 가능하게 하고자 했다. 또한, 게오르그 아우구스트 베렌스 세네갈덴(Georg August Behrens Senegalden)은 1892년에 4분음에 관한 저서를 집필하고, 이중 건반을 갖춘 아크로마틱 피아노를 설계했다. 초기 미분음적 시도는 종종 장,단조 조성 음악의 확장으로 간주되었고, 기존 조성의 음 진행 패턴(특히 으뜸음의 역할)을 더욱 정밀하게 탐구하거나, 음과 화음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당시의 미분음적 접근은 기존 조성의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동시에 조성과의 연결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으며 장,단조 조성의 틀에서 벗어난 미분음 작곡 접근법은 당시 이론의 영역에서만 발견되었다. 예를 들어, 페루치오 부조니(Ferruccio Busoni)는 3분음 음악에 대한 고찰을 제시하였으며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는 옥타브를 53개의 음으로 나누는 방식에 대해 언급하였으나 관련된 작품을 남기진 않았다.




미분음 음악이 독립적인 형태로 나타난 첫 번째 작품들은 음악의 중심지라 일컫어지는 유럽에서 벗어난 곳에서 만들어졌으며, 특히 멕시코 출신의 줄리안 카리요(Julian Carrillo)가 선구적 역할을 했다. 카리요는 1916년에 16분음 체계에 대한 실험 결과를 발표하였으며 1930년에는 미분음 악기를 포함한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였다.


찰스 아이브스(Charles Ives)의 미분음적 실험 역시 처음에는 유럽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아이브스에게 있어 4분음 음악은 온음계적 전통과 본질적으로 매우 다르다고 여겨졌다.


미분음 음악의 또 다른 선구자인 이반 비슈네그라드스키(Ivan Wyschnegradsky, 1893–1979)는 주로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으며, 처음에는 알렉산더 스크랴빈(Alexander Skrjabin)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파리 망명 시절 동안 다수의 미분음 작품을 작곡했고 1920년대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4분음에서 12분음까지의 미분음 분할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이론을 여러 단계에 걸쳐 발전시켰다. 여기에는 "울트라 크로마틱"과 "주기적 화성" 개념이 포함된다.


울트라크로마틱이라는 개념은 모든 음이 함께 울릴 때 절대적 연속체를 형성한다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 이 절대적 연속체는 개념적으로만 상상 가능하며, 음악은 이를 상대적 연속체로서 부분적으로 구현한다. 주기적 화성은 이 모든 가능한 음높이의 연속체에서 특정 주기적 체계를 필터링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분음의 음향 공간을 체계화하려는 이 시도는 음계나 모드(mode)의 관계와 유사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메시앙(Messiaen)의 모드처럼, 비슈네그라드스키의 주기적 체계 안에서도 음계 간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이를 통해 특정 음향 공간의 영역 간에 변조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비슈네그라드스키의 울트라 크로마틱과 주기적 화성이 조성을 근본적으로 의문시한 것과 달리, 알로이스 하바(Alois Haba) 아이브스와 비슷하게 미분음 화성 이론과 자신의 작곡 행위 사이에 긴장 관계를 유지했다. 하바는 자신의 작곡에서 반조성적 중심을 결코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하바는 그의 화성 이론서에서 미분음 음악이 마치 막스 레거(Max Reger)가 장,단조 체계의 극한까지 탐구했던 방식처럼, 모든 음계 체계(조성을 포함하여)의 음, 2성 또는 다성 화음들이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바의 미분음적 작곡은 항상 상대적으로 안정된 음 중심성에 의해 특징지어졌다. 또한 그의 음악적 영감은 민속음악과 체코어의 억양적 특성에 영향을 받았다. 체코어의 억양은 고정된 음높이에서 연주되지 않고, 유연한 상승 및 하강의 억양적 흐름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는 하바를 비롯한 여러 작곡가들에게 음높이 체계를 재고하는 모델로 작용했다. 하바의 첫 번째 미분음적 작품인 4분음 체계를 사용한 현악 사중주는 형식적으로 리스트(Franz Liszt)의 h단조 피아노 소나타 와 쇤베르크의 d단조 현악 사중주의 단일 악장 형식과 유사하다. 그는 이후 6분음 체계를 사용한 두 번째 현악 사중주와 더 많은 미크로톤 작품들을 작곡했다.




미분음 작곡의 기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새로운 악기 제작의 필요성으로, 이는 초기부터 명확히 드러났다. 하바, 비슈네그라드스키 및 기타 작곡가들은 1920년대에 미분음으로 조율된 건반악기의 제작을 추진했지만, 이 과정에서 수많은 좌절을 겪었다. 특히 연주자들은 이러한 혁신을 회의적으로 보고 거부하는 태도가 있었고 전통적 음악 관행의 지속적 지배로 인해 이 문제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했다.


초기에는 보다 실용적인 해결책에 의존했다. 예를 들어, 비슈네그라드스키는 자신의 작품을 미분음 간격으로 서로 조율된 피아노를 위해 개작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컴퓨터와 기타 기술적 도구의 발달로 인해 이 문제는 점차 완화되었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미분음적 요소가 다양한 기술을 통해 구현 가능하다. 복잡한 음정 및 음향적 차이를 오류 없이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은 대부분의 작곡가들에게 환영받는 특징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자에 의해 구현되는 방식이 자주 선택된다. 이는 음정의 미세한 흔들림과 기술적 불확실성이 청취 시 흥미로운 다의성을 유발하며, 이는 곧 작곡적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미분음에 대한 개념이 확장되어, 단순히 고정된 음높이뿐만 아니라 음향적 전이와 소음적 요소까지 포함하게 되면서, 악기 편성의 가능성도 크게 확장되었다. 예를 들어, 타악기는 오케스트라 음향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이지만, 일부는 표준화된 조율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타악기는 음과 소음의 경계를 탐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에드가르 바레즈(Edgard Varese)는 이러한 타악기 음향의 가능성을 일찍이 인식했으며, 그의 작품 Ionisation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악기의 소리를 변형하거나 미분음적 색채를 부여하는 기법도 유망한 가능성으로 입증되었다. 예를 들어, 존 케이지는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통해 이를 구현했으며, 그의 작품 Bacchanale은 이와 같은 시도의 초기 사례 중 하나이다.


20세기 가장 창의적인 악기 발명가 중 한 명으로, 1930년대에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인물은 해리 파치(Harry Partch, 1901–1974)였다. 그는 미분음 음악의 "아웃사이더"로, 그의 이론적, 작곡적 접근은 유럽에서 비교적 늦게 받아들여졌다. 그의 사상의 중심에는 순정률이 있다. 파치는 고대 그리스 음계 연구를 통해 자신의 작곡적 접근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으며 음악 이론과 악기 제작에 대한 통찰은 그의 저서 Genesis of a Music 에 요약되어 있다. 그의 43단계 음계 시스템은 2, 3, 5, 7, 9, 11과 그 배수의 숫자 비율로만 구성된 음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스템은 헬름홀츠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지만, 파치는 19세기 이원론적 사고(장조는 단조의 반전)를 바탕으로 "Otonalities"와 "Utonalities"를 구별했다.




1945년 이후, 음열적 미분음 음악을 작곡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실제 연주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음열적 미분음 작품 중 유일하게 주목할 만한 것은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의 칸타타 Le Visage Nuptial 의 초기 4분음 버전(1946/50–51)이었다. 이 작품은 1957년 초연 이후 철회되었지만, 악보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이 작품은 반옥타브에 12음 공간을 압축하여 12음기법적 접근을 유지하며, 이를 통해 24음 화음에 이르는 강렬한 화성적 밀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1988–89년 최종 버전에서는 4분음을 제거하였다.


결국, 전통적 음악 공연 관행 내에서 실현될 수 없었던 많은 미크로톤적 접근법은 전자음악에서 체계적으로 탐구되었다. 예를 들어, 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의 Studie I 과 Studie II 는 음열적으로 구조화된 음정 비율에 의해 특징지어지며, 옥타브에 기반한 조율 체계를 회피한다. 이후 이러한 접근은 소음적 요소로도 확장되었으며, 그의 미분음적 실험은 그의 오페라 사이클 Licht 같은 대작에도 흔적을 남겼다.


1950년대부터 음열적 사고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시작되었다. 이는 음열 음악의 대표자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졌으며, 미분음 음악 분야에서도 새로운 경향을 촉발했다. 예를 들어, 글리산도는 음높이와 음길이와 같은 매개변수적 사고를 지속적으로 해체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입증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의 음열 작품에서는 글리산도가 매우 드물게 나타나지만 전자음악에서는 더 자주 사용되었다.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는 오케스트라 작품 Metastasis 에서 글리산도를 주요 구성 원리로 도입했다. 이 작품에서는 현악기 그룹의 디비지(divisi) 기법을 통해 모든 음역에서 글리산도가 나타난다. 크세나키스는 이후 전자음악 작품과 기악 작품에서도 유사한 접근법을 구현했다.


크세나키스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미분음과 모달리티(Modality)의 통합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모드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유럽 음악사의 기원을 참조하면서 그는 음계의 기본 원리를 정립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모든 음계가 파생될 수 있는 원초적 음계와 음열 원칙과 음계 원칙을 화해시키는 아이디어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솔로 첼로를 위한 Nomos alpha 와 같은 작품에서 나타난다.


크세나키스와 마찬가지로, 자친토 셀시(Giacinto Scelsi)도 1950년대에 음열 음악의 대안으로 자신의 접근법을 제시했다. 초기 작품에서 모달리티는 동기-주제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다음 단계에서 그는 Trio a cordes 와 Quattro pezzi (su una nota sola)와 같은 작품에서 음 생성의 미세한 뉘앙스에 집중했으며, 이후 Viertes Streichquartett 와 바이올린 협주곡 Anahit 같은 작품에서 이를 더욱 정교화했다.


크세나키스의 글리산도 구조와 셀시의 미크로톤 음향은 연속적 움직임을 선호하며, 전통적 음높이 체계와 종지로 구획된 구조를 벗어났으며, 연속적이고 중단 없이 펼쳐지는 움직임을 통해 청취자에게 새로운 공간적, 시간적 경험을 제공하며 새로운 시간 개념을 도입했다.


크세나키스와 셀시의 접근법과 유사하게,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 프리드리히 체르하(Friedrich Cerha)와 같은 작곡가들은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에 음열음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음향 중심 음악을 탐구했다. 특히 리게티의 Ramifications 에서는 미분음적으로 조율된 오케스트라 그룹이 코러스처럼 배열되며, 이는 이후 베른하르트 랑(Bernhard Lang)의 Monadologie XIII 과 같은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 리게티는 이러한 흐릿한 윤곽을 특정 음악적 표현과 연관지었으며, 이를 "부패" 또는 "퇴폐적 예술로 묘사하기도 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부터 음향 연구와 음악적 혁신을 위한 체계적 연구에 대한 노력이 꾸준히 증가했다.


제임스 테니(James Tenney)는 1960년대 초 뉴저지의 벨 연구소(Bell Laboratories)에서 컴퓨터 기반 음향 합성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다. 그는 악기 및 전자음악을 위한 작품을 작곡했으며, 종종 새로운 조율 체계를 사용했다. 그의 주요 저서 Meta/Hodos 는 음향 연구와 분석, 미분음 화성 및 음향학에 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은 해리 파치의 비율 시스템과 케이지(John Cage)의 작곡 및 기보법에서 영향을 받았다.


1970년대에 파치의 미분음 음악 이론은 유럽으로 전파되었으며 리게티는 그를 직접 만나며 영향을 받게 되었다. 리게티는 여러 작품에서 파치의 영향을 반영했지만 접근 방식은 매우 달랐는데, 파치는 새로운 악기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접근했으나 리게티는 전통적인 음악 시스템과의 타협을 선호했다.


1980년대에는 루이지 노노(Luigi Nono)와 슈톡하우젠 같은 작곡가들이 미분음 음악에 전념했으며, 노노는 Fragmente – Stille, An Diotima, A Carlo Scarpa 와 같은 작품들에서 감축된, 그러나 미세 음정으로 차별화된 음 및 음정 구성을 사용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실시간 전자 변조를 포함한 소규모 보컬, 기악 편성에서도 활용되었으며 이 시기의 노노 작품에서 음열적 사고의 영향을 찾아보기는 거의 어렵다. 또한 헬무트 라헨만(Helmut Lachenmann) 기악적 구체 음악(musique concrete instrumentale)의 발전, 브라이언 퍼니호(Brian Ferneyhough)의 New Complexity로 불리는 복잡성과 단순성의 경계 탐구, 클라우스 슈테펜 만코프(Claus Steffen Mahnkopf)의 8분음 기반 음악, 살바토레 샤리노(Salvatore Sciarrino)의 하모닉스와 미세한 소리의 탐구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지난 포스팅에 다뤘던 트리스탄 뮤라이(Tristan Murail), 제라르 그리제이(Gerard Grisey) 같은 스펙트럼 음악 작곡가들은 음향학적 스펙트럼 분석을 활용해 미분음 음악을 체계화했다.




미분음 음악은 단순히 기존 조율 체계를 세분화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 표현의 근본적인 확장을 의미한다. 초기에는 조성 음악의 미세한 변형으로 여겨졌으나, 20세기 이후 점진적으로 독립적인 음악 언어로 발전했다. 쇼헤이 타나카와 줄리안 카리요 같은 초기 실험가들은 조율 체계의 확장을 시도했고, 비슈네그라드스키와 하바는 이론적으로 이를 체계화하며 조성과의 관계를 탐색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미분음 음악은 스펙트럼 음악, 전자음악, 그리고 물리적, 심리적 청각 현상에 기반한 다양한 연구로 확장되었으며, 작곡 기법과 악기 개발 또한 이에 맞춰 진화했다.


현재 미분음 음악은 특정 작곡가들의 실험적 영역을 넘어, 현대음악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컴퓨터 음악 기술의 발전은 보다 정교한 미분음 조율과 실현 가능성을 제공하며, 이는 전통적인 연주 기법뿐만 아니라 전자음향, 실시간 변조, 그리고 인공지능을 활용한 작곡 기법과도 연결되고 있다. 스펙트럼 음악에서 보듯이, 미분음은 단순한 음높이의 문제를 넘어, 음향적 연속성과 조율된 음색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로 확장되었다.


미분음적 사고방식은 단순히 새로운 음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음악을 듣고 구성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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